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서울시교육감 예비후보
에듀프레스 장재훈 기자 = 거의 매일, 그는 교문 앞에 선다.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손을 흔들고, 어깨를 두드리고, 때로는 아무 말 없이 곁을 지킨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받쳐 들고 함께 걷는다.
그에게 학교는 건물이 아니라 ‘관계’다. 매일 스쳐 지나가고 눈을 맞추고 이름을 불러야 비로소 완성되는 곳이다. 그래서 그의 물음은 늘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교육은 무엇인가. 학교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리고 질문 끝에는 언제나 '학생'이 있다. 서울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김현철 예비후보. 오늘도 그는 학교로 간다.
오는 6월 치러지는 서울교육감 선거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김현철이다. 출마는 예상 밖이었다.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시절 교육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균형 잡힌 시각, 따뜻한 감성으로 주목 받았지만 교육감 도전은 의외였다. 그는 왜 쉽지 않은 이 길을 선택했을까.
교육자의 길에서 시작해 현장으로 내려간 사람
지난 9일 서울시교육청 용산 신청사 앞에는 차가운 봄비가 흩날렸다. 화려한 구호도 북적이는 지지자도 없었다. 단 한 명의 기자와 몇몇 지지자들 앞에서 김현철 예비후보는 준비한 발표문을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비바람 속에 그의 목소리는 오히려 더 또렷하게 울렸다.
어쩌면 김현철이라는 사람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는지 모른다. 주목을 끄는 정치인이라기보다 자기가 옳다고 믿는 질문을 끝까지 붙드는 사람. 많은 이들이 떠난 자리에서도 할 말을 다 하는 사람 말이다.
김현철을 관통하는 단어는 오래전부터 분명했다. 교육, 그리고 현장이다. 교사였던 아버지와 누나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그는 자연스럽게 교육의 무게를 일찍 배웠다. 아버지의 길을 따라 사범대학에 진학했고 교육공학을 공부하며 교육 시스템이 어떻게 학습자의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지 탐구했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단순히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머물지 않았다. ‘교육은 어떤 세상을 지향해야 하는가’라는 더 크고 더 불편한 질문이 그를 오래 붙잡았다.
대학을 마친 뒤 그는 안락한 교단 대신 경북 구미공단으로 내려갔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그곳에서 노동자의 삶을 직접 겪었고, 해고자로 살면서 구조적 차별과 소외,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침묵을 몸으로 배웠다.
훗날 김현철이 학교를 단순히 ‘교사가 수업하는 곳’이 아니라 조리사와 돌봄전담사, 행정과 시설 노동자까지 함께 움직이는 공동체로 보게 된 것은 이 시기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교육노동자를 ‘네 번째 주체’로 호명하는 문제의식은 바로 그 공장 소음 속에서 자라났다.
영국 유학과 교육청 경험이 만든 교육철학
현장의 언어를 배운 그는 이후 언론 창간에 참여하며 사회와 소통하는 또 다른 방법을 익혔다. 노동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현실을 보며 언론의 필요를 절감했던 경험은 기자라는 역할을 거쳐 그의 시야를 한층 더 넓혔다. 교육학, 노동현장, 언론 경험이 한 사람 안에서 결합된 경력은 흔치 않다. 김현철을 단순한 ‘교육 전문가’라기보다 교육과 사회를 연결해 읽는 사람으로 보게 하는 이유다.
그의 교육철학이 결정적으로 확장된 시기는 영국 유학 시절이었다. 저널리즘과 미디어학 박사과정을 밟았지만 정작 그에게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강의실보다 생활이었다. 타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만난 영국 학교는 한국식 경쟁교육과 너무 달랐다.
아이의 속도를 인정하고 성장의 과정을 차분히 기록하며 학교가 삶의 터전이 되는 경험. 그는 그곳에서 ‘왜 우리 아이들은 성적이라는 일직선 위에만 세워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더 깊게 품게 됐다. 훗날 그가 ‘학생우선원칙’과 ‘줄세우기식 입시 철폐’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게 된 배경에는 이 유학 시절의 충격이 선명하게 놓여 있다.
귀국 후 그는 한양대 교육공학연구소 연구교수로 활동하며 혁신학교와 교육방법론을 연구했고 관련 저술도 이어갔다. <무엇이 혁신교육을 지속가능하게 하는가>, <소통과 오감학습> 등이 그것이다. 동시에 다음시대연구소를 설립해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변화를 준비했고 사립학교 동구학원의 관선이사를 맡아 사학 운영의 실제를 경험했다.
이어 조희연 교육감 시절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행정의 심장부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좋은 정책이 많아도 학교 현장의 피로는 줄지 않는 현실 속에서 그는 ‘정책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학교 상황에 맞지 않는 덧셈 행정이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문제의식은 그의 대표 공약인 ‘행정제로스쿨’로 이어졌다.
