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태 전남대 석좌교수
미국과 이란은 전쟁 발발 6주차가 되면서 2주 휴전으로 종전 협상을 시작했다. 최대 쟁점은 배상금, 호르무즈 자유 통행과 우라늄 농축 금지 기간이다. 전쟁 장기화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한 때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브렌트유 기준)를 돌파했고 글로벌 에너지 물류 공급망은 붕괴 위기에 처했다. 한국은 26척 유조선이 갇혀 70%가 넘는 중동산 원유와 나프타(납사) 공급이 차단되면서 에너지, 물류, 원자재 삼중고(三重苦)로 기업의 원가 부담이 가중되어 제품 가격 상승으로 서민의 생계를 위협하고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7%로 하향할 정도로 직격탄을 맞았다. 정부는 급등한 휘발유 가격을 잡기 위해 최고가격제를 시행하고 공공부문 차량 2부제와 26조 2천억원 규모의 추경으로 대응 중이다. 여전히 달러 강세로 에너지와 원자재, 수입품 물가를 압박하고 있다.
1970년 이래 원유 공급은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를 유발하는 핵심 요인이었다. 경제 이론상 원유는 핵심 생산요소이기에 가격 상승으로 기업의 비용이 올라 재화와 서비스 공급 감소를 초래한다. 이는 총공급곡선(AS)을 왼쪽으로 이동시켜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이러한 충격의 시발점은 제4차 중동전쟁 여파로 발생한 제1차 오일쇼크(1973-1974)였다. 당시 석유수출국기구(OPEC) 내 아랍 산유국들이 석유 수출을 제한하면서 유가가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4배 폭등했다. 수입국들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었으며, 미국 또한 소비자물가지수가 10%를 넘었고 실업률이 4.9%에서 8.5%로 급등했다. 당시 중화학 공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던 한국도 경상수지 적자가 심화되는 위기를 맞았지만 아랍권과의 우호 관계로 중동 건설 붐에 참여하여 ‘오일달러’를 환수해 마이너스 성장을 피하게 됐다.
이어 발생한 제2차 오일쇼크(1979-1980)는 이란 혁명으로 석유 생산이 중단되어 유가가 13달러에서 30달러 후반까지 폭등하여 1차 때보다 더 큰 충격을 주었다. 한국은 1980년 정치·사회적 혼란까지 겹치며 1.5%라는 첫 역성장을 기록했고, 물가 상승률은 20-30%에 육박했다. 정부는 중화학 공업의 중복 투자를 조정하고 강력한 에너지 절약 정책을 시행했다. 이후 1980년대 중반 ‘3저 호황(저유가, 저금리, 저달러)’을 맞이하여 한국경제는 다시 고도 성장기에 진입했다. 과거 1차 오일쇼크 당시 정부는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임을 강조하여 경복궁 등 주요 고궁의 난방을 중단하고, 자동차 홀짝제, 승용차 공휴일 운행 금지, TV 방송 시간 단축, 주유소 야간 영업 금지 등 강도 높은 통제 정책을 펼쳤다. 가로등 격등제와 네온사인 심야 금지 등으로 거리는 암흑천지가 되었고, 결국 1974년 ‘대통령 긴급조치 제3호’가 발동되기에 이르렀다. 한편으로 원활한 석유 수급을 위한 ‘실용 외교’의 일환으로 1976년 서울 한남동에 이슬람 중앙성원이 건립되기도 했다.
제1·2차 오일쇼크는 경제성장 과정에서 절약과 통제, 심리적 구호, 실리적 외교로 대응했던 시기였다면, 이번 위기는 에너지원의 다변화와 전환이라는 새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아쉽게도 정부 규제는 기존 관행의 답습이다. 그간 LNG, 원전, 신재생 에너지 등으로 의존도를 분산했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원유 공급 차단은 전혀 다른 파괴적인 경제적 충격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번 위기는 자원이 빈약한 한국에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미·중 희토류 갈등에서 보듯, 이제는 전기차 전환만이 해결책이 아니다. 이것은 원유 의존도를 낮추는 과정에서 반도체와 배터리 핵심 원료인 리튬, 니켈, 희토류 등 특정 국가(중국) 의존도가 높은 자원에 대한 ‘새로운 광물자원쇼크’라는 또 다른 암초를 만났기 때문이다. 전기차와 데이터센터 등 ‘전기 먹는 하마’가 늘어날수록 전력 수요는 급등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지능형 전력망(스마트 그리드) 구축과 함께 원전과 신재생 에너지가 뒷받침되는 에너지 안보 체계 구축이 기회의 길이다.
한국경제는 원유 공급 충격이 지속될수록 스태그플레이션과 고환율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것이다. 정부는 추경으로 민생을 살피고 효율적인 재정 지출로 경기 위축을 막아야 하며,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안정될 때까지 금리를 신중히 운용해야 한다. 산업 정책은 수출 시장 다변화와 공급망 강화로 반도체, 자동차, AI 산업의 성장세를 유지하여 고환율을 상쇄하고 외화 유입을 촉진해야 한다. 에너지 수입의 대체 공급선과 글로벌 공급망 시스템 확보만이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한국경제의 근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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