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향가 처용가와 우식악(憂息樂), 덕사내(德思內)의 소재와 배경은 '울산'이다. (석남사내나 여나산곡의 배경도 울산이란 주장이 있다) 우식악은 고려 향악 우식곡(曲)으로 이어졌고 덕사내는 오늘날 울산 중구와 남구, 울주군 범서읍 일대인 하서군(河西郡, 河曲)의 음악이었다.
파사왕이 굴아화촌을 취하여 현(縣)을 설치한 곳이 하곡인데 경덕왕 때 하서로 고쳤다. (曲은 西로도 쓴다) 옛 지명 굴화(屈火, 굴벌)와 하곡(하서)은 태화강의 '물굽이' 마을이란 뜻이다.
'나라의 근심이 사라지게 한 음악'이라는 우식곡은 단순한 태평성대의 찬가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명운을 건 희생의 기록이자, 배신하지 않는 충절의 증언이다. 신라 왕실의 가장 큰 근심이 해소된 역사적 순간을 기념해 만든 왕실 음악이기도 했다.
눌지왕이 직접 춤추며 노래를 불렀는데 동생을 맞이한 기쁨에는 박제상을 잃은 슬픔이 함께 들어 있었고, 춤이 절로 나오는 환희 속에는 충신에 대한 애도가 스며 있었다.
'삼국사기'에 "지금 향악 우식곡이 바로 이것이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 대목은 우식악이 고려 향악 우식곡으로 이어졌다는 증거다. 조선 때까지 가사는 사라졌지만, 선율은 살아남았다. '세종실록'과 '악학궤범'에 우식조(憂息調)가 거문고의 악조로 기록되어 있다.
우식곡의 공간적 배경은 울산이다. 박제상이 출항한 율포(栗浦)는 지금의 울산 북구 강동동 앞바다요, 왜국에서 탈출한 왕제 미사흔이 귀국한 굴헐역은 지금의 울주군 범서읍 굴화리다. 경주에서는 율포를 경주시 양남면 하서리(진리)로 비정한다는 주장도 있다. 울산은 신라 변방의 포구가 아니라, 왕실의 명운을 좌우하던 해상교통의 요충이자 문화적 거점이었다.
우식곡의 주인공은 사실 박제상이라 할 수 있다. 그가 배를 띄운 율포는 단순한 포구가 아니었다. 충절의 시작이자 환희의 종착지였다. 이 점이 울산 향토사에서 율포가 지닌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박제상은 양산 군수였으니 양산에서 왜국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낙동강 수로를 이용하는 것이었을텐데 이를 두고 율포를 선택했다. 왜국으로 가는 직항로였기 때문이다. 울산만에서 대마도를 거쳐 왜국 본토로 가는 해로는 고대 동아시아 해상교통의 주요 항로였다. 국가 중대사를 임무로 띠고 출항하는 충신을 위해 최적의 항로를 택했던 것이다. 그곳이 율포, 울산 북구 바다였다.
"처자식을 만나지 않고 율포에서 배를 타고 왜국으로 떠났다"(삼국사기 열전 박제상전). 김잠출 제공
박제상은 왜왕의 회유와 고문에 굴복하지 않았다. 마침내 목도에서 불태워 죽임을 당했다. 그의 나이 사십여 세, 418년 가을이었다. 덕분에 미사흔은 무사히 귀국했다. 계림 사람 강구려가 그를 호송했다. 신라 6부의 대표들과 관리들이 굴헐역에서 미사흔을 영접했다. 굴헐역(울주군 범서읍 굴화리)은 울산에서 경주로 가는 길목이었다. 왕과 형제들은 잔치를 열었다. 함께 모여 술자리를 마련하고 즐거움이 극에 달했을 때에 눌지왕이 일어섰다. 왕은 친히 노래하고 춤추었다. 근심이 사라졌다는 의미의 노래, 우식곡이 탄생한 순간이다.
우식곡은 세월이 지나면서 변했다. 박연은 "거문고 타는 법은 전하지만, 가사는 알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최자, 탁목, 우식, 다수희, 청평악, 거사련 등이 이것이다"(세종실록 세종 12년, 1430년)라고 말했다. 가사는 망실되었다는 말이다. 노래와 춤이 함께이던 가무는 거문고 연주곡으로 변했고 거문고를 연주하는 하나의 양식이 되었다.
신라 향가는 현재 25수가 전해지고 있다. 균여전에 11수와 삼국유사에 14수다. 이 중에서 구체적인 지명과 인물, 사건이 명확한 경우는 드물다. 우식곡은 율포라는 공간, 박제상이라는 실존 인물, 418년이라는 역사적 시점을 모두 갖췄다.
울산에는 박제상의 충절을 기리는 다양한 사업이 있다. 강동동에 박제상 발선처 비가 있고, 두동면에 있는 치산 서원 등에서 매년 추모 행사도 한다. 그러나 그의 충절이 빚어낸 노래, 우식곡은 잊고 있다. 율포 해안에 박제상 테마 공원을 세우고, 우식곡을 울산의 독보적인 문화 브랜드로 만들 수 있을까. 거문고 우식조의 선율을 현대적 가무극으로 복원한 뒤 오늘의 언어로 다시 부른다면 비장한 대서사시가 율포의 파도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질 것이다. 그것은 천육백 년 전 박제상의 정신이 '지금''여기'에 되살아 나는 것이 된다.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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