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를 위한 제1보] 기후·전쟁·AI 삼중고, 한국 '그린 에너지'로 질주하라
기후, 인공지능(AI), 전쟁이라는 삼중의 압력 속에서 주요 선진국은 이미 데이터센터 전력 규제와 100% 재생에너지 전환에 착수했다. 반면 'AI 3대 강국'이라는 타이틀에 매몰된 한국의 전략에는 생태적 책임이 빠져 있다. 기술의 진보가 안보와 환경의 위협으로 엇나가지 않기 위해 한국 사회가 반드시 채워 넣어야 할 마지막 퍼즐, '그린 AI'의 전략적 방향을 짚어본다.
미국 주간지 은 2025년 올해의 인물로 '인공지능(AI)의 설계자들'을 꼽았다. 은 AI를 두고 핵무기 이후 '강대국 경쟁'에서 가장 중대한 도구이며, 2025년 '우리 세상을 새롭고, 흥미로우며, 때로는 두려운 방식으로' 바꾸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 가운데 특히 젠슨 황(엔비디아 최고경영자)이나 샘 올트먼(오픈AI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테슬라 최고경영자) 등의 기술 거물들이 '역사의 주도권을 쥔 상태로, 기술을 개발하며 정보 환경, 기후, 우리의 생계를 재편하는 결정'을 내리는 상황에 주목했다.
이렇게 AI에 대해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저명한 과학잡지 는 흥미롭게도 재생에너지의 멈출 수 없는 성장을 '2025년의 올해의 혁신'으로 지목했다. 태양광과 풍력이 화석연료인 석탄을 추월했으며, 재생에너지는 지금도 계속 고속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태양광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매년 600기가와트(GW) 넘는 용량의 설비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매일 원전 2기 정도가 지구 위에서 추가되는 정도의 엄청난 규모다.
이는 산업혁명 이후 200여 년 동안 인류의 근대 문명을 꽃피우게 한 화석연료 채굴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이제는 지상 위에서 실시간으로 햇빛과 바람을 이용해 에너지를 얻는 시대가 곧 오리라는 뜻이다. 과연 인공지능과 재생에너지 둘 중 무엇이 이 시대를 규정하는 기술일까? 그리고 이 두 기술은 어떻게 서로 얽혀 미래를 창조할까?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개시된 이란 전쟁과 그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AI 기술'과 '녹색기술'이 다른 양상으로 경합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전쟁 개시 직전부터 '앤트로픽 AI 기술의 미국 국방부 전용'을 둘러싼 갈등이 화제가 되었지만, 이란 전쟁은 'AI와 자율 무기가 주도하는 전쟁'의 진정한 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AI를 이용한 정치, 군사 지도자의 표적 공격이 주요 전술이 되고, 적은 비용으로 공격이 가능한 자율 무기가 대세가 된 것이다. 그렇게 전쟁은 대외 정책의 최후 수단이 아니라 가장 먼저 내세우는 수단이 되었다.
이 전쟁은 AI의 힘을 증명하는 한편, 지금도 위험한 기후와 환경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군대의 탄소발자국(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총량)은 원래부터 악명 높은데, 전투기 한 대가 한 시간 비행하는 데 소모하는 연료가 일반 승용차가 수년간 사용하는 양과 맞먹을 정도이다. 항공모함과 전차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모든 군 장비가 지독한 화석연료 포식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폭격으로 인한 산림과 자연의 파괴, 토양 오염, 파괴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와 메탄 배출 등 전쟁의 모든 행위가 기후 보전에 해롭다.
역설적으로 세계 석유 공급의 중심지인 중동에서 벌어진 이 전쟁으로, 우리는 인류가 여전히 얼마나 화석연료에 의존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대체제의 존재를 실감할 수 있기도 했다. 그동안 재생에너지 전환에 힘쓴 국가는 이란 전쟁으로 막힌 석유 공급 충격에 비교적 강한 적응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해외 원료 조달이 필요 없는 재생에너지와, 그 재생에너지로 충전하는 전기차 등의 '녹색기술'이 강력한 에너지 안보 수단이 된 것이다. 정리하자면 AI 기술로 전쟁은 쉬워졌고, 에너지 안보의 도구로써 녹색기술의 필요성이 더 커졌다.
AI 혁신에 가려진 '규모의 법칙'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생성형 AI의 구조는 이전에 어떤 디지털 서비스나 AI에 비교해 보아도 에너지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챗GPT나 제미나이, 클로드를 포함해서 현재 주류적인 인공지능 서비스는 2017년에 구글이 공개한 트랜스포머 설계구조에 기반한다.
