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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선의 인물과 식물]마리 퀴리와 플라타너스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들이 있다. 마리 퀴리가 평생을 좇았던 빛도 그렇다.

[이선의 인물과 식물]마리 퀴리와 플라타너스

이선의 인물과 식물

마리 퀴리와 플라타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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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 한국전통문화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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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들이 있다. 마리 퀴리가 평생을 좇았던 빛도 그렇다.

앙리 베크렐이 발견한 우라늄 광선에 주목했던 퀴리는 피치블렌드를 연구하던 중 그 광물이 우라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강한 방사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오랜 실험 끝에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했고, 이 에너지를 ‘방사능’이라고 불렀다. 그의 연구는 원자물리학과 현대 의학의 새로운 문을 여는 계기가 되었으며, 마리 퀴리는 1903년 노벨 물리학상과 1911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그는 노벨상을 받은 최초의 여성이자 두 차례 수상한 최초의 인물이다.

실험에 몰두하던 퀴리는 1912년 파리 라듐 연구소 뒤뜰에 작은 정원을 조성했다. 자연과 생명을 보며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원 공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직접 흙을 고르고, 플라타너스와 피나무 묘목을 심었다. 연구소가 문을 열 무렵이면 키 큰 나무들과 꽃들이 만발한 정원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는 실험실 테라스에서 수시로 정원의 식물들을 감상하며 머리를 식혔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방사선을 연구하던 그에게 초록의 빛과 향기는 또 다른 위안이었을 것이다. 퀴리는 193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작은 정원을 돌봤다. 이곳은 2017년 퀴리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공식적으로 ‘마리 퀴리 정원(Jardin Marie Curie)’으로 명명되었다.

그 정원에 심긴 플라타너스는 고대 아테네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나무였고,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학당 산책길의 가로수였다. 피나무 또한 슬라브 민족의 신화와 전통 속에서 신성한 나무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퀴리의 정원은 단순한 휴식처가 아니라 과학과 사유, 조국에 대한 기억이 함께 깊이 자라는 장소였다.

실험복 주머니에 항상 라듐이 든 시험관을 지니고 다녔을 만큼 연구에 몰두했던 과학자 퀴리. 그는 재생불량성빈혈로 사망했는데, 방사선에 장기간 노출된 것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훗날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의 유해는 프랑스 위인들이 잠든 파리 팡테옹에 안치되었다. 그의 유해는 납으로 봉인된 채 그곳에 머물지만, 그가 남긴 과학 정신만은 봉인되지 않았다. 그것은 오늘도 지구 곳곳의 실험실과 연구소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꿰뚫어 보려 했던 깊고 그윽한 그의 눈빛은 여전히 우리를 독려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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