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硏 둘러싼 이전 논의
지역 거점 성장시킬 플랫폼 역할
지금 필요한 것은 집적보다 연결
성남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
옥창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 정치학 조교수
1978년 박정희 정부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을 설립했다. 당시 조용하던 성남의 청계산 자락은 한국의 정신문화를 연구하기에 제법 적합한 환경이었을 것이다. 약 반세기가 지난 지금, 정신문화연구원의 후신인 한국학중앙연구원을 둘러싼 이전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국책연구기관과 공공기관이 지역 균형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방향성에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논의를 이전과 존치의 선택지에만 가두어서는 안 된다. 지금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어디로’ 옮길 것인가가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연결해야 하는가이다.
오늘날 경쟁력 있는 문화기관이나 연구기관들은 하나의 거대한 공간에 모든 기능을 모으지 않는다. 예를 들어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과 덕수궁, 과천, 청주에서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하나의 기관으로 연결되어 있다. 독일의 막스플랑크협회와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역시 여러 연구소와 대학, 연구자들을 잇는 분산형 연구체계를 운영한다.
각 거점은 고유한 전문성을 유지하고, 기관은 거점들이 교류하고 협력하도록 지원한다. 오늘날 연구기관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것을 한곳에 모았는가보다 얼마나 다양한 지식과 사람을 효과적으로 연결하는가에 달려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입지를 논할 때에는 연구 생태계의 현실도 함께 살펴야 한다. 성남과 그 인근에는 과천의 국사편찬위원회, 성남의 국가기록원, 서초의 국립중앙도서관과 외교사료관 등 한국학 연구의 핵심 아카이브가 밀집해 있다. 디지털 자료가 확대되고 있지만 원자료를 직접 열람하고, 여러 기관의 자료를 교차 검토하며, 자료가 생산된 맥락을 확인하는 작업은 여전히 중요하다. 성남은 이러한 자료기관들을 연결하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또한 수도권의 여러 대학 역시 하나의 거대한 클러스터를 이룬다. 이는 연구자와 대학원생들이 세미나와 공동 연구를 통해 일상적으로 교류하는 확장된 연구 공간이다. 해외 연구자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에도 수도권의 대학과 자료기관을 함께 오가며 연구한다. 성남의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이 대학 클러스터와 아카이브 네트워크의 중요한 결절점이 될 수 있다.
물론 성남에 연구원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수도권의 자원을 독점하자는 뜻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미 형성된 연구 역량을 전국의 대학과 박물관, 기록관으로 확산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중앙’은 지역의 연구 거점을 중앙이 지배하는 방사형 구조가 아니라, 각 지역의 거점을 성장시키면서 서로 연결하고, 다시 국내의 연구기관과 해외의 한국학자를 잇는 플랫폼에 가까워져야 한다.
따라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미래를 본원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데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 성남을 한국학 연구 네트워크의 허브로 유지하면서 전국의 대학과 박물관, 기록관, 지역 연구기관, 해외 한국학 연구소를 연결하는 기관으로 확장해야 한다.
지금 한국학에 필요한 것은 집적보다 연결이다. 과거의 한국학이 하나의 중심을 세우는 일이었다면, 앞으로의 한국학은 수많은 연구 거점이 서로 만날 수 있도록 길을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학이 다루는 ‘한국’도 단일한 중심에서 바라본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지역과 경험이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다채로운 공간으로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학교에는 인천공항과 교내의 호암교수회관을 한 번에 잇는 공항버스 노선이 존재한다. 해외 연구자와 대학의 연결을 고려한 인프라일 것이다. 한국학 역시 지난 수십년 동안 해외 연구자와 연구기관을 연결하면서 성장해왔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전 논의 속에서는 한국학이 앞으로 국내의 지역과 세계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가 과연 얼마나 심도있게 논의되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중앙’은 모든 것을 모아두는 장소가 아니라, 흩어진 지역들과 기관, 사람과 지식을 이어주는 기능으로서 새롭게 이해되어야 한다. 지금 시대에 필요한 것은 연결의 한국학이다.
/옥창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 정치학 조교수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