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수소 인증·계량 신뢰성·글로벌 표준 ‘3대 축’ 부상
시험인증기관 중심, 수소 산업 인프라 구축 속도
K-수소경제 활성화 흐름 속에서 인증과 계량, 표준 기반의 시장 신뢰가 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진=제미나이 생성]
세계 각국이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고 탄소중립을 실현할 대안으로 수소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장 확대를 넘어 제도와 인프라를 둘러싼 경쟁 역시 본격화되는 흐름이다. 특히 ‘얼마나 생산하느냐’를 넘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가 산업 경쟁력의 핵심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마켓인사이트(Global Market Insights)에 따르면 세계 수소 시장은 2025년 약 2147억달러(약 290조원)에서 2035년 3801억달러(약 513조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단순한 수요 증가를 넘어 인증과 표준, 검증 체계를 선점하려는 경쟁이 병행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역시 정책 드라이브가 강화되고 있다. 정부는 2019년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통해 2040년까지 수소차 620만대 생산, 수소충전소 1200개 구축 목표를 제시했다. 여기에 2020년 제정된 ‘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수소법)’을 중심으로 제도 정비가 이어지고 있다. 2026년에는 관련 규정과 지원 체계를 일원화해 산업 기반을 한층 확장하고 있다.
민간 투자도 본격화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전북 새만금에 향후 5년간 9조원을 투입해 수소·AI·로봇을 아우르는 산업 생태계 구축에 나섰다.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200MW급 수전해 플랜트와 ‘AI 수소 시티’ 조성을 통해 생산부터 활용까지 이어지는 밸류체인 확보를 추진 중이다.
이처럼 정책과 시장이 동시에 확대되면서 산업의 초점은 ‘생산’에서 ‘신뢰’로 이동하고 있다. 청정수소 여부를 판단하는 인증 체계, 유통 과정의 계량 신뢰성, 글로벌 표준 정합성 확보는 이제 시장 진입과 확장의 필수 조건으로 자리잡았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시험인증기관의 역할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KTC, 계량·인증 체계 구축…수소 ‘신뢰 인프라’ 선도
임남혁 KTC 본부장이 수소 계량 신뢰성 센터 기반구축 사업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KTC]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원장 안성일, 이하 KTC)은 수소 산업의 ‘신뢰 인프라’ 구축에 초점을 맞춘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핵심은 청정수소 인증제 운영 지원이다. KTC는 2024년 국내 최초 청정수소 인증 시험평가기관으로 지정된 이후, 청정수소 현장 데이터 및 설비 심사, 평가보고서 발행, 인증 기준 유지 점검 등 세부 체계를 구축해왔다. 이는 청정수소의 정의와 범위를 명확히 하고 시장 신뢰도를 높이는 기반으로 평가된다.
계량 분야에서도 선제적 대응이 진행 중이다. KTC는 강원 삼척에 총 199억원을 투입해 2028년까지 ‘수소 계량 신뢰성 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생산·운송·활용 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계량 오차를 줄이고 상거래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인프라다.
센터는 ▲수소 계량 신뢰성 평가 ▲이동형 현장(On-site) 계량 평가 인프라 구축 ▲수소 충전기·유량계 형식승인 및 기술 개발 지원 ▲수소 충전기 위변조 방지 시스템 및 소프트웨어 검증 등을 수행하게 된다.
KTC의 수소 전주기 계량 신뢰성 강화 전략. [제공=KTC]
글로벌 협력도 확대하고 있다. KTC는 인도네시아 국가표준청(BSN)과 협력해 수소 생산·충전 인프라 구축과 계량 표준 개발,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체계 마련 등을 추진하며 국내 기술과 표준의 해외 확산을 시도하고 있다.
안성일 KTC 원장은 “수소는 탄소중립 시대를 이끌 핵심 에너지이자 미래 유망산업”이라며 “지금은 수소 산업 생태계 기반을 구축할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KTR, 인증 넘어 자원순환까지…‘전주기 관리’로 확장
KTR이 구축 중인 수소차 폐연료전지 시험인증 특화센터 조감도. [사진=KTR]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원장 김현철, 이하 KTR)은 청정수소 인증과 수소연료전지 분야를 중심으로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KTR은 2024년 산업통상부로부터 청정수소 인증 시험평가기관으로 지정됐다.
