-. 미국은 직원을 ‘미래 가치 공동소유자’로…한국, ‘현대적 성과 공유 시스템’ 구축' 실패
-. 삼성전자 노조의 ‘영업이익 15% 성과급 요구’ 논란이 던진 질문
-. 한국 대기업과 미국 빅테크기업 가장 큰 차이 연봉 액수 아닌 조직문화
삼성전자 최대 노조 5월 8일총파업 결의대회[뉴시스]
1980년대 노동운동권의 최대 과제이자 난제는 ‘무노조 철옹성’ 삼성전자 노조 설립이었다. 당시 삼성전자 출퇴근 버스가 집결하는 수원 남문 일대는 아침마다 삼성전자 노조 설립을 촉구하는 유인물을 배포하고 선전하는 지역 노동운동가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삼성 측 관리 직원들의 쫓고 쫓기는 전쟁이 벌어졌다.
버스 승차를 위해 기다리는 근로자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구호를 외치다가 저쪽 어디선가 ‘세콤이다’ 외침이 뜨면 서둘러 길 건너로, 다리 너머로, 동네 골목으로 도망치는 일이 반복됐다.
가끔 출근하는 직원처럼 가만히 서 있던 남자가 갑자기 세콤으로 돌변해 붙잡으면 격한 몸싸움 끝에 겨우 빠져나오기도 했다.
또 무모한(?) 신출내기 운동가는 버스에 올라가 유인물 배포와 선동을 하다가 그대로 버스가 출발하는 바람에 한시간 가량 40여명의 또래 여자 근로자들의 실소와 경계, 관심의 눈초리 속에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상태로 삼성전자 공장 정문까지 갔다가 2시간가량 걸어오는 일도 있었다.
세콤(SECOM)은 지금의 S-1(에스원·구 한국경비실업)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데 사설 경비와 경찰의 중간 어디쯤 되는 조직으로 당시는 노무관리, 특히 노조 설립 저지 또는 관련자 퇴출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그때를 회상하면 지금 삼성전자의 노조는 경기남부노련을 넘어 한국 노동운동사의 기념비적이 사건이자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삼성전자 노조는 2026년 디지털 대한민국 노사관계의 엄중한 시험대에 올라섰다. 당시 노동운동가들도 지금의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이 옳은 것인가에 의문을 품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는 4월 23일 평택 캠퍼스에서 노조 추산 3만9000여 명이 모여 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5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을 예고했다. 2024년 7월 25일간 이어진 창사 첫 총파업에 이어, 이번 파업이 현실화하면 삼성전자 창사 이래 두 번째 총파업이 된다.
노조의 핵심 요구는 “영업이익 15% 성과급 고정 배정”이다.
이것은 한국 대기업 노사관계의 구조적 한계, 그리고 한국 자본주의가 전문직 노동자와 첨단기술 인력을 어떻게 바라봐 왔는지를 드러낸 상징적 사건에 가깝다.
특히 이번 사태는 한국 재계와 정부, 그리고 오랫동안 시장주의·성과주의를 외쳐온 보수정권이 정작 가장 중요한 ‘현대적 성과 공유 시스템’ 구축에는 실패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노동자를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전문직 자산으로 보기보다, 아직도 “조직 안에서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는 고액 월급 노동자” 정도로 보는 문화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삼성전자 노조의 강경한 성과급 요구조차도 미국 실리콘밸리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근대적 노사관계’의 틀 안에 있다는 점이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핵심 인재들은 아예 회사의 미래 가치 자체를 나눠 가진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올해 이익 얼마 났으니 얼마 더 나눠 달라”는 현금 배분 구조에 머물러 있다.
“같은 팀인데 왜 쟤만 몇 배 받나”…한국식 조직문화의 벽
한국 대기업과 미국 빅테크의 가장 큰 차이는 연봉 액수가 아니라 조직문화다.
한국 기업은 기본적으로 직무보다 직급과 조직 중심 문화가 강하다.
대기업 인사체계는 여전히 부장·상무·전무·임원 등 위계 구조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특정 개인에게 지나치게 높은 보상을 지급하는 순간 조직 내부 반발이 터져 나온다.
실제 국내 대기업 인사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같은 팀인데 누구는 수십억을 받고 누구는 억대도 못 받으면 조직이 무너진다”는 인식이 강하다. 결국 개인의 시장가치보다 조직 안정성과 내부 형평성이 우선되는 구조다.
반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정반대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핵심 엔지니어를 ‘회사 직원’이 아니라 ‘시장 자산’으로 본다.
