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상 공학박사
국방 기술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화력과 플랫폼 중심이던 군사력은 이제 반도체, AI, 로봇, 신소재라는 네 개의 기술 축 위에서 재정의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니라, 전쟁 수행 방식 자체를 바꾸는 구조적 전환이다. 최근 5년간의 글로벌 시장 추이를 보면 그 방향은 명확하다.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정의 국방으로, 그리고 다시 이 둘이 결합된 융합형 전장으로 빠르게 이동 중이다.
2021년부터 2026년까지의 시장 데이터를 보면 국방 AI와 반도체의 성장 속도는 특히 눈에 띈다. 국방 AI는 연평균 약 13.9%로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2026년 93억 달러 규모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역시 11% 이상의 성장률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반면 로봇과 신소재는 각각 8.9%, 6.3% 수준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 곡선을 유지한다. 이 격차는 단순한 산업 규모의 차이가 아니라, 국방 혁신의 중심축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분야는 반도체다. 유도무기, 레이더, 전자전 체계 등 거의 모든 현대 무기 시스템은 반도체 성능에 의해 결정된다. 특히 7nm 이하 초미세 공정 기술이 국방 영역으로 확장되기 시작하면서, 전장의 계산 능력 자체가 급격히 향상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성능 개선을 넘어, 무기 체계가 스스로 판단하고 대응하는 기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결국 반도체는 현대 국방에서 보이지 않는 핵심 전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AI는 그 위에 올라가는 두뇌다. 과거의 군사 AI가 정보 분석과 보조적 의사결정에 머물렀다면, 현재는 에이전틱 AI로 진화하며 자율 판단과 실행까지 담당하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위협 탐지 자동화, 군수 보급 최적화, 그리고 유무인 복합전투체계(MUM-T)의 통합 제어까지 AI는 전장의 모든 영역을 관통한다. 특히 실시간 데이터 처리와 자율 의사결정 능력은 미래 전쟁에서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로봇은 이러한 AI의 물리적 확장이다. 무인 수색, 구조, 폭발물 제거 등 기존의 임무를 넘어, 최근에는 드론 스웜, 무인 수상정, 무인 잠수정(UUV)까지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중요한 변화는 단순 자동화에서 자율성으로의 전환이다. AI와 결합된 로봇은 더 이상 원격 조종 장비가 아니라 독립적인 작전 단위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전장의 개념 자체를 바꾸며, 병력 중심 전투에서 시스템 중심 전투로의 이동을 가속화한다.
신소재는 이 모든 기술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다. 시장 규모 자체는 가장 크지만 성장률은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나 그 중요성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스텔스 성능을 좌우하는 전파 흡수 소재(RAM), 극초음속 무기를 견디는 내열 소재, 그리고 항공우주 분야의 경량화를 이끄는 탄소 복합재와 티타늄 합금은 미래 무기 체계의 성능 한계를 결정짓는 요소다. 특히 극한 환경에서의 내구성과 효율성은 첨단 무기 개발의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
이 네 분야를 개별적으로 보면 각자의 성장 스토리가 존재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서로 결합되는 방식이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진짜 변화는 기술 간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AI는 반도체 위에서 작동하고, 로봇은 AI에 의해 움직이며, 신소재는 이 모든 시스템의 물리적 한계를 확장한다. 이 구조가 바로 최근 주목받는 물리적 AI, 즉 Physical AI의 핵심이다.
2026년 이후 국방 시장의 본격적인 변화는 여기서 시작된다. AI 기반 자율 로봇에 고성능 반도체가 결합되고, 극한 환경에서도 작동 가능한 신소재가 이를 뒷받침하는 형태로 기술이 통합된다. 이는 단순한 기술 융합을 넘어, 전장 자체가 하나의 유기적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시대를 의미한다. 무기 하나의 성능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의 연결성과 지능이 전투력을 결정하는 구조다.
이러한 변화는 국가 전략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개별 기술 확보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고, 기술 간 통합 능력이 핵심 역량으로 부상한다. 특히 반도체와 AI는 기술 주권과 직결되며, 글로벌 공급망과 안보가 맞물리는 영역이다. 동시에 로봇과 신소재는 실제 전력화 속도와 직결되는 만큼 산업 기반의 지속적인 투자가 요구된다.
결국 국방 혁신의 방향은 명확하다. 빠른 기술 개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술을 연결하는 능력이다. 앞으로의 전장은 단일 무기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기술 생태계가 싸우는 공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반도체, AI, 로봇, 신소재가 만들어내는 융합혁명이 자리 잡고 있다. 이 흐름을 읽지 못하면 미래 전장의 주도권 역시 놓칠 수밖에 없다.
양현상 전문위원 yhs10386@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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