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민호 변호사
“우리 둘이 합의했으니 괜찮겠지.” 협의이혼을 앞둔 많은 분의 생각이다. 감정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며 겨우 합의에 이른 만큼, 그 내용을 종이에 적어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이혼 후 양육비가 끊기거나, 재산 분할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 그 합의서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변호사 사무실의 상담 현장에서 이런 사례를 자주 접한다. 협의이혼 당시 “매달 150만 원씩 양육비를 주겠다”고 합의하고 서로 서명까지 했는데, 몇 달 뒤 전 배우자가 이를 어기자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했던 경우다. 합의서가 있는데도 왜 바로 강제집행을 못 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합의서를 작성했더라도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 서명한 종이는 있었지만, 그 문서는 아무런 힘도 없는 휴짓조각이었던 셈이다.
합의서에 꼭 들어가야 할 내용
이혼합의서를 제대로 작성하려면 우선 담아야 할 내용부터 빠짐없이 챙겨야 한다. 미성년 자녀가 있다면 친권자와 양육권자 지정이 가장 먼저다. 여기에 양육비 금액, 지급일, 지급 계좌, 면접교섭 조건이 뒤따라야 한다. “매달 양육비를 준다”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계좌번호와 날짜를 명시해야 추후의 다툼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
재산분할도 마찬가지다. 부동산이 포함될 경우 등기부등본상 정확한 소재지, 지번, 면적까지 특정해야 한다. 금융자산도 계좌번호, 보험은 증권번호를 기재해 대상을 명확히 특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위자료 역시 지급하기로 했다면 금액과 방법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면 ‘위자료는 청구하지 않기로 한다’는 문구를 명시해야 향후 다툼을 막을 수 있다.
핵심은 ‘공정증서’다
합의서 내용을 다 갖췄다면 이제 어떻게 법적 효력을 부여할지가 문제다. 공증이 답인데, 여기서도 방식이 중요하다. 공증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당사자 서명을 확인해 주는 ‘사서증서 인증’이고, 다른 하나는 공증인이 직접 문서를 작성하는 ‘공정증서’다.
사서증서 인증은 ‘이 서류가 진짜임’을 증명하는 데 그친다. 상대방이 약속을 어겨도 법원에 별도 소송을 제기해 판결을 받아야 비로소 강제집행이 가능하다. 반면 공정증서 방식은 문서 안에 “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에는 즉시 강제집행을 받겠다”는 강제집행 인낙 문구를 넣으면, 소송 없이 이 공정증서 정본 하나만으로 급여나 예금 계좌를 압류할 수 있다. 양육비가 밀릴 경우에는 전 배우자의 고용주를 통해 급여에서 직접 공제하는 ‘양육비직접지급명령’도 법원에 신청할 수 있다. 번거롭고 긴 소송 절차 없이 신속하게 권리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육비와 재산분할 금전채무에는 반드시 공정증서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비용은 목적 금액에 따라 산정되는데 통상 수십만 원 수준이다. 소송 비용과 시간, 그리고 받지 못한 양육비를 생각하면 훨씬 저렴한 보험이다. 공증을 받으러 갈 때는 부부가 반드시 함께 출석해야 한다. 별도의 증인은 필요 없다. 신분증, 인감증명서(각자), 인감도장을 지참하면 된다. 부동산이 포함된 경우에는 등기부등본도 챙겨가는 것이 좋다. 미리 합의 내용을 정리한 문서를 공증사무소에 이메일이나 팩스로 보내두면, 담당자가 사전에 검토해 공정증서 초안을 마련해두기 때문에 방문 당일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혼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다. 자녀가 있다면 더욱 그렇다. 합의가 됐을 때 제대로 된 문서로 남겨두는 것, 그리고 그 문서에 법적 강제력을 부여해두는 것. 감정이 격해질 수 있는 시기일수록 냉정하게 챙겨야 할 부분이다. 단단한 합의서 하나가 수년간의 분쟁과 소모를 막아주는 최선의 방패다.
홍민호 변호사
홍민호 변호사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