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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칼럼] 숫자 1이 아닌 한 명의 사람

오늘날 의료계는 의대 증원 규모를 둘러싼 논쟁과 필수의료의 공백 등 여러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의료인들의 헌신으로 가까스로 유지되어 온 군의료와 지역 공공의료의 위기는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의료칼럼] 숫자 1이 아닌 한 명의 사람

김덕수

달성군의사회 기획이사

원이비인후과의원 원장

오늘날 의료계는 의대 증원 규모를 둘러싼 논쟁과 필수의료의 공백 등 여러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의료인들의 헌신으로 가까스로 유지되어 온 군의료와 지역 공공의료의 위기는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의료인력을 그저 채워 넣어야 할 숫자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올해 국방부가 국회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군의관 신규 임관 인원은 2025년 692명에서 2026년 304명으로 56.1% 감소했다. 반면 2026년 전역 예정 인원은 745명으로, 신규 임관 인원과의 차이는 441명에 달한다. 지역 공공의료의 상황도 심각하다. 의과 공중보건의 전체 인원은 2017년 2천116명에서 2025년 945명, 2026년 593명으로 9년 사이 약 72% 감소했다. 2026년 신규 임용 인원은 98명으로, 복무만료 예정 인원 450명의 21.8%에 불과하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한 국회의원은 의사의 소명의식을 강조하며, 돈을 벌기 위해 군의관 복무 단축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소명의식을 강조하는 것만으로 인력 수급의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 개인의 헌신에 의존해 유지해 온 시스템이 한계에 부딪혔다면, 이제는 그 헌신이 지속될 수 있는 제도적 조건부터 물어야 한다.

필자는 훈련기간을 포함해 38개월간 군 복무를 했다. 야전부대 의무실에서 이비인후과 전문 진료나 수술과는 무관한 단순 외상 진료와 사격장 의무대기 등을 반복하며 임상적 경력 공백에 공허함을 느끼던 중 의무병으로 배치된 P를 만났다. 의대 재학 중 입대한 현역병이었던 그는 자대 배치 전 1개월을 제외하고 17개월간 필자와 함께 생활했다. 그는 필자보다 약 20개월 먼저 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뒤 군 복무를 했던 필자와 달리, 그는 의대 재학 중 병역의무를 이행했기에 이후 전문의로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군 복무로 인한 추가적인 임상 경력 단절을 겪지 않을 것이다. 같은 군 조직 안에서도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시점에 따라 감당해야 하는 시간과 기회비용은 달랐다.

문제는 군의료와 지역 공공의료의 유지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긴 복무기간과 비효율적인 배치, 비자발적인 경력 공백을 당연시해 온 제도에 있다. 이러한 문제는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에 국한되지 않는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만으로 필수의료가 원활하게 작동하리라 기대하는 시각에서도 비슷한 한계를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절대적인으로 인력이 부족하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양적 확충은 필요하다. 그러나 필요한 곳에 인력을 확보하는 일과, 확보한 인력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일은 균형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는 정원을 채우고 인력을 배치하는 것만으로 정책의 성과를 판단하는 낡은 문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군과 지역 공공의료에서는 모든 기관이 최소한의 진료 기능을 유지하도록 인력을 분산 배치하기보다, 중증 및 응급 진료 역량을 군병원과 공공의료원 등 거점기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경증질환은 협력 된 민간의료기관으로 이송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의대 증원 규모를 과학적으로 산출하고, 필수의료 분야의 합리적 보상과 법적 안전망을 갖춰야 한다. 인력을 더 확보하는 일만큼이나, 이미 현장에서 헌신하고 있는 의료진이 이탈하지 않고 환자를 위해 망설임 없이 결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돕는 일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헌신이 정당하게 보상받고 보호되는 모습을 통해, 후배들은 현실의 벽을 넘어 자신의 꿈을 항해 나아가 숭고한 유산을 이어갈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의료는 단순히 가벼운 감기를 5분 더 일찍 진료받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나와 내 가족이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때 우리를 살려줄 의료진이 늘 그곳에 함께하는 것, 그것이 좋은 의료의 본질이다.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의 부족은 분명한 위기다. 그러나 이 위기를 군의료와 지역 공공의료를 넘어 의료인력을 바라보는 방식까지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사람을 숫자로 세는 행정은 정원을 채울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숫자를 채우는 것만으로 좋은 의료를 만들 수는 없다.

서류상의 ‘숫자 1’을 채우는 데 그치지 않고, 한 명의 의사가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하며 지속적으로 헌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좋은 의료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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