특정 AI 연구원이나 GPU 설계 인력을 경쟁사에 빼앗길 경우 회사 가치 수조~수십조 원이 흔들릴 수 있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개인별 몸값 차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서는 2025~2026년 들어 AI 인재 확보 경쟁이 격화되며 일부 핵심 연구자들에게 연간 수백만 달러 수준의 보상 패키지가 제시됐다는 외신 보도가 이어졌다. 미국 빅테크 업계에서는 “스타 개발자는 스포츠 FA 선수와 같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풍경이다.
집단주의의 역설…“평등”이 혁신을 막는 구조
문제는 한국 노조 역시 이런 구조를 강화해 왔다는 점이다.
한국 대기업 노조의 핵심 특징은 집단주의와 획일적 형평성이다.
여전한 호봉제 기반, 직급별 체계, 집단교섭, 평균주의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다. 따라서 노조 역시 “누구는 특별히 더 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이번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 역시 본질적으로는 “회사 이익을 집단적으로 얼마나 더 배분할 것인가”에 가깝다. 이것은 실리콘밸리식 ‘초격차 인재 자본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다.
결국 한국의 노사관계는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가 여전히 산업화 시대 집단주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재계는 노동자를 “회사의 미래 공동소유자”로 인정하는 데 인색했고, 한국 노조는 개인별 시장가치 차등 구조를 받아들이는 데 소극적이었다. 그 결과 모두가 성과급만 바라보는 기형적 구조가 형성됐다.
2024년 7월 8일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정문 앞에서 총파업 결의대회[뉴시스]
미국은 ‘회사 가치’를 나누고, 한국은 ‘현금’을 나눈다
삼성전자와 미국 빅테크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 대기업은 회사가 돈을 벌면 성과급을 지급한다. 즉 “이번에 얼마 벌었으니 얼마 나눌까” 구조다. 성과급은 철저히 현금 중심이다.
반면 미국 빅테크는 회사 가치 상승 자체를 직원과 공유한다.
대표적인 것이 RSU(Restricted Stock Unit·양도제한조건부주식)다.
미국 기업들은 핵심 인재에게 단순 월급이 아니라 회사 주식을 장기간 지급한다. 직원들은 회사를 성장시킬수록 자신이 가진 주식 가치도 함께 상승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직원이 회사와 함께 부자가 된다”는 개념이 이미 일반화돼 있다는 것이 WSJ의 보도다.
반면 한국은 아직도 주식을 ‘오너 지분’이라는 인식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정현성 캐피탈링크(주) 대표는 “한국 재벌 체제에서는 지분은 경영권과 직결된다. 따라서 직원들에게 광범위한 지분 보상을 확대하는 데 상대적으로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처럼 “직원도 사실상 공동 자본가”라는 문화가 약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한국에서는 회사가 성장해도 직원은 ‘성과급 많이 받은 직장인’에 머무르는 반면, 미국에서는 직원 스스로가 회사 가치 상승의 이해관계자가 된다.
“근로자”인가, “전문직 자산”인가
더 근본적인 차이는 전문직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한국 대기업 상당수는 아직도 노동자를 “대체 가능한 조직 구성원”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제조업 기반 문화에서는 개인보다 시스템과 조직 충성도가 강조된다.
그러나 미국 빅테크는 특정 전문직 인력 자체를 회사 가치의 핵심으로 본다.
미국 빅테크 업계에서는 AI 연구원·GPU 설계자·플랫폼 아키텍트 등 핵심 전문직 인력 한 명이 회사 경쟁력과 기업가치 자체를 좌우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실제로 NVIDIA··Meta 등은 핵심 AI 인재 확보를 위해 수백만 달러 규모 보상 경쟁까지 벌이고 있다.
[서울경제tv 유튜브 캡처]
이 차이는 단순한 연봉 문제가 아니다.
S 기업에서 오랫동안 경영지원핵심파트에 근무한 A씨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식 RSU를 몰라서 못 하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인식 차이“라며 ”다시 말해 문화와 구조의 총체적 차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파업 사태가 보여준 한국 자본주의의 미래
삼성전자 노조의 ‘영업이익 15% 배분’ 요구는 단순한 임금 갈등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형 자본주의가 첨단기술 시대에 맞는 새로운 노사관계를 아직 만들지 못했다는 신호다.
보수정권과 재계는 오랫동안 “성과주의”를 외쳤지만, 정작 미국식 진짜 성과주의인 ‘시장가치 중심 보상’에는 소극적이었다. 노동자를 글로벌 전문직 자산으로 보기보다 여전히 조직 내부 노동력으로 관리해 왔다.
반면 노동계 역시 미래 가치 공유 모델보다 집단적 현금 배분 논리에 더 익숙했다.
한국노총 전 사무총장 B 씨는 “한국의 첨단산업 노동자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경쟁을 하면서도, 보상 구조만큼은 여전히 산업화 시대 제조업 노사관계 틀에 갇혀 있다”며 “삼성전자 파업 논란은 바로 그 모순이 폭발한 사건”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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