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우 주필
추석 밥상에서 국민이 걱정한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아니었다. 장바구니 물가와 집값, 자영업자의 줄어든 매출, 농지 전수조사 뒤 내 땅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와 거대 여당 더불어민주당은 민생의 아우성보다 자신들을 향한 비판에 더 민감하다. 국정이 흔들리면 정책을 고칠 생각부터 해야 한다. 비판하는 사람을 정쟁 세력으로 몰아세우는 것이 이 정권의 버릇이 돼서는 안 된다.
지지율은 이미 경고장을 보냈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 평가는 9월 둘째 주 33.8%까지 내려갔다. 셋째·넷째 주에는 소폭 반등했지만, 일시적 반등으로 누적된 불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 국정운영 부정평가가 여전히 60%를 넘고 있다. 어느 사건 하나가 부정평가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부동산과 물가, 농지 전수 조사와 인사 실패, 사법 논란과 안보 대응이 한꺼번에 국민의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는 점은 외면하기 어렵다.
농지 전수조사는 정부의 독선이 빚은 혼란이다. 투기 농지를 찾아내자는 취지는 좋다. 그러나 농촌에는 고령의 부모가 이웃에게 논을 맡기고, 남의 땅을 빌려 평생 농사짓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당정은 뒤늦게 명백한 투기가 아닌 관행적 위반은 정상화할 기회를 주고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했다.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농민에게 사과했다. 국민을 불안하게 해놓고 사후에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정책이 아니라 뒤처리다.
주거비와 물가에 짓눌린 국민에게도 필요한 것은 의지가 담긴 구호가 아니라 체감할 수 있는 결과다. 정부가 고위험 투자상품을 허용한 뒤 개인투자자의 손실을 둘러싼 논란이 커졌다면, 금융당국은 어떤 위험을 검토했고 어떤 보호 장치를 마련했는지 밝혀야 한다. 손실을 모두 정부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결정 과정에 대한 자료 요구 앞에서 ‘비공개 회의’와 ‘회의록이 없다’는 답만 반복한다면, 국민은 누구를 믿고 투자하겠는가.
더 큰 문제는 권력이 국민의 삶보다 자신들의 사법 문제에 매달려 있다는 인상이다. 민주당이 추진한 ‘조작기소 특검’ 법안에 기존 기소 사건을 처분할 수 있는 조항이 들어가자 공소취소 논란이 일었다. 이 대통령은 18일 그 조항을 빼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다면 왜 애초에 그런 조항이 법안에 담겼는가. 대통령 관련 사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제도를 거대 여당이 앞장서 바꾸려 했다는 의심부터 해소해야 한다. 대법관 재제청 문제를 둘러싼 충돌까지 겹치면서 사법부의 독립보다 정권의 뜻이 앞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의석이 많다고 사법제도를 마음대로 고칠 권한까지 얻은 것은 아니다.
인사에서도 책임지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논란이 불거지면 후보자는 버티고, 여당은 감싸고, 여론이 악화된 뒤에야 사퇴가 뒤따른다. 처음부터 제대로 검증했다면 피할 수 있었을 일이다. 국민이 묻는 것은 ‘누가 물러났느냐’만이 아니다. 누가 추천하고 검증했으며, 숱한 경고에도 왜 임명을 밀어붙이려 했느냐다. 책임자가 빠진 사과는 다음 인사 실패를 예약할 뿐이다.
장병 세 명이 다친 비무장지대 지뢰 추정 폭발 사고 앞에서도 정부는 의문을 신속하고 투명하게 풀어야 했다. 군과 유엔사는 사고 엿새 뒤인 27일 합동 현장조사를 했다. 사고 원인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면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조사 일정이 늦어진 이유와 확보한 증거를 차례로 공개하면 된다. 북한군 포로 두 명을 한국으로 데려온 결정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송환 공개를 둘러싸고 우크라이나와 ‘비공개 합의’ 여부가 엇갈린다면 외교적 공방을 키우기 전에 경위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안보에서 필요한 것은 신경질적인 반응이 아니라 국민이 믿을 만한 설명이다.
민주당은 대통령을 지키라는 지지층의 목소리만 듣고 국민 전체의 경고를 흘려보내선 안 된다. 절대다수 의석은 불리한 질문을 묵살하라고 준 권력이 아니다. 잘못된 정책을 고치고, 부실 인사를 막고, 정부를 감시하라고 맡긴 책임이다. 그런데 여당이 대통령의 방패가 되는 데 급급하면 국회는 누구를 대신해 일하는가.
제1야당 국민의힘도 구호만으로 면책될 수 없다. 현수막과 규탄 회견을 넘어 농민 보호 법안, 투자자 보호 대책, 장병 안전을 위한 조사와 재발 방지책을 결과로 내놓아야 한다. 여당의 폭주가 야당의 무능까지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추석민심은 분명하다. 국민의 살림살이를 먼저 챙기고, 권력을 절제하며, 잘못했으면 고치라는 것이다. 정부와 민주당이 이 경고마저 ‘정쟁’이라고 부른다면 다음에 돌아올 것은 더 차가운 민심이다. 국민들은 다 안다. 누가 민생을 위해 일하고, 누가 권력을 지키기 위해 민생을 말하는지.
윤덕우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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