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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자립 방위 구축하는 유럽의 길…전차‧병력에서 반도체‧에너지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안보 환경은 더 이상 '단기적 위기'로 설명하기 어렵다. 전쟁의 군사적 충격뿐 아니라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 트럼프 재집권으로 드러난 미국 동맹정책의 거래적 성격이 더욱...

자립 방위 구축하는 유럽의 길…전차‧병력에서 반도체‧에너지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안보 환경은 더 이상 ‘단기적 위기’로 설명하기 어렵다. 전쟁의 군사적 충격뿐 아니라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 트럼프 재집권으로 드러난 미국 동맹정책의 거래적 성격이 더욱 두드러지면서 유럽은 장기적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 그린란드를 둘러싼 미국과 덴마크 간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북극·북대서양을 포함한 유럽의 전략 공간이 동부전선과 흑해를 넘어 더 넓은 지정학적 무대로 확장되고 있다.

2026년 뮌헨안보회의(MSC 2026) 본회의장 전경. 회의에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장기 지원, 유럽의 방산 생산능력과 공급망 강화, 나토 체제 내 ‘유럽 기둥’ 구축, 그리고 사이버·우주·인공지능 등 신흥기술을 포함한 새로운 안보 개념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사진=뮌헨안보회의 (MSC)/Conzelmann

이러한 복합적 압력 속에서 유럽 각국은 군사적 억지력 강화를 우선 과제로 삼고, 방위비를 확대해 왔다. 지난 2월에 열린 뮌헨안보회의에서 NATO 사무총장과 EU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장기적 군사·재정 지원이 유럽 안보의 시험대라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이를 뒷받침할 방산 생산능력과 탄탄한 공급망을 갖추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번 논의의 핵심은 단순한 군사비 증액이나 병력 확대에 있지 않았다. 사이버·우주·인공지능과 같은 신흥·파괴적 기술, 민·군 겸용 기술, 에너지·디지털 인프라, 방위산업 기반이 모두 안보의 핵심 요소로 부상하면서, 유럽 안보는 더 이상 전차와 병력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안보 논쟁의 초점은 ‘얼마나 많이 쓰느냐’라는 지출 규모의 문제에서, ‘어떤 과학기술과 산업·공급망 구조를 전제로 안보를 설계하느냐’라는 구조적 질문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안보 개념의 전환은 유럽 각국 내부의 정책 조정에 그치지 않고, NATO와 EU의 관계, 나아가 인도·태평양 파트너와의 협력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EU가 추진하는 연구혁신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과 차기 FP10(EU 연구혁신 프레임워크 프로그램)은 과학기술 경쟁력과 산업 기반 강화를 핵심 목표로 삼고 있으며, NATO가 강조하는 인공지능, 사이버, 우주, 신흥·파괴적 기술 분야와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

유럽이 인도·태평양 4개 파트너(IP4)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 IP4는 더 이상 형식적 대화 상대가 아니라, 사이버 방어와 신흥기술, 허위정보 대응, 방산·공급망 협력 같은 구체 의제를 함께 다루는 실질적 파트너로 자리 잡는 중이다.

유럽 지도자들, 방산 생산능력과 탄탄한 공급망 핵심과제로

사이버·우주·AI 같은 신흥·파괴적 기술 등 핵심 요소로 부상

나토 수요와 EU 사이에서 우선순위 따라 한국 역할 달라질 것

이 구조에서 한국의 위치는 특히 의미가 크다. 한국은 IP4의 일원으로서 NATO와의 협력을 정치적 대화를 넘어 사이버 방어, 신흥기술, 허위정보 대응, 방산 협력 등으로 확대해 왔다. 동시에 한국은 2025년부터 Horizon Europe Pillar II(글로벌 도전과 유럽 산업경쟁력)에 연합된 아시아 최초의 국가로, 디지털·산업·우주, 기후·에너지·모빌리티 등 EU의 전략 산업과 직결된 연구·혁신 생태계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NATO 구조 안에서는 안보·방산 협력 파트너로, EU 구조 안에서는 연구·혁신·산업·기술 협력 파트너로 동시에 자리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균형을 넘어, NATO가 제시하는 안보·능력 수요와 EU가 설계하는 기술·산업 프레임을 연결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유럽 안보의 변화는 더 이상 ‘유럽 내부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방위비 확대와 방산 생산능력 강화, 연구·혁신·산업 정책의 재편, 그리고 인도·태평양 파트너십의 확대는 군사와 기술, 산업과 공급망이 결합된 새로운 안보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관건은 참여 그 자체가 아니라 방향 설정이다. NATO가 제시하는 안보·능력 수요와 EU가 구축하는 기술·산업 생태계 사이에서 어떤 분야에 전략적 우선순위를 둘 것인지, 그리고 규범과 표준 형성 과정에 얼마나 능동적으로 관여할 것인지에 따라 한국의 역할은 달라질 것이다.

신의찬 동덕여대 유러피언스터디즈전공 교수

한국외대에서 국제지역학 유럽연합(EU)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외대 EU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였으며, 현재는 동덕여대 유러피언스터디즈전공 조교수로 재직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유럽연합(EU)의 대외관계와 정책이다.

신의찬 동덕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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