김현철 서울시교육감 예비후보가 서울시내 한 고등학교 앞에서 학생들의 요구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학생우선원칙’과 ‘행정제로스쿨’, 김현철의 핵심 구상
그의 최근 모습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교문 앞에 서는 후보’라는 점이다. 그는 거의 매일 오후 하교 시간에 고등학교 교문 앞에 선다. 교육감 선거의 진짜 주인공은 어른이 아니라 학생들이며 정책의 영향을 가장 직접 받는 사람도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는 학생들의 질문 앞에서 그는 ‘학교는 학생을 위해 존재한다’고 답한다. 학생우선원칙은 그에게 선거용 수사가 아니라 모든 정책을 걸러내는 첫 번째 기준이다.
김현철이 내세우는 대표 공약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것은 역시 행정제로스쿨이다. 그는 대학의 운영 체계처럼 교사는 수업과 학생지도에 집중하고 행정은 전담팀이 맡는 구조를 학교에 도입하겠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효율화 구호가 아니라 교사가 아이들과 눈을 맞추는 시간을 되찾아야 공교육이 살아난다는 판단 위에 서 있다.
여기에 서울형 AI 교육 플랫폼, 학생성장계획, 무료 진로·진학 컨설팅 같은 구상도 연결된다. 그의 정책은 기술을 앞세우기보다, 기술을 통해 교사와 학생의 시간을 되돌려주려는 방향에 가깝다.
교육노동자를 네 번째 주체로, 10년의 약속을 말하는 후보
김현철의 구상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교육 4주체라는 표현이다. 그는 학생, 교사, 학부모만이 아니라 학교를 실제로 움직이는 교육노동자까지 동등한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조리사, 돌봄전담사, 행정과 시설 노동자 없이 학교는 하루도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없는데 우리는 너무 오래 이들을 학교의 주변부에 머물게 해왔다는 문제의식이다. 이는 구미 공단 시절 노동의 현실을 몸으로 겪었던 그의 이력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는 또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뒤집히는 현실을 비판하며, 서울교육 10년 사회협약을 제안해왔다. 교육감의 개인 역량이나 정치적 유불리보다 시민과 교육공동체가 합의한 10년짜리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그래서 그는 교육감을 ‘성과를 남기는 자리’보다 ‘구조를 남기는 자리’로 이해한다. 입시 개혁도, 학생우선원칙도, 교육 4주체 혁신도 결국은 일회성 구호가 아니라 오래 가는 구조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평균의 종말>이 그리는 교육의 새 지평
‘변방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고(故) 신영복 선생의 말을 출마의 변으로 삼은 김현철이 교육감 도전 직전 발간한 <평균의 종말>은 그의 교육 세계관을 집약한 선언문이다. 책의 핵심은 '개개인성의 원칙'이다. 달리기 하나로만 줄을 세우면 수많은 김연아와 박태환을 놓치듯 획일적 기준은 다양한 잠재력을 가진 아이들을 소외시켜 왔다.
그는 이 철학을 '학생성장계획(초등부터 고등까지 12년의 성장 여정을 기록하는 제도)‘으로 구체화한다. 한 번의 시험 점수가 아니라 한 아이의 전체 궤적을 바라보겠다는 것이다.
‘입시 구조 개편을 넘어 학교 내부가 실질적으로 변화해야 아이들의 하루를 바꿀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이 책은 제도의 껍데기가 아닌 학교 문화와 일상의 질을 바꾸자는 철학적 성찰이다. 서울교육의 다음 장이 '평균의 종말'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면 그 물음은 이미 절반의 답을 얻은 셈이다.
빗속에서도 끝까지 말하는 사람, 그를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들
정책만큼이나 그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인간적인 결이다. 스스로를 꽤 유머러스하다고 생각하지만, 젊은 참모들에게는 ‘아재 개그 금지령’을 듣는다고 한다. 협치와 연대를 중시하다 보니 결정이 느리다는 평가도 받지만, 그는 ‘교육은 조금 느려도 신중한 걸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민주진보 진영의 유일한 50대 후보라는 점도 그를 설명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세대교체는 단순히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의 패권과 관성, 덧셈 행정과 줄세우기 교육을 넘어서는 “낡은 패권적 리더쉽의 세대교체”에 대한 요구다. 서울교육의 다음 10년을 놓고 볼 때, 김현철의 강점은 화려한 구호보다 오래 쌓인 질문의 힘에 있는 듯하다.
김현철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는 쉽지 않다. 교육자의 길에서 출발해 공장과 언론, 유학과 연구실, 교육청과 학교 현장을 두루 건너온 이력은 복합적이다. 그러나 그 복합성 속에서도 일관된 축은 보인다. 학교가 아이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믿음, 교육이 경쟁이 아니라 성장을 향해야 한다는 확신, 그리고 제도가 사람을 소진시키지 않도록 구조를 다시 짜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화려한 선동보다 묵직한 질문이 오래 남는 시대가 있다면 김현철은 아마 그런 시대의 후보일 것이다. 빗속에서 우산 몇 개 아래 서 있던 그 장면이, 그래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
서울교육의 새로운 봄이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학교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가장 단순하고도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될 수 있다면 김현철이라는 이름은 그 질문을 끝까지 붙드는 사람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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