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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울산현대사 - 대통령선거 부정개표사건

1971년 8월 17일 오전 10시 30분, 부산지방법원 유수호 판사가 판결을 내렸다. "피고인 (울산시장) 윤동수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다.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1971년 8월 17일 오전 10시 30분, 부산지방법원 유수호 판사가 판결을 내렸다. "피고인 (울산시장) 윤동수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다. 피고인 강00은 징역 1년 6월을, 피고인 허0은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다" 울산 현대사와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인 '4·27 개표조작 사건'의 결말이다.

당시 울산시장과 공무원들이 1971년 4월 27일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박정희 후보의 울산지역 개표 결과를 조작했다는 혐의였다. 76%의 득표율을 81.2%로 조작한 것이었다. 결국 사법부가 대통령 선거 개표 부정이라고 확정했고 유승민의 부친인 유 판사는 이 판결로 유신체제에 부합하지 않는 인물로 낙인 찍혀 강제로 옷을 벗었다.

제7대 대통령선거는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선거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여당인 공화당 박정희 후보와 신민당 김대중 후보는 전국을 돌며 격렬한 유세전을 펼쳤고, 국민들은 산업화와 독재, 민주주의와 체제 불안을 동시에 고민하며 투표장으로 향했다. 당시 선거는 단순한 정권 재창출 여부를 넘어 한국 정치의 향방을 가르는 분수령이었다. 특히 야당 후보 김대중의 돌풍은 박정희 정권에 예상보다 큰 위기의식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발생한 울산 개표조작 사건은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 선거가 어떻게 왜곡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남았다.

당시 울산은 정치적으로 매우 상징적인 지역이었다.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의 고향이었고,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던 전략적 도시였다. 박 정권 입장에서는 반드시 압도적인 승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곳이었다. 정권 핵심부는 선거 결과가 단순한 숫자를 넘어 권력의 안정성과 직결된다고 판단했다. 특히 전국적으로 김 후보의 지지가 예상보다 강하게 나타나, 권력 내부에서는 지역별 득표율 관리에 극도로 민감해졌다. 이 과정에서 선거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강단 있는 행정가를 원했던 중앙권력의 기대 속에 울산시장 윤동수가 고향에 부임했다. 그러나 그는 행정 책임자의 역할을 넘어 정치적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 박정희의 높은 득표율이 곧 자신의 정치적 미래와 연결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1971년 5월 5일자 '운동수 울산시장 구속' 동아일보 기사. 김잠출 제공

울산의 개표 결과는 시민들의 예상을 크게 빗나갔다. 박정희의 득표율이 지나게 높게 나온 것이다. 야당 지지자들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도무지 믿기 어렵다" "표를 도둑맞았다"는 말이 퍼지기 시작했고, 개표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의혹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당시 언론은 이미 강한 통제하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의혹이 공개적으로 제기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한 지역 기자가 이 사건을 끝까지 추적했다. 바로 대구매일신문 울산 주재 기자 한종오였다.

한 기자는 삼성 사카린 밀수 사건을 특종 보도한 경험이 있는 집요한 기자였다. 그는 울산 개표 결과가 실제 민심과 너무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구체적인 증거를 찾아나섰다. 특히 선거 당일 중앙정보부 울산 주재 요원이 시장실에 장시간 머물렀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의심을 굳혔고 시장실을 찾아갔다. 그는 "부산검찰에서 수사관이 내려오고 있다"는 말을 흘리며 시장을 흔들었다.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한 시장은 급히 자리를 떴고, 그 틈을 이용해 한종오는 휴지통 속의 찢긴 메모 조각을 확보했다. 몇 시간 동안 종이조각을 맞춰 보니 개표 결과를 조정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박정희 후보의 득표율을 특정 수치 이상으로 맞추려 했다는 정황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보도로 권력기관과 지방행정조직이 선거 결과를 조작한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중앙정보부 개입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사건은 단순한 지방 차원이 아니라 국가 권력의 선거 개입 문제로 확대되었다. 한종오는 이 보도로 그 해의 기자협회상을 수상했고, 울산 개표조작 사건은 전국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권위주의 체제에서 국가 권력이 선거를 어떻게 관리하고 통제하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동시에 언론과 사법부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음을 보여준 사례이며 지역 기자의 집요한 취재로 진실이 드러났다. 아무리 강한 권력이라도 진실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지역 기자가 복원한 메모 조각과 법정의 판결은 오늘날까지 당시의 실상을 증언하며 현대사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물론 작금의 부정 선거 음모론과는 결이 다르지만.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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