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행경 건설부동산부장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12차’ 전용면적 182.95㎡가 지난달 4일 112억 5000만 원에 거래됐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가 종료되기 직전인 4월 29일 110억 원에 팔렸던 것에 비해 2억 5000만 원이 올랐다. 지난해 8월 71억 5000만 원에 거래됐던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84.98㎡는 올 들어 54억 5000만 원까지 떨어졌다가 5월 말 71억 5000만 원에 팔려 1년 만에 하락분을 되돌렸다. 양도세 중과라는 압력이 가해져도 높은 회복 탄력성을 보여주는 초고가 주택 시장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3.3㎡당 가격이 2억 원 안팎에 달하는 아파트를 비정상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이 있지만 어느 나라에나 값비싼 주택은 존재한다. 교육 여건과 교통 환경이 뛰어나고 생활 편의 시설이 잘 갖춰진 곳에 주택 공급이 제한되면 가격은 오르는 법이다. 보유세가 오르더라도 자산가치 상승으로 상쇄할 수 있는 초고가 주택 시장은 세제개편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주택·부동산 정책 타깃이 강남3구의 초고가 아파트가 될 필요는 없다. 고가 주택에는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물리면 그만이다. 정부의 정책 목표가 ‘가격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정상화하는 것’이라면 기존 초고가 시장을 흔들기보다는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대체재와 보완재를 신속하고 꾸준하게 공급하는 것이 실효적이다.
‘닥치고 공급’을 선언한 정부가 조만간 발표할 주택 공급 대책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크지 않다. 시장의 관심은 온통 세제개편과 대출 규제 완화에 쏠려 있을 뿐이다. 실제로 지난해 9·7 대책에 이어 올해 발표된 1·29 대책에 대한 부동산 시장과 주택 수요자의 평가는 박하다. 9·7 대책 발표 이후 집값이 폭등한 것은 정부의 주택 공급 방안이 시장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끌 대책’으로 평가됐던 1·29 대책도 과천경마장 같은 우량지가 다수 포함됐으나 실제 공급까지는 시일이 걸리는 탓에 집값 상승세를 진정시키고 주택 매수 수요를 누그러뜨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1·29 대책에 포함된 핵심 공급 대상지는 주민 반발과 지방자치단체의 이견에 사업 속도도 더디다.
이재명 대통령이 토로했듯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는 주택을 추가로 공급할 택지가 제한적이다. 수도권 집중을 심화시키는 추가 신도시 건설은 어렵다. 기존 신도시 건설 계획과 도심 유휴부지 개발에 속도를 더해 더 빨리 짓는 게 최선책이다. 여기에 경색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을 풀고 정책자금 지원 강화를 통해 비아파트 시장 활성화와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꾀해야 한다. 공공주택 공급의 주체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수장이 10개월가량 공석이었던 탓에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지 못했던 것이 아쉽지만 이제라도 조직 개편 방안을 서둘러 확정 짓고 3기 신도시 사업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협력했으면 한다. 정비사업을 통한 주택 공급 확대 효과가 큰 만큼 이주비 대출 제한 등 규제를 풀어 도심 지역의 재개발·재건축이 속도를 내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주비 대출 규제 완화는 서울시가 줄곧 정부에 요구해온 사안이다.
도심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준공업지역을 활용하는 데도 정부와 서울시 간 협력이 필요하다. 공장 비율에 따른 산업용지 확보 비율을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조례 개정이 필수다. 더불어민주당이 서울시의회의 다수를 점했지만 조례 개정과 지구단위계획 수립 과정에서 지방정부와 자치구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
그린벨트 해제도 마찬가지다. 청년
신혼부부 등 주거 취약층에 우선 공급하겠다는 명분이 있다면 그린벨트를 푸는 과정에서 지자체도 협력할 것이다.
정치적 입장과 정책 철학이 다르더라도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명제 앞에서 여야와 중앙·지방정부가 유불리를 따지기보다는 양보하고 타협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PF 시장 경색과 경기 침체 장기화 등으로 훼손된 주택 공급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 정부와 지자체가
힘을 모을 때다. ‘닥치고 공급’하려면 ‘닥치고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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