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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유태선 시민기자] 재주만 부리고 돈은 못 버는 러시아 (上)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적어도 하나 이상의 –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소하지만 본인에게는 심각한 - 트라우마 또는 콤플렉스에 시달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유태선 시민기자] 재주만 부리고 돈은 못 버는 러시아 (上)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연합뉴스]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적어도 하나 이상의 –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소하지만 본인에게는 심각한 - 트라우마 또는 콤플렉스에 시달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시험만 보면 떨어진다. 주변에서 모두 인정하는 머리가 좋은 사람인데 아무리 시험공부를 열심히 해도 그 결과는 항상 불합격이다.

어떤 사람은 계속 연애에 실패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배우자로 이 정도 외모, 성격, 능력을 동시에 갖춘 남자 또는 여자를 찾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사랑의 전선에서 연전 연패한다.

어떤 사람은 그 능력이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아니 누가 보더라도 당대 최고의 인재이면서 여기에 더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도 평생에 걸쳐 궁핍하게 살아간다.

국가를 개인에 비유하자면 전세계 나라들 중 가장 큰 영토를 가지고 있는 러시아는 세번째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발트해 연안에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면서 유럽과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했던 1703년 이후 지난 300년 동안 러시아는 음악, 문학, 미술 등 예술 분야에 더하여 과학 기술에 있어서도 유럽 내 최고 수준을 유지하여 왔고 그 군대는 전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강대국 러시아의 주민들은 항상 가난에 시달려 왔고 앞으로의 경제적 전망도 좋지 않다. 3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최고 수준의 문명국가에 살면서도 단 한번도 부유했던 적이 없던 대다수 러시아인들에게 가난은 체념하고 받아들여야 할 숙명일 지도 모른다.

물질적 욕심을 내려놓고 안분지족의 삶을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도 돈 이외에는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는 벼락부자의 삶보다는 가난하지만 내적으로 충실한 소시민의 삶을 선택하려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자들 및 기술자들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경제적 번영을 누렸던 적이 없었던 러시아의 사례는 체계적으로 분석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 과학기술의 우수성

러시아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우수한 과학자들을 지속적으로 배출해 왔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은 세계 최초로 주기율표를 고안해 냈던 화학자인 드미트리 멘델레예프 (Дмитрий Менделеев; Dmitri Mendeleev; 1834년 – 1907년)일 것이다.

러시아의 경우 과학자들뿐 아니라 기술자들의 수준도 매우 높아서 놀라운 발명품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왔다.

1829년 미론 체레파노프 (Мирон Черепанов; Miron Cherepanov; 1774년 – 1842년)는 영국의 조지 스티븐슨과 같은 시기에 증기기관을 제작하였다.

1872년 알렉산더 로디긴 (Александр Лодыгин; Alexandre de Lodyguine; 1847년 – 1923년)은 미국의 토마스 에디슨보다 먼저 러시아에서 전기 백열등에 대한 발명 특권을 냈고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에서 정식 특허를 획득했다.

1913년 이고르 시코르스키 (Игорь Сикорский; Igor Sikorsky; 1889년 – 1972년)는 세계최초로 다엔진 항공기의 비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반도체, 유전공학, 컴퓨터, 레이저, 소프트웨어, 원자력 등 러시아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역량과 기술력을 보여주었다.

러시아 제조업의 특징

러시아의 과학기술이 전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이지만 러시아 제조업체들은 거의 예외없이 고전하고 있다.

전제정치 하의 러시아에서 러시아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최고 권력자의 관심 분야에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의 놀라운 발전과 성장을 보여준다.

수십년이 지난 후 최고 지도자의 관심사가 변하거나 다음 지도자가 들어올 때마다 러시아 제조업이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와 뒤쳐지는 분야는 계속 변화한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이 끝났을 때 러시아는 군수산업 분야에서 유럽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했다.

1815년 빈 회의 이후 유럽에 평화가 찾아오자 철도, 전기 부문에서 러시아가 유럽 대륙의 선두주자로 나섰고 20세기에는 반도체, 생명공학, 컴퓨터, 레이저 등 당시 첨단 산업 분야에서 항상 최정상의 자리를 차지했다.

문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특히 차르 등 최고 권력자가 그 시대의 특정 최첨단 기술에 관심을 기울였다가 해당 기술의 보편화에 따라 더 이상 크게 신경을 쓰지 않게 되는 순간부터 러시아의 해당 산업은 급속도로 몰락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전 인류에게 첨단 과학기술을 통하여 러시아인의 위대함을 인식시킨 후 해당 기술이 보편화되어 상용화의 단계에 들어가면 러시아의 제조업체들은 급속한 몰락의 길에 접어들기 시작한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자본주의 국가들의 시각에서 보면 러시아의 과학자들 및 기술자들은 아직 돈 벌이가 되지 않는 과학 기술 분야에서 놀라운 창의력을 발휘하여 전 인류의 삶에 크게 기여한 후 해당 기술을 활용하여 큰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소리 없이 사라지는 서커스단의 재주 넘는 곰과 같은 존재이다.

유태선 시민기자 (개인사업가)

유태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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