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한국은행 보고서 기반, ‘고학력 여성에 밀려 청년 남성 노동시장 퇴출’ 제목 쓴 언론
“여성에 밀려”, “여성에 치여” 편향적 제목… 여성 향해 비난 화살 돌리는 갈라치기 보도
보고서 한계점 지적도 “맥락 풍부하게 다뤄지지 않으면 성별 대결 근거로 오독될 위험”
▲ (위에서부터) 2026년 4월14일~15일 한국은행 보고서 '남성 청년층 경제활동참가율의 하락 추세 평가'를 다룬 문화일보, 국민일보, 한국일보, 조선일보, 서울신문 기사 제목 갈무리.
지난 14일 '고학력 여성에게 치여서 청년 남성의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제목의 언론보도가 쏟아졌다. 같은 날 발간된 한국은행 보고서를 기반으로 한 이 보도들은 청년 남성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로 '고학력 여성'을 지목했다. 고학력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높아지면서 취업 시장 내 경쟁이 심화됐고, 결과적으로 청년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하락했다는 내용이다.
한국은행 고용연구팀은 보고서에서 남성 청년층의 경제활동 참가율 하락의 이유로 청년층 내 경쟁구조 변화, 산업구조의 변화, 고령화와 AI의 확산 등을 꼽았다. 여성과 관련해선 특정 성별(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전문직이나 사무직을 중심으로 성별에 따른 직종 분리가 완화됐고, 고학력 남녀가 노동시장에서 서로를 대체할 수 있는 경쟁 관계가 형성됐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다양화가 인적자원의 효율적 재배분을 촉진하고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원동력이 됐다고 짚었다. 노동시장 전반 구조를 개선하고 고용 경직성을 완화하는 정책적 노력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다수 언론은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선택해 제목에 "여성에 밀려", "여성에 치여"라는 편향적인 문구를 동원했다. 국민일보 , 문화일보 , 한국일보 , 조선일보 등이다. 마치 여성이 남성의 취업을 막고 있다는 전제로 취업을 여성과 남성의 '제로섬 게임'처럼 단순화한 제목이다. 청년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하락을 '남성이 차지하던 자리를 여성이 빼앗는 현상'으로 묘사하며 여성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게 만드는 갈라치기 보도 형태다.
▲ 2026년 4월14일 문화일보 '男청년, 고학력女에 밀려 노동시장 퇴출…한은 분석' 기사 AI 이미지 갈무리.
이러한 제목은 곧장 여성 대 남성의 갈등 구도를 형성시킨다. 기사에는 "한국 여자들 때문에 남자들만 고생", "결혼도 애도 안 낳으려고 하는 것들이 천지" 등 여성에 대한 혐오성 댓글이 양산됐다. 문화일보는 여성과 남성을 양팔 저울 위에 올려놓은 인공지능(AI) 기사 이미지를 만들었다. 저울 위에서 공포스러운 눈빛의 주눅 든 남성들이 당당한 표정의 여성들을 쳐다보는 이미지다. 노골적으로 여성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는 사례다.
대다수 언론은 본문에서 보고서의 세밀한 분석과 제언을 담아냈지만, 이미 제목으로 설정된 갈등 구도는 지워지기 어렵다. 이해수 서강대 미디어융합연구소 연구교수는 21일 미디어오늘에 "언론은 제목에서 '여성에게 밀려, 치여', 남성들이 일터에서 '사라지고', '퇴출 당하는' 등 수동적이고 피해자 중심적 언어를 선택해 이미 서사의 방향을 결정해 버렸다"며 "본문 하단에 구조적 요인을 덧붙인다고 해도 독자가 처음 접한 '여성 vs 남성' 이라는 대결 구도의 잔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복잡한 사회 현상을 갈등 구도로 단순화해 클릭 수를 유도하는 전형적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 2026년 4월14일 이데일리 '"여성·AI에 밀려 그냥 쉬어요"…'구직 단념' 남성 청년들 어쩌나'(위), 한국경제TV '여성·AI에 밀리더니…"구직 단념했습니다"'(아래) 기사 제목 갈무리.
