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경 옥현중학교 교사
여름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서울 여행길에 올랐다. 해외로 나가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의 숨결과 역사를 직접 느끼고 체험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여행이었다.
축구 경기 관람부터 명동성당, 안중근 의사 기념관, 인사동, 창경궁 궁궐 야행까지 알찬 일정으로 3박 4일을 보내고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이었다. 창문 너머로 나지막이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귀를 사로잡았고, 아이들과 함께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한쪽에는 현장을 지키는 경찰들이 서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단정한 옷차림을 한 소녀 모습의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여섯 일곱 명의 청년들이 음악에 맞춰 정성스럽게 춤을 추고 있었다. 다름 아닌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한 시민단체에서 준비한 추모 행사였다. 순간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지며 '아, 이것이야말로 책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한 가장 생생한 배움의 현장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차야 할 10대 시절,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 속에서 소소한 일상을 누려야 했을 소녀들은 어느 날 갑자기 강제로 끌려가 삶 전체를 송두리째 빼앗겼다. 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다.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은 고(故) 김학순 어르신이 1991년 8월 14일,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날을 기리기 위해 2017년에 지정된 국가기념일이다. 긴 세월 침묵 속에 묻힐 뻔했던 역사의 진실이 한 생존자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비로소 세상 바깥으로 걸어 나온 날이다.
여기서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용어와 역사적 사실이 있다. 바로 '근로정신대'와 '위안부'의 차이다.
근로정신대는 1940년대 일제가 군수 공장 등에서 노동력을 착취할 목적으로 강제 동원한 여성을 의미하며, '위안부'는 성 착취를 목적으로 강제 동원한 여성을 뜻한다. 당시 일제는 이 두 개념을 교묘히 혼용하여 피해자들을 속이고 동원했으며, 해방 후 한국 사회에서도 오랫동안 명확히 구분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또한, 용어의 사용 역시 올바른 역사 인식의 출발점이 된다. 과거 널리 쓰이던 '종군위안부'라는 표현은 마치 자발적으로 군을 따라간 듯한 인상을 주어 강제성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에 따라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국제 사회에서는 참혹한 본질을 담아 '성노예제도'로 규정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피해자를 부를 때 따옴표를 붙여 '위안부'라 표기할까? '위안'이라는 단어 자체가 일제가 강제 동원의 범죄성을 은폐하기 위해 만든 미화된 용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택한 이름이 아닌, 일제의 가해 역사와 비인도성을 잊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따옴표(' ')를 붙여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 범죄 제도를 일컬을 때는 '성노예제도'라 부르고, 피해자를 지칭할 때는 역사적 맥락을 담아 따옴표를 넣은 '위안부' 피해자로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매년 8월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역사적 아픔을 되새기는 크고 작은 행사와 온라인 추모 공간이 마련된다. 이러한 기억의 과정은 단지 과거를 원망하거나 아픈 역사에 머물러 있기 위함이 아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고, 나아가 사람의 존엄성과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학교와 가정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실천적 기회는 많다. 피해자의 이야기를 참혹함 대신 따뜻하고 유쾌한 시선으로 풀어낸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함께 감상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진상 민원인으로만 알았던 할머니가 사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고, 미 의회 청문회 증언을 위해 영어를 배우는 과정을 다룬 이 영화는 아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또한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으로 건립된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방문하거나 각 지역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찾아 생존자들의 용기 있는 삶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단순히 과거의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깨닫고 실천하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길이다. 과거의 아픈 역사가 결코 잊히지 않도록 기억하는 일, 그리고 그 기억을 통해 더 나은 인권과 평화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일에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 그리고 모든 시민이 함께 마음을 모으기를 소망한다.
김효경 옥현중학교 교사
김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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