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범인을 쫓던 수사반장이 어느 집에서는 아버지로 기억됐다. 양촌리의 김 회장이었던 그는 세월이 흐른 뒤 전국의 밥상을 찾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故 최불암은 역할이 바뀌어도 늘 가까운 곳에 있는 어른이었다.
지난해 11월 故 이순재, 올해 1월 故 안성기에 이어 최불암까지, 한국 대중문화의 오랜 시간을 함께한 배우들이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최불암이 남긴 친숙함은 오랜 만남에서 비롯됐다. ‘수사반장’의 박영한 반장과 ‘전원일기’의 김 회장은 시청자가 반복해서 만나온 인물이었다. 사건을 해결하고 가족과 마을의 일을 겪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배우의 얼굴은 안방의 일부분이 됐다. 다음 방송에서도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믿음이었다.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실제 사람들의 삶으로 걸어 들어갔다. 음식을 맛보고 이야기를 듣는 최불암의 모습 뒤로 한 가족의 역사와 지역의 기억이 펼쳐졌다. 2011년부터 14년간 이어온 프로그램에서 지난해 하차한 뒤에는 재활에 힘썼다. 시청자에게 익숙했던 목소리와 웃음은 이제 그가 찾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남았다.
한 시대를 품었던 국민 배우들과의 쓸쓸한 작별은 지난해 11월 25일 이순재의 부고부터 이어졌다. ‘사랑이 뭐길래’의 엄격한 아버지였던 그는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권위가 무너지는 모습으로 웃음을 줬다. 부모 세대에게는 근엄한 배우였던 그가 자녀 세대에게는 능청스러운 시트콤 배우로 다가선 셈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세대와 만나는 방법을 찾아낸 배우였다.
황혼의 나이에도 항상 다음 작품을 준비했다. 연극 ‘리어왕’의 방대한 대사를 소화했고 ‘갈매기’로 연출에 도전했다. 드라마 ‘개소리’로는 2024년 KBS 연기대상을 받았다. 오래 연기한 배우에 대한 존경에 더해, 여전히 새 역할을 맡는 현역 배우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던 행보였다.
올해 1월 5일에는 안성기가 세상을 떠났다. 1957년 ‘황혼열차’의 아역배우로 출발한 그는 ‘만다라’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화장’ 등 서로 다른 작품으로 한국영화의 시간을 채웠다. 진중한 얼굴과 인간적인 허점, 코미디와 깊은 고뇌가 한 배우의 필모그래피 안에 공존했다.
관객마다 안성기를 처음 만난 영화는 달랐지만, 익숙한 얼굴을 새로운 인물로 받아들이는 경험은 이어졌다. ‘국민 배우’라는 호칭에는 그 오랜 신뢰가 담겨 있다. 혈액암 투병 중에도 복귀를 준비했던 만큼, 그의 부고는 다시 스크린에서 만나기를 기다렸던 관객에게 더욱 아픈 소식이었다.
세 배우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대를 이어줬던 한국 대중문화 역사 그 자체였다. 이들의 작품을 돌아보는 일은 부모와 함께 보던 드라마, 누군가와 찾아갔던 극장을 함께 떠올리는 일이기도 하다. 비록 거목들은 영면에 들었지만, 그들이 남겨놓은 무수한 장면은 앞으로도 오랜 시간 우리 곁에 머물 것이다. khd998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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