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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양현상 칼럼] 석유에서 반도체로, '융합혁명'이 바꾸는 패권의 질서

자율주행, 원격 제어 로봇, 지능화된 원전 시스템 등 AI와 로봇이 결합된 '피지컬 테크(Physical Tech)'가 실질적인 복구와 건설의 주역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력은 단순한 수주 경쟁력을 넘어, 동맹국에 제공할 수...

[양현상 칼럼] 석유에서 반도체로, '융합혁명'이 바꾸는 패권의 질서

과거 세계 질서를 규정했던 것은 언제나 '안보 자산'의 소유 여부였다. 생존과 직결된 소금과 철에서 시작해 지난 세기를 지배한 석유에 이르기까지, 핵심 자원의 공급망을 장악한 집단이 패권을 쥐어왔다. 그러나 2015년 셰일 혁명 이후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석유에서 반도체로 급격히 이동하며, 우리는 '페트로 달러(Petro-Dollar)'가 저물고 '세미컨덕터 달러(Semiconductor-Dollar)'가 부상하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동맹을 정의하는 기준이 바뀌고 있다. 과거의 동맹이 이념과 조약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적시 적소에 필요한 물건을 제조하고, 공급하며, 복구할 수 있는 실질적 능력'이 동맹의 핵심 가치가 되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독보적인 위치를 점한다.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이 약 27%에 달하는 한국은 이제 단순한 제조 거점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안보 자산' 보유국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필자가 저서 『융합혁명』에서 강조했듯, 이러한 제조 역량은 단순한 공장의 집합이 아니라 소재 공학, AI 설계, 그리고 로봇 시스템이 결합된 '융합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이제 단순한 부품이 아닌 소재 공학의 정점이다. 나노 단위의 미세 공정을 제어하는 '소재 통제력'과 이를 최적화하는 'AI 알고리즘'의 결합은 타국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기술적 해자(Moat)를 형성한다.

현재 시장이 우려하는 반도체 사이클의 변동성은 역설적으로 '장기 공급 계약(LTA)'의 확대로 이어지며 산업의 성격 자체를 바꾸고 있다. 이러한 LTA의 확산은 과거 수요에 따라 가격이 널뛰던 반도체를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확정적 자산'으로 변모시켰으며, 이는 곧 반도체가 투기적 상품을 넘어 가치 저장과 교환이 가능한 화폐적 안정성을 획득했음을 의미한다

AI 혁명은 아직 정의조차 내려지지 않은 초기 단계에 있으며, 인간의 생존 본능과 열등감이 투영된 무자비한 투자는 반도체를 단순한 상품(Commodity)에서 국가의 생존을 담보하는 화폐, 즉 '세미컨덕터 달러'의 지위로 격상시켰다.

AI는 이제 소프트웨어의 영역을 넘어 로봇이라는 '물리적 신체'를 입고 있다. 필자가 명명한 '융합혁명(퓨전 레볼루션)'의 관점에서 볼 때, 중동 재건 사업이나 에너지 공급망 재편에서 한국의 건설과 에너지가 주목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율주행, 원격 제어 로봇, 지능화된 원전 시스템 등 AI와 로봇이 결합된 '피지컬 테크(Physical Tech)'가 실질적인 복구와 건설의 주역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력은 단순한 수주 경쟁력을 넘어, 동맹국에 제공할 수 있는 강력한 안보 서비스이자 대체 불가능한 '제조 동맹'의 근거가 된다.

한국 증시와 산업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리레이팅(Re-rating)' 되기 위한 조건은 이미 갖춰졌다. 정부의 밸류업 정책과 주주 환원 강화라는 제도적 뒷받침 위에, 전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소재를 다루고, 이를 AI로 최적화하며, 로봇으로 구현해내는 '융합 생태계'가 실체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융합혁명이 공고한 국가 전략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낡은 규제의 틀을 깨는 제도적 혁신과 더불어, 전공의 경계를 허물고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석유 시대를 지탱하던 페트로 달러의 수혜국에서, 제조와 기술이 화폐가 되는 '세미컨덕터 달러' 시대의 하우스(House)로 거듭나야 한다. 소재, AI, 로봇이 이끄는 융합혁명은 단순한 산업 트렌드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글로벌 안보 자산의 중심 국가로서 '코리아 프리미엄'을 구가하게 될 새로운 국가 전략의 이름이다.

양현상 전문위원 yhs10386@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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