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연대로 : 전라도 혐오에 맞서는 사람들 ③청소년 독립언론 ‘새벽누리’
가정·학교·SNS 타고 대물림 농담처럼 번지는 호남 지역 비하
단순 말장난·유행어로 받아들이고 고치라고 하면 강한 반발
표현 사용 잘못 지적하면 꼰대 이미지 되는 것도 이유 중 하나
5·18 ‘폭동’ 무죄 판결에 우려…허위 사실 유포까진 자유 아냐
실제 피해자 이야기 들려
경남 양산의 청소년 독립언론 ‘새벽누리’ 강재훈(14·중학교 1학년) 취재장과 김우림(16·중학교 3학년) 편집장.
“어려서부터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들었던 혐오 발언 대부분이 전라도쪽 관련이었어요. 어른들이 무심코 내뱉은 지역 혐오 표현들을 자연스레 체득하고 사용하면서 대물림된다고 느꼈죠. 이제는 이런 표현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경남 양산의 청소년 독립언론 ‘새벽누리’ 강재훈(14·중학교 1학년) 취재장의 말이다. 영남 지역 청소년들이 어려서부터 학교·가정에서 일상적으로 전라도 혐오 표현을 접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다. ‘광주에 가려면 여권을 챙겨야 한다’, ‘전라도 사람과는 말도 섞지 말라’ 등 이 같은 거친 표현들이 어른들의 입에서 시작돼 청소년들 사이에서 농담이나 유행어처럼 반복·확산되는 식이다. 오래된 지역 감정이 가정과 또래 집단,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 콘텐츠 등을 통해 다음 세대까지 되풀이 되는 이유다.
무등일보는 새벽누리 김우림(16·중학교 3학년) 편집장과 강재훈 취재장을 화상으로 만나 학교와 가정에서 접한 혐오 표현의 실태와 확산 과정, 이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노력 등에 대해 들었다. 특히 최근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표현한 온라인 게시글에 대한 무죄 판결을 계기로 ‘표현의 자유’와 역사 왜곡 문제와 관련, 청소년 언론의 시각도 살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혐오 표현을 인식하고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김우림(이하 김):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부모님이 장애인을 돕는 사회복지사이신데 어릴 때부터 ‘혐오나 차별 표현을 쓰면 안 된다’고 교육받았다. 뉴스를 함께 볼 때면 ‘저런 사람이 되면 안 된다’든지, 혐오 표현을 마주하면 ‘저런 표현은 쓰면 안 된다’고 하셨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혐오를 인식했고, 쓰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강재훈(이하 강): 초등학교 6학년 때,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발언이 유행 했었다.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친구들과 그 말을 같이 사용했는데, 이게 무슨 뜻이고, 왜 친구들이 사용하는지 궁금해서 알아본 적이 있다. 그 때 좋지 않은 말이라는 걸 깨달아서 지금부터라도 쓰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 뒤로 친구들이 이런 말을 왜 자발적으로 쓰는 지, 이 말을 들으면 왜 웃는 지 의문이 든다.
-학교에서 청소년들이 쓰는 혐오 표현은 어떤 것들이 있나.
▲김: 사례는 굉장히 많다. 학생들은 매일같이 혐오 표현을 쓰고 있다. 예를 들면 현재 대통령을 욕하거나 전 대통령을 모욕하는 표현이 대다수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인 ‘노알라’를 많이 쓴다. 점심시간마다 전자칠판으로 유튜브에서 노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노래를 틀어놓기도 한다. 어느날에는 길에서 ‘윤어게인’을 외치는 초등학생도 봤다. 혐오 표현들이 영상 콘텐츠에 나오면 같이 보던 학생들끼리 키득거리면서 웃는다. 광주를 마치 다른 나라처럼 여기며 ‘광주갈 때는 여권을 챙겨야 한다’, ‘5·18민주화운동은 북한의 지령이고 전라도 사람 중에는 간첩밖에 없다’는 말들도 한다. 이런 표현들이 지역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전라도 사람들은 소득이 안 좋다’거나 하는 부정적 인식이 생겨난다.
▲강: 최근 있었던 스타벅스 마케팅 논란 때는 ‘스타벅스 가야지’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스타벅스 이외에도,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혐오 표현도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3학년 졸업여행지가 광주였는데, 3학년 형들이 ‘하필 광주’, ‘광주는 빨갱이 아니냐’고 하는 말을 들었다. 광주를 너무 비하하길래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3학년이다 보니까 말을 못해서 답답했다.
-청소년들은 주로 어디에서 혐오 표현을 접하고 있나.
▲김: 우선적으로 배우는 것은 어른들의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의 말을 통해 학생들이 혐오 표현을 배우게 된다는 거다. 전라도 관련 혐오 표현이나 전 대통령 비하 표현들이 대표적이다. 경상도 사람들 대부분이 전라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어서 이런 말들이 나오는 거 같다. ‘전라도 사람이랑 사귀면 안 된다’, ‘전라도 사람이랑 결혼하면 안 된다’ 등의 이야기가 가정에서 나오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혐오 표현을 알게 되기도 한다. 학생 10명 중 9명은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는데, 방송사나 신문 뉴스는 안 보고, 인스타그램만 하니까 더 문제가 되는 거 같다. 짧은 영상이나 게임 채팅창에서도 혐오 표현을 쉽게 접하고, 이를 본 또래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기도 한다. 게임 채팅도 있고, 짧은 영상에서 혐오 표현이 나오면 그걸 본 친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다.
