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주 이산면의 폐교를 개조해 자리를 잡은 소백산예술촌 전경. 클라우드컬처스 제공
“폐교를 문화공간으로 만드는데 쓰레기만 150t 실어냈어요.”
경북 영주시 이산면의 폐교에서 ‘소백산예술촌’을 운영하는 클라우드컬처스 조국원 대표는 힘겨웠던 지난해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폐교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실어낸 쓰레기만 150t에 달했다. 건물은 1998년경 폐교된 뒤 2006년 한때 영어마을로 사용됐지만 이후 사실상 창고처럼 방치돼 있었다. 처음에는 물조차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상수도와 배수시설부터 손봐야 했다. 공사업체 관계자들도 처음에는 복구가 쉽지 않다며 만류했다. 이후 1년 동안 건물과 운동장 곳곳에 쌓인 폐기물을 걷어내고 공간을 하나씩 고쳤다. 조 대표는 “돈으로 해결하려면 수십억 원이 들 일이지만 사람이 시간을 들여 조금씩 바꿔가니 가능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시설을 정비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약 1억 원 정도다.
소백산예술촌은 원래 영주시 부석면에서 2002년부터 조 대표의 아버지 조재현 촌장이 운영해온 공간이었다. 예술촌 부지와 시설은 마을과 공동 소유 형태였지만 2024년 갑작스럽게 매각이 결정되면서 그해 겨울 공간을 비워야 했다. 갈 곳을 찾는 데 지역 주민들이 나섰다. 주민들이 대화방을 만들어 새 공간을 백방으로 알아본 끝에 전임 시장이 운영하는 지역 사업체가 소유한 이산면 폐교가 후보로 떠올랐다. 사업체 측의 배려로 10년 동안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클라우드컬처스 조국원 대표가 낭만주의 페스티벌을 진행하는 모습. 클라우드컬처스 제공
뮤지컬과 연극을 전공한 공연예술인으로 수도권과 대학로에서 투어 작품을 연출하고 큰 제작사의 스카우트 제안도 받았던 조 대표는 2019년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영주로 돌아와 아버지가 남긴 문화공간을 되살리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조 대표 등의 노력으로 폐교는 청년 예술가들이 머물며 일하고 공연하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단순히 버려진 학교를 문화공간으로 되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청년 예술가가 지역에서도 돈을 벌며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소백산예술촌의 목표다. 행정안전부도 올해 예술촌을 청년마을로 지정해 힘을 보태고 나섰다.
소백산예술촌이 주최한 낭만주의 페스티벌에 참가한 영주시 주민들. 클라우드컬처스 제공
● 뮤지컬 연출가에서 예술촌 대표까지
국악인이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서 예술인의 DNA를 물려받은 조 대표는 고향의 ‘문화예술 결핍’이라는 문제의식을 키우면서 자랐다. 공연 한 편을 보려면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야 했다. 지역 예술가들이 돈을 벌기 위해 영주를 떠나는 모습도 많이 봤다. 다른 지역 예술가를 데려오는 데는 관심을 두면서 정작 지역에 있는 예술가들이 계속 머물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는 너무 무관심했던 것이다. 공연을 본 뒤 막차를 타기 위해 뛰어야 했던 경험, 유능한 예술인을 도시로 떠나보내는 이별의 아픔은 “언젠가는 돌아와 이 구조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예상보다 일찍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큰 문제는 함께 공연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문제였다. 서울에서는 오디션 공고 하나에 배우 수백 명이 몰렸지만, 영주에서는 지인을 통하지 않으면 배우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조 대표는 매주 워크숍을 열어 사람을 모았다. 타악기와 무용 수업을 열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 합숙하듯 공연을 만들었다. 현재 공연 태스크포스(TF) 팀원 가운데 두 명은 2019년 단체 창립 때부터 함께한 구성원이다. 시장을 만들어 수익성을 키우는 데도 노력했다. 회사의 사업 영역을 축제 기획, 굿즈·체험상품 제작·납품까지 넓혀 수익을 내고, 그 수익을 다시 공연과 문화사업에 투입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공연으로는 수입이 안 나지만 공연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다른 사업에서 번 돈으로 계속 채워 넣는 구조를 키워 나갔다”고 설명했다.
