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월요논단] 방향 잃은 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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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06 18면
李 정부, 단기간 눈에 띄는 결실
실용정책 성과에도 檢개혁 잠잠
주식시장 이면 부의 불평등 심화
이념 논쟁이 아닌 사회변화 절실
신승환 가톨릭대 명예교수
너무도 시대착오적이었던 계엄 사태를 극복하고 정권을 차지한 이재명 정부는 짧은 시간 동안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었다. 지난 정권 시절 끝없이 퇴행하던 국가 공동체를 되돌려 놓았을뿐 아니라, 실용주의를 표방하면서 사회 곳곳에 드리웠던 기득권의 검은 그림자를 걷어내는 듯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개혁이 겉보기에 그치고 있다는 우려가 점점 더 깊어지게 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모든 정치권력이 시민의 권리에 기반한다는 말은 그 권력이 적절히 통제되고 감시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시민의 정치적 권리를 재현하는 것이 민주사회의 권력 기반이기 때문이다. 이 정부가 들어선 지 일 년이 지났음에도 그 정치적 경로가 지향하는 사회문화적 의미는 여전히 모호하다. 그들은 수많은 개혁 담론을 주장하면서, 실용적 정책에서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민주당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 공방은 이 정부의 정치 개혁을 의심하게 만든다.
가장 중요한 검찰개혁을 비롯한 법조개혁에서는 요란한 울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가시적 성과도 나타나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보완수사권 존치를 둘러싼 소모적인 정치 공방뿐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권력 분립이라는 대원칙에 의하면 수사 및 기소 권력 분리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검찰 개혁의 후퇴는 계엄 이후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이 정부의 실용적 성과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이러한 퇴행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그뿐 아니라 언론 개혁이나 교육 개혁은 아예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주식 시장의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생활 경제의 어려움과 청년 세대의 박탈감이 극단으로 치닫는 현상은 이러한 퇴행의 분명한 징후다. 들리는 소리는 정당 내 권력 투쟁의 울림뿐이다. 이런 다툼을 민생을 위한 논쟁 과정이라고 허접하게 변명하지 마시라. 사라졌어야할 내란 지지정당의 허약함에 기대어 독주하는 민주당이 언제 정치개혁에 진정성 있게 접근했던가. 여당은 다양한 사회적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선거법과 정당법을 개정해야 함에도 다만 이러한 적대적 공생관계에 취해있다. 그 결과가 지금과 같은 증축이니 재건축이니 하는 따위의 논쟁이다. 삶을 위한 개혁과 일상 정치의 회복을 바라는 시민에게는 그저 권력 다툼의 소음으로 들릴 뿐이다.
실용에는 지향성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 삶의 지향이 다르면 실용도 달라진다. 당신의 실용과 나의 실용이 같지 않은 것은 삶의 철학이 다르기 때문이다. 철학 없는 실용은 그 경제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삶의 공허를 더하게 만들 뿐이다. 인간은 빵 없이 살 수 없지만, 빵만으로 살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민주 시민이 원하는 것은 사회 권력의 공정함과 일상 삶의 공평함을 위한 민주정치의 회복이다. 경제적 공정함과 함께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 인간 본연의 특성이다. 계엄 사태에서 적나라하게 목격한 특권 권력의 해체는 그 시작이지만, 이후 시대적 요청에 따른 사회 개혁은 인간 본연의 특성에 따른 당위이다. 이를 무시하고 권력 다툼에 허우적거리는 사이 내란 지원당은 힘을 회복하고 있다. 이 결과는 명백히 민주당 책임이다.
대학은 죽어가고 있으며 중등교육의 파탄은 뉴스거리도 되지 않을 정도다. 입시제도를 비롯한 교육 개혁은 교육철학이 전무한 관료집단에 의해 끝없이 후퇴한다. 현란한 소음과 정파적 이익에 휘둘리는 언론의 피상적 행태는 개선될 여지가 없다. 민주화 시대에 필요했던 것은 민주정치를 위한 이념적 논쟁이었다. 그러나 그 시대는 급격히 퇴조하고 지금 우리는 거대한 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 시간은 일상 삶과 존재를 지향하는 문화적 전환이 절실하다고 외치고 있다. 여전히 이념 논쟁에 허덕이면서 권력 놀음에 빠져있는 현실 정치는 이 시대적 요청에 철저히 무지하다.
시민이 지닌 다양한 삶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정치, 사회 개혁이 절실하다. 그럴 때 삶의 불안과 허무를 넘어서는 문화적 감수성이 싹을 트게 된다. 이를 위한 지성적 성찰과 삶의 철학이 필요하다. 이 외침을 듣지 못하는 정치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신승환 가톨릭대 명예교수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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