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상 공학박사(홍익대 국방AI융합학과 초빙교수)
방산 시장이 다시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판은 과거와 전혀 다르다. 이제는 화력과 플랫폼, 생산 능력만으로 승부가 나지 않는다. 앞으로 전장을 지배하는 것은 소프트웨어, 자율성, 네트워크, 데이터일 가능성이 크다. 눈에 보이는 무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운영체계가 더 큰 가치를 만드는 시대가 오고 있다.
그 중심에 AI 파일럿, 유무인 복합 전투체계(MUM-T), 무인기가 있다. 많은 기업이 이를 미래 산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핵심은 자주 놓친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가 아니다. 누가 가치사슬의 윗단을 차지할 것인가가 본질이다.
AI 파일럿의 본질은 자동비행이 아니다. 항로를 유지하고 자세를 제어하는 기술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미래 전장의 AI 파일럿은 위협을 식별하고, 표적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동반 무인 자산에 임무를 나누는 전술 판단 체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조종사를 돕는 보조장치가 아니라 전투 플랫폼 전체를 움직이는 디지털 두뇌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산업의 판이 바뀐다. 기체와 센서는 시간이 지나면 따라잡힐 수 있다. 그러나 의사결정 알고리즘과 학습 데이터, 검증 체계는 쉽게 복제되지 않는다. 앞으로 방산의 고부가가치는 하드웨어보다 ‘판단하는 소프트웨어’에서 나올 공산이 크다.
MUM-T도 마찬가지다. 유인기와 무인기가 함께 싸운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짜 중요한 것은 누가 임무를 배분하고, 데이터를 융합하고, 교전 흐름을 설계하느냐다. 미래 전장에서는 유인 전투기, 정찰 드론, 자폭형 무인기, 전자전 자산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움직인다. 이때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기업은 개별 기체를 납품하는 업체가 아니다. 전체를 연결하는 미션 시스템 아키텍처를 쥔 기업이다. 미래 방산의 주도권은 부품 공급자가 아니라 전장의 운영체계를 장악한 사업자에게 돌아간다.
무인기 시장도 이미 제조업의 틀을 벗어나고 있다. 이제 드론 몇 대 잘 만드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얼마나 빨리 임무에 투입할 수 있는지, 교란 상황에서도 자율적으로 임무를 이어갈 수 있는지, 다른 자산과 얼마나 유연하게 연동되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수익모델도 달라진다. 기체 판매보다 운용 소프트웨어, 유지보수, 데이터 분석, 훈련, 성능 개량 계약에서 더 큰 돈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무인기는 제품이 아니라 반복 수익이 가능한 체계 사업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 기업에도 기회는 있다. 다만 모든 분야를 혼자 다 하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승부처는 따로 있다. 여러 자산을 빠르게 연동하고 실전형 체계로 묶는 통합 역량이다. 한국은 제조, ICT, 반도체, 통신, 소프트웨어 응용 역량을 함께 갖추고 있다. 이 강점은 단일 플랫폼의 절대 성능 경쟁보다, 여러 자산을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전장 통합 솔루션에서 더 크게 빛날 수 있다.
이제 기업의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무엇을 개발할 것인가가 아니다. 무엇을 지배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AI 파일럿의 두뇌를 가질 것인지, MUM-T의 통합 권한을 가질 것인지, 무인기 운용 데이터의 소유권을 가질 것인지, 아니면 이 모두를 묶는 전장 운영체계의 표준을 선점할 것인지가 향후 10년 기업가치를 가를 것이다.
양현상 전문위원 yhs10386@aitimes.com
양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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