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논단-일주명창>
'인물이 아니라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정종인
2026년 07월 05일 09:39
승인
2026년 07월 05일 19:00
대한민국 축구가 북중미 월드컵 32강 진출에 실패했다. 국민의 실망은 단순히 한 번의 패배 때문이 아니다. 오랫동안 누적된 구조적 문제가 결국 결과로 드러났다는 데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 실패를 두고 "조직과 인사의 실패"라고 진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감독 한 사람이나 몇몇 선수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으로는 달라질 것이 없다는 뜻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람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시스템을 바꾸는 일이다.
이 장면은 대한민국 정치의 현실과도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정치 역시 선거라는 이벤트에는 모든 역량을 쏟아붓지만 국가의 미래를 위한 제도 개혁과 구조 혁신에는 늘 뒷전이었다. 선거가 끝나면 책임 공방만 반복되고, 인적 쇄신이라는 이름 아래 얼굴만 바뀔 뿐 낡은 운영 방식은 그대로 남는다. 축구협회가 걸어온 길과 정치권이 걸어온 길이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다.
축구대표팀 공식 서포터즈인 붉은악마의 성명은 그래서 더욱 묵직하다. 팬들이 분노한 이유는 월드컵 한 번을 놓쳤기 때문이 아니다. 국민의 열정과 희생이 낡은 권력과 무책임한 행정에 이용당했다는 배신감 때문이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조직은 어떤 명분으로도 존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축구팬들은 가장 먼저 보여주고 있다. 이는 정치권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경고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신경영 선언을 했다. 핵심은 사람 몇 명을 교체하자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체질을 바꾸자는 혁명이었다. 그 결단이 오늘의 삼성을 만들었다. 지금 한국 축구와 대한민국 정치에도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수준의 근본적 혁신이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오래전부터 한국 축구가 시스템보다 이벤트에 의존한다고 비판해 왔다. 신문선 교수 역시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와 전문성 부족을 한국 축구의 고질병으로 지적했다.
그동안 손웅정 감독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또 다른 답을 제시해온게 사실이다.
그의 책제목도 '모든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였다.
그는 언제나 화려한 성과보다 기본기와 본질을 강조했다. 기본이 무너지면 어떤 성공도 오래갈 수 없다는 철학이다.
이들의 목소리는 축구를 넘어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한민국 정치는 연금·교육·노동개혁 같은 국가의 미래 과제보다 당장의 지지율과 정쟁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공정한 인사 시스템보다 계파와 진영이 우선되고, 장기 비전보다 단기 성과가 앞선다. 그러니 정책의 일관성은 사라지고 국민의 신뢰도 함께 무너진다.
세계 축구 강국은 감독 한 명에게 운명을 맡기지 않는다. 유소년 육성, 지도자 교육, 스포츠 과학, 데이터 분석, 메디컬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태계가 국가 경쟁력을 만든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대통령이나 장관 한 사람보다 중요한 것은 공정하고 투명한 제도와 책임 있는 시스템이다. 사람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결국 시스템이 사람을 키운다.
이번에도 주장 손흥민은 가장 먼저 국민 앞에 섰다. 변명보다 사과를 선택했고, 비난보다 선수들을 향한 따뜻한 응원을 부탁했다. 진정한 리더십은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데 있다는 사실을 그는 몸소 보여줬다. 이제 그 책임은 축구협회와 정치권 모두에게 넘어갔다.
이제 대한민국은 질문을 바꿔야 한다. "누구를 감독으로 세울 것인가", "누가 당대표가 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인물은 시대를 이끌 수 있지만 시스템은 시대를 바꾼다.
실패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실패를 반복하는 것은 무능이다. 월드컵 탈락이 한국 축구만의 위기로 끝나서는 안 된다. 낡은 관행과 카르텔을 허물고, 기본과 원칙을 다시 세우는 국가 혁신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축구도 정치도 뿌리가 튼튼해야 열매를 맺는다. 지금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길은 인물 교체가 아니라 시스템 개혁이다. 그것만이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미래를 다시 세우는 유일한 해답이다.
/서울=정종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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