그런데 트랜스포머는 그 이전의 합성곱 신경망(CNN)이나 순환 신경망(RNN)과 같은 인공지능 설계구조와 달리, 학습 데이터와 모델 매개변수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하드웨어 자원'을 늘리면 늘릴수록 더 똑똑해지는 특성이 있다.
'규모의 법칙'이라 불리는 이 특성으로 인해 인공지능은 놀라운 성능과 응용 분야의 확장을 이뤘지만, 그에 비례해서 점점 더 대규모의 데이터센터가 필요하게 되었다. 기가와트 데이터센터라 불리는 최근의 초대형 데이터센터는, 한 곳의 전력 소비량이 인구 100만 명 이상 도시와 맞먹을 정도의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한다. 심지어 데이터센터 냉각을 위해서 상당한 물도 필요하다.
만약 데이터센터에 공급되는 전력을 계속 석탄 화력 발전이나 가스 발전 동력에 의존하면, 그로 인해 기후 위기 악화에 악영향을 준다. 즉 에너지 설비에 전환이 뒤따라오지 않으면 인공지능의 발전이 진행될수록 기후 위기를 불러올 것이다. 이런 사실은 인공지능 사용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인공지능을 전력 계통에 활용하면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미리 정확히 예측해 그리드에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건물의 에너지 사용을 최적화하며, 교통량을 똑똑하게 조절하고, 기후 재난 대비를 더 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후와 환경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 이상으로 부정적인 해를 입힐 수 있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면 'AI 3대 강국'을 지향하는 한국은 생태 파괴를 최소화하는 '그린 AI'에 대한 전략이 준비되었을까? 유감스럽게도 아니다. 지난 1월 시행된 '인공지능 기본법'에는 AI의 생태적 영향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다. 또한 얼마 전 확정된 'AI 행동계획' 99개 조항 어디에서도 인공지능 확대로 인한 기후와 환경 부담을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심지어 최근 국회에서 논의되는 '데이터센터 진흥법'에도 이 대목은 빠진 실정이다.
'그린 AI' 위한 제도 도입하는 나라들
다른 나라도 다 그런 것이 아닌가? 아니다. 예를 들어 2024년 4월 기준 70개 이상의 데이터센터에 1.4GW 컴퓨팅 용량을 보유하고 있는 싱가포르는 과도한 전력 부담이 문제가 되자 2019년에 새로운 데이터센터 건설을 잠정 중단하는 모라토리엄(지급유예)을 선언했다. 그리고 2023년 조치 해제 이후에도 친환경 에너지 옵션을 사용하는 운영업체에 건설을 할당하는 등 일정한 제한을 두고 있다.
독일의 경우 데이터센터 에너지 효율을 규제하기 위해 정교하게 법을 만들었고, 이를 2023년 11월에 제정했다. 모든 데이터센터 운영자는 2027년부터 100% 재생에너지로 전력을 공급받아야 하며, 전력 효율을 개선해야 하고, 매년 데이터센터 에너지 사용 정보를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현재 국가 전력의 20% 이상을 데이터센터에 공급하는 아일랜드는 국가의 송전망과 배전망을 담당하는 국영 기업에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과 효율을 규제할 책임을 부여했다. 미국의 데이터센터가 집중된 버지니아 역시 전체 전력수요의 20% 이상을 데이터센터에 할당하고 있는데, 데이터센터의 무분별한 확장이 지역의 전기요금 상승과 환경파괴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어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는 실정이다.
심지어 미국과 함께 인공지능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는 중국조차 데이터센터 전력공급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려 노력하고 있다. 얼마 전 통과된 15차 5개년 계획에서도 데이터센터와 같은 컴퓨팅 시설과 5G 통신 기지 등 첨단 분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겠다는 내용을 명문화했다.
이처럼 많은 주요 국가가 인공지능의 개발과 동시에 인공지능의 전력 부담과 환경 부담을 줄이려 노력하는 걸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당장은 더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하는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뒤이어 기후 충격이 적은 재생에너지로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이를 제도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가 아무리 특별하고 중요하더라도 결국은 지구 생태계의 한계 안에서 존재해야 한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이먼 라이언 아일랜드 환경부 장관은 자국의 데이터센터가 무분별하게 팽창하는 걸 경계하며 "인공지능 역시 우리가 약속한 기후한계 안에서 작동해야 하고, 전력의 안정적 공급이 가능한 전력망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우리가 참고해야 할 중요한 대목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의 전문은 피렌체의식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firenzedt.com/news/articleView.html?idxno=32867
필자 김병권은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이다. 경제와 복지, AI 기술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정책연구자다. '새로운사회를여는 연구원' 부원장, 서울시 협치자문관, 정의정책연구소장을 지냈다. (2025) (2024) (2023) 등의 저서와 다수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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