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는 공존의 시작, 미움은 공멸의 시작
이호준 화가·시인
2026년 08월 03일(월) 22:00
칡은 왼쪽으로 오르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오른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자라던 두 덩굴은 결국 한 몸처럼 얽힌다. 우리 조상들은 이 모습에서 ‘갈등(葛藤)’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자연은 오래전부터 인간 세상의 이치를 말없이 보여 주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 또한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간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품어 온 꿈이 다르며, 마음 속에 새겨진 상처와 기쁨도 같을 수 없다. 생각이 다른 것은 잘못이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은 세상을 더 넓고 깊게 만드는 힘이다. 문제는 다름을 틀림으로 단정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이해하지 못한 다름은 편견이 되고 편견은 미움으로 자라나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 갈림길에 서 있다. 국민통합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90% 이상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 정치적 갈등은 92.4%에 이르고 소득계층 갈등과 세대 갈등, 지역 갈등과 젠더 갈등 역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사회 곳곳에서 대립이 깊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상대의 말을 듣기보다 편을 가르고 이해하기보다 자신의 목소리를 높인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균열이 가정으로까지 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부는 작은 말 한마디에 등을 돌리고 부모와 자녀는 세대라는 벽 앞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형제는 재산 앞에서 남보다 더 멀어지고 이웃은 사소한 이해관계로 오랜 정을 잃는다. 사회가 흔들리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곳은 언제나 가정이다. 가정은 사회를 비추는 가장 작은 거울이기 때문이다.
숲의 모든 나무가 같은 높이와 같은 빛깔이라면 숲은 생명을 잃는다. 서로 다른 나무가 어우러질 때 숲은 더욱 깊어지고 다양한 악기가 함께 울릴 때 아름다운 교향곡이 완성된다. 민주주의 역시 서로 다른 의견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갈등은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상대 진영에 대한 무조건적 반대는 공동체의 뿌리를 썩게 만드는 독이 된다.
역사는 증오가 어디까지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홀로코스트는 한 집단을 향한 미움이 얼마나 참혹한 비극을 낳는지를 증명한 사건이었다. 전쟁은 총성이 울리기 전에 사람의 마음속에서 먼저 시작된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순간 평화는 이미 무너진다.
동양의 지혜는 오래전부터 다툼보다 조화를 더 큰 가치로 보았다. 노자는 물을 가장 위대한 스승이라 했다. 물은 바위를 밀어내지 않고 다투지도 않지만 쉼 없이 흐르며 끝내 바위를 품고 길을 만든다.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단단한 것을 이긴다는 그의 가르침은 이해와 포용의 힘을 일깨운다.
공자 또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라고 했다. 군자는 서로 다르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소인은 같아 보이지만 끝내 화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참된 공동체는 같은 생각을 강요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곳에서 자란다.
살아보니 세월은 말이 없지만 품어 준 마음은 오래도록 기억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오랜 원망을 녹이기도 하고 한순간의 미움이 평생의 인연을 끊기도 한다.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것은 힘이 아니라 이해였고 물질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다. 한 걸음 먼저 다가가는 용기와 한 번 더 귀 기울이는 여유이다. 상대를 바꾸려 하기보다 먼저 이해하려는 마음, 그것이 갈등을 공존으로 바꾸는 첫걸음이다.
갈등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지만 미움은 인간이 선택하는 비극이다. 이해는 공존의 시작이고 미움은 공멸의 시작이다. 우리는 서로의 생각이 같아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르기에 더욱 이해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칡과 등나무가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가르쳐 준 삶의 지혜이며 오늘 우리가 다시 마음에 새겨야 할 시대의 교훈이다.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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