▲강: 들었던 혐오 발언 대부분이 전라도쪽이다. 경남 양산에서 자랐는데, 가정에서도 혐오 발언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마치 다른 지역인 것 마냥 ‘여권을 챙겨야 한다’, ‘가면 안 된다’, ‘말도 섞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런 말들이 부모님, 그러니까 어른들에게서 나와 아이들에게 계속 대물림돼 쓰이고 있다고 느낀다. 이런 말들은 실제 중학교 3학년 졸업여행지 이야기가 나올 때도 들었다. ‘광주는 빨갱이 아니냐’, ‘여권 챙겨야 하지 않냐’, ‘말도 섞지 말아라’는 식의 광주를 비하하는 말들이었다. 부모님에게 들은 말을 배워서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부모님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다른 친구들에게 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또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같은 소셜미디어 채널에서도 혐오 표현이 나오는데, 이 말들을 보고 학교에서 사용하는 거 같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연설 영상을 활용해 영상을 만들고,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를 편집해 퍼뜨리는 경우도 있다. 반면 게임 채팅창에서는 비하 표현을 사용하면 계정이 정지되기도 해 직접적인 혐오 표현은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강재훈(14·중학교 1학년) 새벽누리 취재장이 교내에서 취재활동을 하고 있다. 새벽누리 제공
- 청소년들이 왜 혐오 표현을 사용한다고 생각하는가.
▲김: 학생들은 통상 단순한 농담이나 유행어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 걸 혐오라고 인식하게 되면 오히려 반발한다. ‘왜 진지하게 받아들이느냐’라는 반응이다. 대부분 단순 장난이나 짓궂은 장난 느낌으로 사용하고 있다.
▲강: 주변 친구들이 혐오 표현을 쓰면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대에 살던 사람이 아니고, 아는 것도 아닐텐데 왜 이렇게 고인 모독을 하는지 모르겠다. 스타벅스 마케팅 논란 때는 스타벅스 잘못이 있었지만, 광주가 전라도 지역이니까 지역을 콕 집어 욕하기도 했다. 그래서 ‘너네가 뭘 안다고 그런식으로 이야기를 하느냐’고 진지하게 대화를 해 보면 ‘재미있지 않냐’라고 답해서 어이가 없었다.
-잘못된 혐오 표현을 쓰는 친구를 직접 지적하기는 쉽지 않은데.
▲강: 바로잡을 수 있고 잘못됐다는 것을 아는 친구들도 많지만,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친구에게 직접적으로 따질 수 있는 용기가 없는 거 같다. 혐오 표현 사용을 지적하는 게 잘못도 아니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다수 친구들은 재미로 혐오 표현을 사용해서 지적하면 꼰대 이미지가 되는 것도 말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최근 대구지법이 5·18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표현한 게시글에 무죄를 선고했다. 청소년 언론인으로서 어떻게 봤나.
▲강: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사회에서 기본권이다. 자유는 보장돼야 되는데 허위 사실 유포까지 되는 건 아니다.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은 형사 처벌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뜻이지, 해당 주장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뜻은 아니다. 5·18민주화운동은 국민들이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당시 대통령이던 전두환에게 권리를 행사한 일종의 시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절대 폭동이 아니라, 정당한 권리 행사라고 본다. 5·18민주화운동 관련 혐오 표현을 써서도 안 되고, 폭동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번 판결로 우려되는 점이 있나.
▲강: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거나 혐오하는 글과 말이 계속 퍼지게 된다면, 청소년의 역사 인식에도 악영향을 미칠거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거나 혐오하는 표현도 대부분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졌다. 초등학생 그리고 중·고등학생들까지 모두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데, 무죄 판결로 비슷한 게시물들이 많아지면 청소년들이 정말 ‘폭동’이라고 인식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도 우려된다.
-학교 내 혐오 예방 교육의 실효성을 높이고 온라인 혐오 표현을 줄이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김: 학교나 교육청에서 혐오 표현 관련 교육을 많이 받아왔다. 대부분 강의식 교육이었는데 소용이 없다고 느꼈다. ‘이거 하지 말아라’, ‘저런 거 하지마라’ 하는 내용이었고 많은 학생이 잠을 잔다. 학교나 교사가 말로 교육하는 것만으로는 바뀌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학생이 직접 부딪혀 봐야 고쳐지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실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다. 피해자의 이야기를 통해 본인이 느끼는 게 있어야 효과가 클 거 같다.
플랫폼에서 신고 기능을 두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영상을 신고하더라도 새 계정을 만들어서 다시 올리는 경우가 있다. 혐오 표현을 신고당한 사람은 오히려 ‘우리나라의 자유가 사라졌다’는 식으로 영상을 올리곤 한다. 이런 경우 해당되는 사람에게는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 학교에서 주입식으로 교육을 하니 흥미와 재미가 없고, 그러니까 졸게 되고 학습지를 못 적어서 베껴쓰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 같다. 사실 요즘 학생들 중에 혐오가 무엇인지 모르는 학생들도 많다.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학생들만 따로 모아 교육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혐오 표현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피해자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평소 혐오 표현을 쓰지 않는 친구들이 혐오 표현의 문제를 인식하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혐오 표현을 줄이는 데 더 빠르게 도움될 것 같다.
-청소년 언론으로서 혐오 문제를 알리고 변화를 이끌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
▲김: 청소년 시각에서 본 혐오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할 필요성을 느낀다. 왜 혐오에 관심을 가지는가, 우리가 혐오를 안 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등을 말하고, 자세히 들여다보겠다.
정리=강승희기자 wlog@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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