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투데이] 오픈AI가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노동시장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며 자본 과세 강화와 사회 안전망 확대를 골자로 한 정책 제안서를 공개했다. ‘지능 시대 산업 정책(Industrial Policy for the Intelligence Age)’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기술 청사진을 넘어 산업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 자체가 바뀔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AI가 인간의 지적·경제적 노동을 광범위하게 대체하면서 경제 구조가 ‘노동’이 아닌 ‘자본(기계와 알고리즘)’ 중심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소득은 감소하고 자본 수익은 집중돼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으며, 근로소득세에 기반한 복지 재정 구조 역시 압박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오픈AI는 이러한 변화를 단순한 기술 진보가 아니라 제도적 전환을 요구하는 구조적 충격으로 규정했다.
자본이득세 인상·로봇세·공공기금…파격적 해법 제시
보고서에는 구체적인 정책 방향도 담겼다.
첫째, 세제의 무게중심을 노동에서 자본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상위층 자본이득세 인상과 법인세율 재조정, AI 자동화에 대한 이른바 ‘기계세(로봇세)’ 부과 검토 등이 거론됐다. AI로 인한 생산성 이익이 기업에 집중될 경우 이를 과세를 통해 일부 환수해야 한다는 취지다.
둘째, AI가 창출한 부를 사회 전체가 공유할 수 있도록 공공 부유기금 또는 배당형 기금을 조성하자는 제안이 포함됐다. AI로 인한 초과 이익을 재원으로 국민에게 ‘효율성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언급됐다.
셋째, 생산성 향상을 노동자의 삶의 질 개선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임금 삭감 없는 주 32시간, 즉 주4일 근무제 도입 가능성을 제시했다. AI로 대체되는 일자리 대신 돌봄·보육·지역사회 서비스 등 인간 중심 업무로 전환을 지원하는 정부 프로그램 필요성도 강조했다.
보고서는 더 나아가 초지능 AI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에 대비해 국가 차원의 감시·검증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AI 표준·혁신 센터의 권한을 강화하고 위험 평가 체계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워싱턴의 냉담한 반응…“문서보다 행보가 중요”
그러나 워싱턴 정치권의 반응은 차가웠다. 정책 문서 자체가 던진 문제의식에는 공감하는 시각도 있었지만, 실제 입법과 로비 활동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우세했다.
특히 샘 알트먼 CEO의 과거 규제 대응 이력이 논란으로 거론된다. 그는 2023년 고도화된 AI 모델을 감독할 연방 기관 설립을 공개적으로 지지했지만, 일각에서는 관련 안전 법안 통과를 물밑에서 저지하려 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캘리포니아주 AI 법안과 관련해서도 공개 입장과 실제 대관 활동 사이에 괴리가 있었다는 주장들이 나온 바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정책 제안 역시 “정책 방향 제시”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기술 안전 연구 인력의 문제의식과 실제 기업의 로비 전략이 일치할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진보는 공감, 보수는 반발…‘사회주의’ 논란
정치 지형도 엇갈린다.
AI로 인한 불평등 심화를 우려해온 진보 진영에서는 오픈AI의 제안이 일정 부분 기존 분배 담론과 맞닿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AI 성장의 과실을 국민 전체와 공유하자는 구상은 기본소득형 기금 논의와도 연결된다.
반면 저세율·민간투자 중심의 성장 전략을 선호하는 보수 진영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법인세 인하를 성장 정책의 핵심으로 보는 공화당 및 중도 보수 세력에게 자본 과세 강화와 로봇세 도입은 사실상 ‘사회주의적 접근’으로 받아들여진다.
일각에서는 오픈AI가 과거에는 규제 완화 기조에 우호적인 행보를 보였으면서, 이번에는 바이든 행정부 시절 정책 방향과 유사한 제안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정치적 일관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생산성 부족이 아니라 과잉이 문제”라는 경고
그럼에도 이번 보고서는 AI가 초래할 수 있는 ‘과잉 생산성의 위기’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전통적으로 경제 위기는 생산성 저하에서 비롯됐지만, AI 시대에는 생산성이 지나치게 높아져 고용과 세수 기반이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 제기다.
한 산업 정책 전문가는 “오픈AI의 제안은 단순한 세제 개편안이 아니라, AI로 인해 노동의 역할이 축소될 경우 국가 재정과 복지 시스템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구조적 질문”이라며 “정치적 실현 가능성과 별개로, 이제는 이런 논의를 시작하지 않으면 대응 시점을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핵심은 로봇세 자체가 아니라, AI가 창출한 부를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계약 안에 편입시킬 것인지에 대한 합의”라고 덧붙였다.
한국도 예외 아니다…세수 구조 전환 압박
AI 자동화 속도가 빠른 한국 역시 이 논의에서 자유롭지 않다. 제조업 비중이 높고 자동화율이 높은 경제 구조상, 노동소득 기반 세수가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향후 정책 논의는 고용률뿐 아니라 기업 매출 대비 AI 투자 비중, 자본이득세와 근로소득세 격차, 국가 차원의 부의 기금 조성 여부 등 새로운 지표를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오픈AI의 이번 제안은 당장 법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러나 기술 기업이 스스로 기술 권력의 사회적 파급력을 인정하고 제도적 재설계를 공개적으로 제안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은 작지 않다.
AI가 인간의 노동을 넘어서는 시대가 도래한다면, 바뀌어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회의 규칙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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