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역사와 경영] 고려 태조(高麗 太祖) 왕건(王建)과 기업 : 혼란의 시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조차 경쟁하면서 동시에 협력한다. 반도체 기업과 AI 기업, 플랫폼 기업과 콘텐츠 기업이 서로 연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왕건은 "누구와 함께 가야 살아남는가?"를 이해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역사와 경영] 고려 태조(高麗 太祖) 왕건(王建)과 기업 : 혼란의 시대,...

김성수 국제통상전략연구원 연구위원

대한민국 기업들은 지금 거대한 전환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인공지능(AI)의 등장,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고금리, 소비 위축, 저출산, 미·중 갈등, 산업 구조 변화까지 한 시대의 질서를 뒤흔드는 요소들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안정적이라 여겨졌던 산업들이 흔들리고, 반대로 이름조차 생소했던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은 미래를 예측하려 하지만, 역설적으로 미래를 읽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역사 속에서 혼란의 시대를 가장 현실적으로 돌파한 인물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고려(高麗, 918-1392)를 건국한 태조(太祖) 왕건(王建, 877-943)을 떠올릴 것이다.

왕건은 단순히 나라를 세운 왕이 아니었다. 그는 붕괴하는 질서 속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든 전략가였고 분열된 세력을 연결한 통합자였으며, 혼란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아는 현실주의자였다. 그리고 그의 방식은 오늘날 기업 경영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왕건이 활동하던 시대는 지금의 기업 환경과 매우 유사한 혼돈의 시기였다. 신라(新羅)는 쇠퇴하고 있었고, 후백제(後百濟)와 궁예(弓裔) 세력은 끊임없이 충돌했다. 기존 질서는 무너졌지만, 새로운 질서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각 지역 호족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움직였고,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렸다.

오늘날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전환(DX)과 인공지능(AI) 혁명은 기존 산업 구조를 흔들고 있다. 과거의 성공 공식은 더 이상 절대적인 답이 아니다. 자동차 기업은 이제 소프트웨어 기업이 되어야 하고 유통기업은 플랫폼 기업과 경쟁해야 하며, 제조업 역시 AI와 데이터 없이는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왕건의 리더십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단순한 힘의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철저하게 현실을 읽었다. 자신보다 강한 세력과는 협력했고, 지역 호족들을 적으로 돌리기보다 포용했다. 혼인 동맹 역시 단순한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라, 생존과 통합을 위한 전략이었다.

기업 경영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오늘날 살아남는 기업들은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전략적 제휴를 맺고 기술 협력을 확대하며, 생태계를 구축한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조차 경쟁하면서 동시에 협력한다. 반도체 기업과 AI 기업, 플랫폼 기업과 콘텐츠 기업이 서로 연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왕건은 “누구와 함께 가야 살아남는가?”를 이해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기업 경영에서도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다. 특히, 왕건의 가장 큰 강점은 사람을 얻는 능력이었다. 그는 단순히 영토를 넓히는 데 집중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패배한 세력까지 포용하려 했다. 후삼국(後三國) 통일 이후에도 대규모 숙청보다는 통합을 선택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기업도 결국 사람의 조직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자본이 있어도 인재를 얻지 못하면,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위기에 무너지는 이유는 기술 부족 때문만이 아니다. 내부 갈등, 조직 문화 붕괴, 핵심 인재 이탈 같은 문제가 기업을 흔든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에는 기술의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AI 모델과 데이터 분석 기술은 시간이 갈수록 평준화될 수 있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조직문화와 사람이다. 직원들이 회사를 신뢰하는가? 고객이 브랜드를 믿는가? 그리고 조직이 위기 속에서도 함께 움직일 수 있는가?가 훨씬 중요해진다. 왕건은 이 점에서 매우 현대적인 지도자였다. 그는 지역 세력의 다양성을 인정했고 무조건적인 중앙집권보다 공존을 택했다. 이것은 오늘날 글로벌 기업경영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과거 기업들은 위에서 아래로 통제하는 방식이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창의성과 자율성이 중요한 시대에는 획일적인 조직문화만으로는 혁신이 어렵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수평적 문화를 강조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결국, 기업은 사람들을 억누르는 조직이 아니라, 역량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또한, 왕건은 조급하지 않았다. 그는 단기간의 승부보다 긴 흐름을 읽었다. 때로는 물러났고, 때로는 기다렸다. 궁예와의 관계에서도 무조건적인 충돌보다는 때를 기다렸고, 후백제와의 전쟁 역시, 단순한 감정 싸움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오늘날, 기업들에게도 이 태도는 중요하다. 현대 경영은 지나치게 단기 성과 중심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분기 실적, 주가, 투자 유치, 시장 점유율 같은 숫자들이 모든 판단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진짜 위대한 기업들은 대부분 긴 시간을 견디며 성장해왔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들의 역사를 보면, 위기 없이 성장한 기업은 거의 없다. 어떤 기업은 기술 변화에 실패했고 어떤 기업은 금융위기를 겪었으며, 어떤 기업은 소비자 트렌드 변화에 흔들렸다. 하지만, 살아남은 기업들은 위기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았다. 왕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단순히 전쟁에서 이긴 사람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읽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오늘날, 기업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도 바로 이것이다. 지금 시장은 너무 빠르게 변한다. 어제의 성공 모델이 오늘은 실패 사례가 되기도 한다. AI는 산업 구조를 바꾸고 있고 소비자들은 더 이상 브랜드 충성도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젊은 세대는 기업의 철학과 가치관까지 본다. 단순히 제품만 잘 만드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럴수록, 기업은 더 깊은 질문을 해야 한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우리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

왕건은 고려를 단순한 정복 국가로 만들지 않았다. 그는 혼란 이후의 질서를 고민했다. 민심을 안정시키고 지역을 통합하며, 새로운 국가의 방향성을 세우려 했다. 결국, 위대한 지도자는 단지 승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승리 이후의 세계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고객과 사회로부터 왜 필요한 존재인지 증명해야 한다. ESG, 사회적 책임, 지속 가능성 같은 화두들이 등장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이제 기업은 단순한 이윤 집단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일부로 바라보는 시선이 강해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혼란의 시대일수록, 오히려 위대한 기업들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불황은 많은 기업을 무너뜨리지만, 동시에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기업에게는 기회가 된다. 왕건 역시 혼란이 없었다면, 역사에 등장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태조 왕건이 오늘날 기업들에게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이것일지도 모른다. 혼란의 시대에는 가장 강한 조직보다, 가장 유연하고 사람을 얻을 줄 아는 조직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기업들은 거대한 변화의 파도 앞에 서 있다. 누군가는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버티며, 또 누군가는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한 가지는 분명하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질서를 만든 기업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대부분 현실을 읽고 사람을 얻은 조직들이었다.

왕건은 무너지는 시대 속에서 고려라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날 기업들 역시 자신만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지금 기업들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구호가 아니라, 난세를 견디고 사람을 연결했던 왕건의 현실감각과 통합의 리더십인지도 모른다.

김성수 칼럼니스트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