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이슈분석] EU 배터리 '줄파산' 과 對中 규제… 韓 배터리의 진격은 계속...

아시아 배터리 거인들에 맞서겠다던 유럽 대형 스타트업들이 '데스밸리(死의 계곡)'를 넘지 못하고 줄줄이 가동을 멈췄다. 자국 기업 육성의 EU 구상은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EU가 세운 중국산 차단 장벽이 역설적으로...

[이슈분석] EU 배터리 '줄파산' 과 對中 규제… 韓 배터리의 진격은 계속...

노스볼트·모로우배터리 연쇄 파산…EU 독자 공급망 구축 전략 붕괴

中 저가 물량 공세에 유럽 신생 업체 줄줄이 백기…

LG엔솔·삼성SDI·SK온, 유럽 배터리 캐파 78% 독점

EU가 세운 중국산 차단 장벽이 역설적으로 한국 기업에 ‘천재일우’의 기회가 되고 있다.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아시아 배터리 거인들에 맞서겠다던 유럽 대형 스타트업들이 ‘데스밸리(死의 계곡)’를 넘지 못하고 줄줄이 가동을 멈췄다. 자국 기업 육성의 EU 구상은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EU가 세운 중국산 차단 장벽이 역설적으로 한국 기업에 ‘천재일우’의 기회가 되고 있다.

‘데스밸리’ 못 넘은 유럽 챔피언들의 몰락… 양산 수율의 가혹한 현실

유럽 배터리 자립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노르웨이의 모로우배터리와 스웨덴의 노스볼트의 연쇄 파산은 유럽 배터리 산업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6일 파산을 신청한 모로우배터리는 2024년 셀 공장을 준공하고 상업 생산에 나섰으나 끝내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리튬인산철(LFP) 분야에서 수명과 에너지 밀도를 개선한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대량 양산이라는 높은 공정 장벽 앞에서는 무력했다.

이보다 앞서 무너진 노스볼트의 사례는 더욱 뼈아프다. 누적 자금 조달액만 140억 달러에 달했던 노스볼트는 고질적인 수율 확보 실패로 양산 일정이 지연되는 국면을 면치 못했다. 기가팩토리 설계 용량인 16GWh 중 실제 납품 가능 수준이 1GWh에 그치자, 핵심 고객사인 BMW는 20억 유로 규모의 조달 계약을 취소하고 공급선을 한국의 삼성SDI로 변경했다.

이들의 실패는 양산 수율과 엔지니어링 역량이 단기간의 자본력이나 정책적 구호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영역임을 방증한다. 유럽 정부들이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붓고도 자체 수율을 정상 궤도에 올리지 못한 실책은, 지난 10여 년간 대규모 양산 노하우를 축적해 온 한국 배터리 3사의 전략적 가치를 더욱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차이나 쇼크 2.0’과 EU의 절박한 규제 드라이브

유럽 독자 생태계의 빈자리를 파고든 것은 중국의 가공할 저가 공세였다. 글로벌 원자재 가격 하락과 중국 내 과잉 생산 체제가 맞물린 ‘차이나 쇼크 2.0’은 유럽 시장을 요동치게 했다. 중국 배터리 업계는 2025년 기준 글로벌 생산량의 80% 이상을 점유하는 압도적 독점력을 바탕으로 유럽 수출을 전년 대비 43%나 폭증시켰다. 특히 BYD는 가성비 높은 LFP 배터리를 앞세워 대유럽 공급량을 전년 대비 201.4% 늘리는 경이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위기감을 느낀 EU 집행위원회는 배터리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전례 없는 강도의 규제 장벽을 실현하고 있다. 2026년 3월 발의된 ‘산업가속화법(IAA)’은 공공 조달과 국가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중국을 구조적으로 축출하기 위한 법적 프레임워크다. 이 법안은 기업용 전기차 지원금의 100%를 엄격한 역내 생산 요건을 충족하는 ‘Made in EU’ 제품에만 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핵심은 ‘역내 제조 등가성’의 범위다. EU는 FTA를 체결했거나 WTO 정부조달협정 서명국인 국가만을 우대 국가로 분류했다. 이에 따라 한국산 배터리는 EU 영토 밖에서 생산되더라도 역내산과 동일한 보조금 지위를 누리게 되지만, 중국산은 공공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당하게 된다.

규제의 부메랑… 한국 배터리 3사를 위한 기회의 문을 열다

유럽이 설계한 겹겹의 비관세 장벽들은 본래 자국 제조업 육성을 위한 시간 벌기용이었다. 하지만 이를 받아줄 역내 플레이어들이 사실상 소멸하면서, 이 빗장은 오롯이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혜택을 쓸어가는 상황이 전개됐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폴란드), 삼성SDI(헝가리), SK온(헝가리)은 유럽 전체 배터리 캐파의 78%를 독점 지배하고 있다. 유럽산 신생 기가팩토리들이 가동 불능 상태에 빠진 현시점에서, 강화되는 역내 조달 비율 요건을 충족하면서 완성차 업체들에게 즉각 물량을 신뢰성 있게 조달할 수 있는 파트너는 사실상 한국 기업뿐이다.

이하얀 한국외대 EU연구소 교수는 “EU 산업가속화법은 중국산 배터리를 직접 금지하기보다 보조금이 붙는 시장에서 유럽 내 생산과 역내 부가가치를 제도화하는 장치”라며, “이미 유럽 생산거점을 확보한 한국 배터리 3사에는 거대한 반사이익의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2027년 2월부터 의무화되는 ‘디지털 배터리 여권(Digital Battery Passport)’ 제도는 원자재 채굴 위치부터 수명 정보까지 일괄 증명해야 하는 기술 장벽으로, 고도의 친환경 공정을 갖춘 한국 가치사슬 생태계에 강력한 시장 장벽 효과를 제공할 전망이다.

남겨진 숙제, 공급망 탈중국화와 포트폴리오 다변화

하지만 한국 배터리 산업이 이 독점적 지위를 지속 가능한 패권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막중하다. 가장 시급한 것은 광물 공급망의 탈중국화다. 배터리 셀 제조 공장이 유럽에 있더라도, 핵심 원료인 리튬, 코발트, 흑연 등의 정련 단계가 중국에 묶여 있다면 향후 2027년 시행될 배터리 규정의 환경 감사를 넘어서지 못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중국의 강점이었던 LFP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보완해야 한다. 유럽 시장의 중저가 전기차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배터리사와 소재 협력사들은 전폭적인 LFP 라인 전환을 추진 중이다. 아울러 유럽 기업들이 양산 실패를 인정하고 차세대로 눈을 돌려 시도 중인 전고체나 나트륨이온 배터리 분야에서도 기술적 초격차를 유지해야 한다.

중국 기업들의 유럽 내 생산기지 구축도 변수다. 국내 한 배터리업체 관계자는 "IAA 본격 가동으로 유럽내 생산 공장을 가동 중인 국내 업체들이 EU 규제 대응 면에서 확실히 유리한 상황이긴 하다"며 "하지만, 닝더스다이, 비야디 또한 유럽 내에서 추가 거점을 구축하고 있어서 장기적으로 낙관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유럽 배터리 영토의 재편 흐름은 한국 배터리가 단순한 가성비 경쟁을 넘어 법적 표준을 지배하는 ‘규제 적격형 프리미엄 제조업’으로 진화해야 함을 시사한다. 보호무역의 장벽 뒤에서 구축된 이 기회의 창을 통해 한국 배터리 산업은 단순한 제조사를 넘어 유럽의 경제 안보를 책임지는 핵심 전략 파트너로 거듭나야 할 시점이다.

신경훈 편집인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