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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에너지 슈퍼 트릴레마, 한국 생존 전략은

AI·반도체 전력 폭증, 공급은 10년 지연 원전·LNG·재생에너지 분산 묘수 필요 에너지 위기는 더 이상 추상적... 여기에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전력 수요는 늘고, 탄소중립 압박은 에너지 선택지를 좁힌다. 한국은 지금...

에너지 슈퍼 트릴레마, 한국 생존 전략은

AI·반도체 전력 폭증, 공급은 10년 지연

원전·LNG·재생에너지 분산 묘수 필요

에너지 위기는 더 이상 추상적 경고가 아니다. 최근 정부는 중동 전쟁 장기화에 대응해 원전과 석탄 발전 가동을 늘리고 공공 부문 차량 5부제를 꺼내 들었다. 삼성·SK·LG·롯데 등 주요 기업도 차량 운행 제한과 조명 소등, 냉난방 조정 등 비상 절전 체제에 들어갔다. 여기에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전력 수요는 늘고, 탄소중립 압박은 에너지 선택지를 좁힌다. 한국은 지금 안정성·경제성·환경성의 기존 트릴레마를 넘어 공급 속도와 에너지 안보까지 겹친 ‘슈퍼 트릴레마’ 한복판에 섰다. 전문가들은 한국 에너지 전략이 산업 생존 전략으로 재설계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정부는 중동 전쟁 장기화에 대응해 원전과 석탄 발전 가동을 늘리고 공공 부문 차량 5부제를 꺼내 들었다. 사진은 대구 수성구청 출입구에 관련 사항을 알리는 안내문 모습. (연합뉴스)

수요는 치솟는데 공급은 더뎌

에너지 ‘혼합 전략’ 절실

한국이 당면한 에너지 ‘슈퍼 트릴레마’의 출발점은 전력 수요와 공급 속도의 미스매치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가 한꺼번에 밀려오며 전력 수요는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경기도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에만 2050년까지 15GW 규모 전력 설비가 필요하다. 철강 산업에서는 친환경 철강 생산을 위해 청정수소 생산량을 제외하고도 2050년까지 8GW 규모의 전력 설비가 필요한 실정이다.

반면 이를 뒷받침할 송전망과 발전설비 확충은 더디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AI 데이터센터는 2~3년이면 지어지지만, 이를 뒷받침할 송전망 건설에는 무려 10년 이상이 소요되는 ‘시간표의 충돌’이 가장 큰 위기”라고 말했다.

공급 측면에서 불안은 더 복합적이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0%를 웃돈다. 중동 정세가 흔들리면 LNG와 원유 가격 급등은 물론, 공급 안정성 자체가 위협받는다. 여기에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환경 규제가 한국 수출 산업에 새로운 비용 부담으로 작용한다.

유광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주요국의 자원 무기화 기조가 가장 큰 위협 요인”이라며 “에너지 조달의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충돌 시 언제든 자원 공급이 차단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매우 취약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에너지 정책 방향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안정성, 경제성, 탄소중립을 따로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공급 기반 위에서 경제성과 탈탄소를 동시에 달성하는 방향으로 재정렬하자는 설명이다. 구체적인 해법으론 ‘혼합 전략’이 거론된다. 원전을 기저전원으로 삼아 안정성과 경제성을 확보하고, 액화천연가스(LNG)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유연성 자원으로 활용하는 한편 재생에너지는 ESS(에너지저장장치)와 결합해 점진적으로 늘리는 방식이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산업 생존에 필요한 전력 시스템을 먼저 확보하고 그 안에서 최대한 탄소를 줄이는 방식으로 우선순위를 재정의해야 한다”며 “기저부하 원전 35%, 유연성 원전 15%, LNG 15%, 재생에너지 35% 구조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사례 주목, 독일은 경계

정책 일관성·속도가 ‘핵심’

세계 주요국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모델은 미국의 기술 혁신과 공급망 내재화 전략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제·보조금 정책으로 공급망 내재화를 추진하고, 원전을 청정에너지 범주 안에서 다루는 기술 중립적 접근도 병행한다. 유럽에서는 프랑스 사례가 눈길을 끈다. 심형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함께 키워 무탄소 전력 비중을 높인 프랑스 정부 정책에서 시사점을 찾아볼 만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경계해야 할 사례로는 독일이 꼽힌다.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가 전력 요금 상승, 계통 불안, 제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여기에 값싸고 안정적인 러시아 가스에 대한 의존이 지정학 충격과 맞물리며 에너지 안보 취약성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이정익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독일처럼 경제성을 무시한 재생에너지 우선 정책이 장기적으로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이 같은 길을 그대로 따라가선 안 된다는 의미다.

핵심은 일관된 에너지 정책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에너지 정책의 가장 큰 문제로 ‘정책 일관성 부족’을 꼽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정책의 무게추가 흔들리면 수십년짜리 발전소와 전력망 투자는 멈출 수밖에 없다.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처럼 독립적인 에너지위원회를 설치하자는 의견이 잇따르는 이유다. 이정익 교수는 “지금의 전력수급기본계획뿐만 아니라 과거 에너지수급기본계획과 같은 중장기 계획이 다시 구상돼야 한다”며 “정치적인 결정으로 에너지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신뢰할 만한 에너지 산업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전했다.

‘정책의 병목’ 역시 한국이 풀어야 할 과제다. AI 시대에는 전력도 ‘먼저 깔아야 이기는 인프라’가 됐다. 그런데 사업 단계에선 인허가와 수용성 갈등, 부처 간 분산된 권한 때문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적잖다.

정재훈 맥킨지앤드컴퍼니 파트너는 “이제는 에너지 정책을 얼마나 패스트트랙으로 추진할 수 있는지가 경쟁력”이라며 “원전 관련 규제와 절차의 효율화, 데이터센터 등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송전망 투자 확대, 차세대 에너지원의 경제성 확보를 위한 과감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 최성민 한국원자력학회장

안정성이 우선…‘원전+SMR’ 조합 주목

한국원자력학회는 최근 “에너지 위기 시대에 원자력 역할 확대는 선택이 아닌 필수 생존 전략”이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냈다. 원자력학회장인 최성민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에게 ‘에너지 슈퍼 트릴레마’ 생존 전략을 들어봤다.

Q. 한국이 마주한 ‘슈퍼 트릴레마’의 위기 요인은 무엇인가.

A.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전력 공급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부상한 상황에서 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동시에 중동 위기로 LNG와 원유 가격은 물론 공급 안정성까지 흔들린다. 여기에 탄소중립 요구까지 겹치며 수요 급증, 공급 불안, 탄소 제약이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 위기에 직면했다.

Q. 한국 현실에 맞는 최적의 에너지 조합은.

A.

원자력을 기저전원으로 두고 비중을 확대해 안정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여기에 SMR 같은 분산형 전원으로 지역 단위 전력 안정성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재생에너지는 ESS와 함께 점진적으로 확대하되 안정성을 고려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LNG는 제한된 범위에서 보완 역할을 맡아야 한다. 무엇보다 송배전망과 계통 투자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떤 에너지원도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Q. 가장 시급한 과제와 해법은.

A.

한국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글로벌 경쟁 속도와 비교해 뒤처진다. 발전원 확충과 전력망 투자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실제 사업은 인허가와 지역 주민 수용성 문제에 가로막혀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인허가 절차를 합리적으로 단축하고 주민 수용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전략 산업에 대해서는 패스트트랙 제도 도입도 필요하다.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3호(2026.04.01~04.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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