주요 역할은 ▲온실가스 배출량 전과정 평가 및 검증 ▲수소 생산량 등 주요 데이터 및 설비 검사 ▲청정수소 인증 평가 보고서 발행 ▲인증 기준 유지 여부 점검 등이다. 동시에 청정수소 생산기술과 경제성 분석 등 정책 대응 연구를 병행하며 산업 기반을 넓히고 있다.
협력 네트워크도 확대 중이다. 2023년 수소융합얼라이언스(H2KOREA), 한국수력원자력, 동아대학교 등과 협력해 인증 대응과 기술 개발을 추진했다. 2024년에는 유럽 인증기관과의 협력까지 확대해 국제 인증 체계와의 연계를 강화했다.
지난해에는 한국가스안전공사와 청정수소 연구 개발 및 시험 인증 기술 지원, 인프라 공동 활용 업무 협약도 체결했다.
KTR 수소차 폐연료전지 자원순환 개념도. [제공=KTR]
인프라 투자 역시 속도를 내고 있다. KTR은 전북 완주 테크노밸리에 약 250억원을 투입해 ‘수소차 폐연료전지 자원순환 시험인증 특화센터’를 구축 중이다. 해당 센터는 사용 후 연료전지의 성능·안전성 평가부터 재제조·재사용·재활용 체계 구축, 반납 및 수거 등 전주기 관리 제도 마련, 자원순환 표준 제정, 수명예측 진단 모델 개발까지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향후 오픈랩 형태로 운영하고 수소차 폐연료전지를 활용한 응용 제품 실증과 맞춤형 기술 지원도 제공할 계획이다.
김현철 KTR 원장은 “시험인증과 인프라 구축은 수소경제 실현의 기반”이라며 “관련 사업을 지속 확대해 국내 수소 산업 생태계 조성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KTL, 제도 설계부터 모빌리티까지…‘표준·응용’ 양축 전략
KTL 연구원들이 수소 순도 및 발열량 분석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KTL]
한국산업기술시험원(이하 KTL)은 청정수소 인증제 설계와 수소 활용 분야 시험인증 역량을 기반으로 수소 산업 전반의 신뢰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있다.
KTL은 2021년 ‘청정수소 인증제도 설계 기술개발’ 사업을 통해 한국형 인증체계 마련을 주도했다. 수소 생산 전 과정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을 구축하고, 국내외 인증 사례와 실증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도 설계의 토대를 확보했다.
최근에는 수소 모빌리티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2025년부터 2027년까지 추진되는 ‘수소전기동차 및 인프라 시험·인증 지원’ 사업에 참여해 연료전지 기반 수소전기동차 실증과 인증체계 구축을 지원한다. 해당 사업은 수소전기동차 개발과 전용 충전소 구축, 시험평가 기준 마련 등을 포함하며 수소 철도 분야 상용화를 위한 기반 조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자체 및 연구기관과의 협력도 활발하다. 경상북도·울진군과는 원자력 기반 청정수소 생산 및 저장에 필요한 소재·부품·장치의 안전성과 성능 평가를 진행 중이다.
원자력 수소는 원자력 에너지를 사용해 물을 전기 분해해 얻는 청정수소로, 기존 신재생에너지 대비 낮은 가격으로 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신경종 포항TP 에너지사업본부장과 송준광 KTL 미래융합기술본부장(오른쪽)이 업무협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KTL]
포항테크노파크와는 수소 생산 및 활용 전반의 연구 개발과 기업 지원 체계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또 지난 2023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KIER)과 협력해 청정수소·암모니아 분야 시험평가 및 인증 체계 구축, 국제 인증 대응 역량 강화에도 나섰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신뢰 인프라’ 구축 경쟁이 향후 수소 산업의 판도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소 산업은 생산 설비 확대만으로 완성되기 어렵고, 인증과 표준, 데이터 기반 검증 체계가 뒷받침돼야 시장 신뢰가 형성되고 산업도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수소경제가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경쟁 국면에 접어들면서 신뢰 인프라 확보가 경쟁의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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