소백산예술촌이 주최한 낭만주의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하는 모습. 클라우드컬처스 제공
“예술시장이 없다면 만든다”
예술촌이 청년마을로 지정된 것은 이런 활동에 더해 ‘예술을 사랑하는 청년이 영주에서 살아가는 구조로 확장시키자’는 아이디어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지원서에 “여기에 청년의 주거를 지원하는 ‘살 수 있게 해 Dream’”, “지역 예술가와 주민을 연결하는 ‘우리동네 예술보급소’” 등 아이디어를 제출했고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청년마을이라는 틀이 생기면서 기존 활동은 청년의 일자리와 주거, 문화공간을 연결하는 형태로 넓어지고 있다. 지역 예술가들이 문화사업에 참여해 수익을 얻어가는 ‘우리동네 예술보급소’가 대표적이다. 지역 예술가들은 교육과 문화사업에 참여해 수익을 얻고, 주민들은 가까운 곳에서 문화예술 수업을 받는다. 매주 수요일 저녁 열리는 뮤지컬 수업에는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약 20명이 참여하고, 농한기에는 어르신을 위한 노래교실도 계획하고 있다.
조 대표는 “마을이 이곳에서 10분 거리밖에 안 되지만 준비하고 공연하고 다시 돌아오면 한두 시간은 걸린다”며 “우리가 어려울 때 지역 주민들이 힘써줬던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살 수 있게 해 Dream’을 통해서는 청년 예술가들이 영주에 머물며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있다. 사무실 옆에는 조립식 소극장을 짓고 있고, 기숙사와 영주 원도심 빈집을 활용해 청년 예술가들이 생활할 숙소도 마련하고 있다.
지역민과 외지 청년이 함께 일거리를 만드는 ‘거실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조 대표가 기획한 공연에서 예술가들에게 지급된 인건비는 약 1억5000만~2억 원이다. 다만 이 가운데 지역 예술가에게 돌아간 비중은 아직 크지 않다. 클라우드컬처스는 앞으로 지역에 정착하려는 예술가를 우선 고용하는 방향으로 인력을 늘릴 계획이다. 그는 “예술가들이 스스로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영주 청년마을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조국원 대표가 구상해 둔 계획을 적은 노트.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 강력한 추진력으로 협력 이끌어내
1993년 영주에서 태어난 조 대표는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했다. 이후 공연과 관련된 다양한 일을 하면서 강한 추진력을 키워왔다고 했다. 폐교 이전의 경우도 화요일 회의에서 결정한 뒤 그 주 토요일 곧바로 이사를 시작했을 정도다. 인터뷰 도중 조 대표는 오래된 노트 하나를 꺼냈는데, 그동안 구상해 온 계획이 단계별로 적혀 있었다. 1단계는 예술촌을 중심으로 카페와 소극장 등 복합문화공간을 완성하는 것. 다음에는 활동 무대를 영주 시내로 넓혀 지역 예술가들을 학교와 문화시설에 연결하고, 온라인 플랫폼 ‘오이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의 공연·행사 정보를 한곳에 모은다는 계획이 담겨 있었다. 예술촌 카페는 이미 문을 열었고 조립식 소극장과 청년 예술가 숙소 조성도 진행 중이다. 청년마을 지원사업이 끝난 뒤에도 지금까지 만들어온 사업을 이어가며 영주에서 예술가가 일하고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을 넓혀가겠다는 구상이다.
조 대표가 바라는 것은 자신이 모든 일을 계속 떠안는 조직이 아니다. 예술촌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젊은 예술가들이 각자의 역할을 맡으면서, 자신도 대표로서 경영을 이어가는 동시에 창작자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구조다. 최근에는 공연 연출 일부를 후배들에게 맡기고 대본 작업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 다양한 예술인이 조 대표를 돕고 있다. 현재 청년마을 사업 팀장을 맡고 있는 김영진 씨와 조 대표의 인연은 2012년 로마 바티칸에서 시작됐다. 이후 김 씨는 아부다비 한국문화원에서 근무하다 조 대표의 제안을 받고 영주로 와 예술촌에 합류했다. 각종 드라마와 ‘SNL 코리아’에 출연한 배우 서혜원 씨도 조 대표가 대학 시절 예술촌에서 진행한 워크숍의 초기 참가자 가운데 한 명이다. 두 사람은 영주 거리에서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서혜원 씨는 지금도 예술촌의 활동을 응원하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꿈꾸는 영주의 미래는 거창하지 않다. 아이들이 예술촌 소극장에서 공연을 보는 동안 부모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직원들의 아이들은 함께 뛰어놀며 운동장에는 강아지가 돌아다니는 풍경이다. 그는 예술촌이 더 안정적으로 자리 잡아 대표로서 경영을 이어가면서도 예술가로서 창작 활동을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조 대표는 “경영에 몰두하다가도 연습실에서 열심히 공연을 만드는 나를 꿈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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