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Flow
대형 핀테크(빅테크) 기업들이 아파트 관리비와 공과금 납부 등 생활밀착형 지출 영역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기존 카드사들이 자동이체로 독점하던 정기결제 시장 수요가 빅테크의 전자 고지서를 통한 즉시 납부로 분산되면서 카드사는 고객 접점을 잃고 결제망만 제공하는 하청업체로 밀려나는 구조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5년중 전자지급서비스 이용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전자고지결제 서비스 일평균 이용 금액은 891억4000만원으로 전년 대비 9.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일평균 이용 건수 역시 30만9000건으로 4.2% 늘어났다.
전자고지결제는 아파트 관리비와 전기·가스·수도 요금, 지방세 등의 고지서를 모바일 앱이나 이메일 등을 통해 전자적 방식으로 발행하고 대금을 직접 수수해 정산을 대행하는 서비스다. 과거 은행 지로(Giro) 창구나 우편 고지서가 담당하던 영역이 스마트폰 화면 속으로 이동한 셈이다.
시장 규모 성장에 따라 관련 사업자 수도 늘어났다. 2023년과 2024년 말 기준 15개에 머물렀던 전자고지결제 등록 업체 수는 티머니모빌리티와 더즌이 합류하면서 지난해 말 기준 17개로 증가했다. 이 명단에는 네이버파이낸셜, 카카오페이, 비바리퍼블리카(토스), NHN페이코 등 국내 대형 핀테크 4사가 모두 포진했다.
기존 전자고지결제 시장은 부가가치통신망(VAN)사나 아파트 관리비 전문 결제업체가 양분해 왔다. 이런 시장 구도는 최근 빅테크 중심으로 재편됐다. 과거에는 매월 신경 쓸 필요 없는 카드사 자동이체가 대세였으나 최근에는 메신저나 앱 알림으로 청구 내역을 먼저 확인하고 페이로 즉시 납부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전자고지결제 서비스 이용현황 추이, 사진=한국은행
빅테크가 고지서 결제 시장에 집중하는 배경에는 고객 고착화와 데이터 확보가 자리한다. 매월 고정적으로 청구되는 공과금과 관리비를 자사 간편결제 시스템에 연동하면 고객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안정된 MAU는 타 금융상품 판매로 이어진다. 청구서 결제 서비스 자체의 수수료 수익은 크지 않지만, 고지서를 확인하러 앱을 방문한 고객의 소득과 지출 데이터를 분석해 대출 갈아타기, 예·적금 상품 중개, 보험 비교·추천 등 마진율이 높은 맞춤형 서비스로 타기팅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빅테크의 영역 확장은 생활밀착형 자동납부 시장을 주도하던 카드사의 플랫폼 이탈을 야기한다. 소비자가 네이버·카카오페이로 고지서를 수령해도 실제 결제는 앱에 등록된 신용카드로 이뤄지는 비중이 높아 당장의 결제액 감소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결제액 유지에도 불구하고 카드사는 고객 접점(UI/UX)과 마이데이터를 잃게 된다. 공과금을 결제하기 위해 카드사 앱을 켜던 고객들이 핀테크 앱에 머물면서 카드사는 타 상품 교차판매 기회를 상실하고 결제망과 신용 리스크만 전담하는 단순 인프라로 밀려나는 구조다.
카드업계 내부에서도 고객 접점 상실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최종 결제 단계에서 고객과 맞닿는 앱 접점이 점차 빅테크 간편결제로 넘어가면서 (단순 결제망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내부적으로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카드업 역시 회원 기반 비즈니스인 만큼 고객 접점을 포기할 수 없어 플랫폼 고도화 등 신규 수익 모델을 끊임없이 찾고 있지만 시장 상황이 녹록지는 않다"고 말했다.
결제 수단 자체의 대체 위협도 커지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은 공과금을 신용카드가 아닌 자사 선불충전금(페이머니)으로 납부할 때만 포인트 적립 등 추가 혜택을 집중하며 카드 결제 우회를 유도한다. 신용카드 결제망에 종속되지 않고 수수료 비용을 절감하는 동시에 자체 생태계 내에 자금을 묶어두기 위해서다. 양 업권의 갈등이 고지서를 둘러싼 접점 확보전으로 번지면서 자체 '슈퍼 앱' 생태계를 수성하려는 카드업계의 영역 방어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홍인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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