청년 남성들의 가상 발언을 꾸며 제목에 인용한 경우도 있다. 이데일리 , 한국경제TV 처럼 통계 데이터를 다룬 결과를 마치 특정 개인의 감정 섞인 진술처럼 가공한 사례다. 이 교수는 "수치로만 말하면 독자는 이성적으로 판단하려 하지만, 따옴표가 붙는 순간 감정적으로 이입한다"며 "이러한 인격화된 왜곡은 데이터의 본질을 흐리고 대중의 감정적 대응만을 유도하는 조작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보고서 자체 한계 지적도
한국은행 연구팀의 보고서처럼 정량적 통계에 기반한 데이터가 언론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해석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구팀은 코호트 분석 방법으로 남성,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 행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분석했다. 경제활동 참가율의 변화를 코호트 효과, 시간효과, 연령효과에 따른 영향으로 분해해 분석한 기법으로, 코호트 효과는 출생연도로 구분되는 각 집단이 공유하는 고유한 노동시장 참가 성향을 나타낸다.
이 교수는 "현상의 동력을 파악하는 데 유효한 방식이지만, 사회문화적 관점에서는 성별 변수 뒤에 숨은 '정상 가족 생계 부양자'라는 근대적 남성 모델의 붕괴라는 더 큰 균열에 주목한다"며 "통계가 '여성이 늘고 남성이 줄었다'는 확률적 결과를 보여줄 때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노동의 성격 변화와 가족 모델의 재편이라는 맥락이 풍부하게 다뤄지지 않는다면 데이터는 자칫 단순한 성별 대결의 근거로 오독될 위험이 있다"고 짚었다.
한국 사회 내 청년들의 삶 안팎에서 발생하는 사회문화적 배경까지 포착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이중 구조화된 노동시장에서 청년들이 겪는 실존적 냉소와 불안은 경쟁 심화라는 건조한 경제 용어로 치환될 수 없다"며 "통계적 정당성을 확보한 보고서일수록 그 결과가 자극적인 갈등의 도구로 소비되지 않도록 데이터 뒤의 맥락을 짚어주는 해석적 책임이 더욱 막중하다"고 했다.
보고서 자체의 뚜렷한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성별 요인을 주요하게 보고 청년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하락에만 집중해, 여전히 낮은 한국 여성 고용률, 육아·가사로 인한 여성의 비경제활동, 저학력 여성 일자리의 저임금 실태 등에는 굳이 주목하지 않았기에 맥락이 부족한 결과가 나왔다는 지적이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지난 20일 미디어오늘에 "결국 어떤 부분을 주목해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분석을 내놓을 수 있다"며 "한국은행은 '남성 청년층'을 중심에 뒀고, 이 경우 아무리 보고서 결론을 '사회규범과 인구 구조 변화에 따라 노동공급이 다양화되는 과정으로 판단된다'고 내더라도 성별적 갈등 요소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만일 OECD 평균의 다양화된 노동공급을 기준으로 보고 한국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봤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소외된 여성, 저학력, 장애인 등 소수자의 떨어지는 비율이 나오지 않았을까"라며 "직종에 따른 임금 수준을 더한다면 또 다른 분석이 됐을 것"이라고 짚었다.
권 처장은 이번 보도 흐름을 "언론의 적극성이 결여된 보도"라고 비판했다. 같은 통계가 주어지더라도 정보 전달에 그치지 않고 다른 해석을 해내려는 언론의 적극성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그는 "언론이 적극성을 부여한 곳은 '고학력 여성에게 밀린다', '여성에게 치인다'라는 해석이었다. 성별을 대결 구도로 상정하고 있는 부적절한 보도"라며 "갈등만 부추길 뿐 한국 사회에 무슨 긍정적 요인이 있을까"라고 비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