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서울와이어 DB
[서울와이어=정윤식 기자] 외국인 자금이 한 달 새 30조원 가까이 빠져나가며 원·달러 환율이 1500원선 턱밑까지 치솟았다. 중동발 불안에 위험 회피 심리가 커지면서 원화 약세와 증시 이탈이 동시에 가속화되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달 들어 27일까지 원·달러 환율 평균(주간 종가 기준)은 1489.3원으로 집계됐다. 외환위기 당시였던 1998년 3월을 넘어 월간 기준 역대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환율 상승세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지난주에는 장중 1517원을 넘기며 주간 평균 환율이 1503.4원을 기록했다. 주간 기준으로 환율이 1500원대를 넘어선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 이후 17년 만이다.
원화 약세는 주요국 통화와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이달 들어 달러 대비 원화 가치 하락 폭은 4.7%로 주요국 가운데 가장 컸다. 유로·엔·파운드 등 주요 통화는 물론, 호주달러·대만달러·위안화보다도 낙폭이 컸다.
이 같은 급락의 배경에는 외국인 투자자의 대규모 이탈이 있다. 이달 들어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약 30조원을 순매도하며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달까지 합치면 두 달간 순매도 규모만 50조원을 웃돈다. 지난 한 주에만 13조원 넘게 팔아치우며 주간 기준 최대 기록도 새로 썼다.
외국인의 매도 성격도 달라졌다. 지난달이 차익 실현 중심이었다면, 이달 들어서는 중동 전쟁에 따른 위험 회피 심리와 함께 AI·반도체 업종 고평가 논란이 겹치며 ‘탈(脫)한국’ 흐름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실제로 글로벌 빅테크의 기술 변화로 메모리 수요 둔화 우려가 제기되면서 반도체주가 타격을 입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전문가들은 원화 약세가 단기 충격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중동 리스크로 유가와 인플레이션 기대가 높아지면, 경기 둔화 우려와 맞물려 외국인 자금 유출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반도체 수출 비중이 큰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문제는 전쟁이 조기 종식되더라도 상황이 쉽게 되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고유가와 높은 물가 기대가 이어지는 한 원화 약세 압력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서는 환율이 당분간 1450-1510원 범위에서 등락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쟁이 확산될 경우 단기간에 1550원선을 넘길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일각에선 환율의 ‘뉴노멀’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가가 배럴당 120~130달러 수준에서 고착될 경우 환율 균형선이 1500원대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