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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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 | 문화스포츠부장
최근 내 에스엔에스(SNS) 피드에서 부쩍 회자한 건 어느 베스트셀러 작가의 사재기 논란이다. 170만부나 팔린 ‘언어의 온도’로 유명한 작가가 사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것이다. 그는 2024년 발간한 산문집 ‘보편의 단어’ 1631권을 사들인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신간의 판매량을 늘림으로써 베스트셀러 순위를 조작하려 했다고 봤다. 작가는 돈을 댔고, 한 출판사 대표가 이 돈으로 전국 서점을 돌며 책을 반복적으로 사들였다고 한다. 이 출판사 대표는 ‘보편의 단어’와는 무관하며, 과거 이 작가의 다른 책을 펴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의구심은 ‘언어의 온도’로까지 번졌다. 사람들은 ‘언어의 온도’가 왜 그리 많이 팔렸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비슷한 수법이 있었던 건 아닌지 의심한다. ‘언어의 온도’에도 사재기가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2017년께 ‘언어의 온도’가 역주행 신드롬을 일으키며 사회적 현상이 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시 젊은 독자들을 중심으로 책의 문장을 발췌해 사진 찍거나 필사까지 해서 에스엔에스에 인증하는 게 유행처럼 퍼졌다. 사실 그 문장들은 내 마음을 울리지 못했다. 그저 책도 이런 식으로 뜰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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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업계에서도 사재기란 말은 낯설지 않다. 지난해 2월에도 가수 영탁의 전 소속사 대표가 음원 사재기 혐의로 넘겨진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그는 2018~2019년 가상 피시(PC) 500여대와 불법 취득한 개인정보 1627개를 이용해 국내 주요 음원사이트에서 15개 음원을 172만7985회 반복 재생함으로써 차트 순위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8~2019년께는 음원 사재기 의혹이 극대화되던 시기다. 당시 낯선 가수의 발라드곡들이 새벽만 되면 스트리밍 횟수가 급증해 팬덤의 화력이 막강한 아이돌 노래를 제치고 1위에 오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후 음원사이트들이 집계 방식을 바꾸고 모니터링을 강화하면서 이런 현상은 잦아들었다.
사재기라도 해서 순위에 들려고 기를 쓰는 이유는 그로 인해 얻는 이익이 막대해서다. 사람들은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책을 믿고 사는 경향이 강하다. 음원 차트 상위권 곡들을 습관적으로 돌려 듣는 이들도 많다. 한번 차트에 진입하면 더 많은 수요가 이뤄져 순위는 더욱 공고해진다. 인기가 있어서 차트에 올라간다기보다 차트에 올라가서 인기가 많아지는 꼴이라고나 할까. 인과관계가 뒤집힌 느낌이다. 영탁의 전 소속사 대표 재판에서 판사는 “음원 판매량 순위는 소비자들이 어떤 음악을 들을지에 굉장히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며 “이 사건과 같은 사재기는 소비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질서를 왜곡하는 중대한 행위”라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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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물음표들이 꼬리를 문다. 그럼 특정 팬덤의 스트리밍 ‘총공’은? 내가 좋아하는 가수 노래를 차트에 줄 세우려고 가족과 지인까지 동원해가며 스트리밍을 돌리는 것은 “소비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질서를 왜곡하는 행위”에서 자유로운가? 중소돌 리센느는 왜 ‘거제 야호’ 밈이 뜬 다음에야 음원 역주행으로 차트 정상에 올랐을까? 음악의 힘만으로 중소돌의 기적을 일으키는 건 이제 불가능해진 걸까? 사람마다 문화적 취향은 제각각이기 마련인데 왜 차트를 그리 신경 쓸까? 내가 즐겁자고 하는 행위에서도 굳이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니 뭐니 해서 남들에게 뒤처지는 걸 두려워해야 하는가? 그렇게 해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본들, 행복할까?
쉽사리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기야 문화에 정답이란 게 있을 리 없다. 정답 대신 취향이 있을 뿐이다. 다만 누구나 자신의 취향을 잘 아는 건 아니다. 차트를 찾는 건 자기 취향을 몰라서일 수 있다. 문화부 기자의 중요한 구실 중 하나는 각자 취향을 발견하도록 돕는 일이다. 차트 밖 매력적인 콘텐츠를 발굴하고 소개하며 ‘이건 어때요?’ 하는 것이다. 혹시라도 마음에 든다면 비슷한 것들을 파고들며 나만의 취향의 온도를 만들어가 보자. 요즘엔 플레이리스트나 큐레이션(추천) 콘텐츠도 많아서 어렵지 않다. 차트 따라잡는 것보다 훨씬 더 즐겁고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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