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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양준서의 정조준] 26조 추경에 70% 현금 지급…민생인가, 선거용인가

정부는 반도체 호황에 따른 법인세 등 25조 2,000억 원의 초과 세수를 재원으로 삼고 있다. 이번 추경이 국채 발행이 없다는 점에서, 재정에는 부담을 주지 않고 고유가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실제...

[양준서의 정조준] 26조 추경에 70% 현금 지급…민생인가, 선거용인가

정부가 중동 사태 장기화와 고유가·고환율·고물가라는 ‘3고(高) 쇼크’에 대응하기 위해 26조 2,000억 원 규모의 ‘민생 안정 추가경정예산안’을 전격 발표했다. 지난달 3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이번 추경은 ‘전쟁 추경’으로 불릴 만큼 속전속결로 추진되고 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국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6.3.30.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같은 날 국회에 제출한 추경안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다음달 10일까지 처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중동 상황이 크게 호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유가·고환율로 인한 타격을 추경을 통해서 소폭이라도 완화해보겠다는 방침이다.

지난달 16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역대 가장 빠르게 추경 집행이 되고 민생이 안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조속한 처리 의지를 강조한 바 있다.

정 대표는 "국회도 정부의 추경안이 제출되는 즉시 심사에 착수하겠다"며 "역대 가장 빠른 추경안 처리가 지난해 5월이었는데, 국회에 제출된 지 10일 만에 이뤄졌다. 이번에도 최대한 속도를 내서 이 기록을 깰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3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추경안은 국회 제출 뒤 약 10일 만인 4월 10일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처리 일정이 잡혀 있다. 정부·여당은 3월 31일 국회 제출 후 4월 7~8일 예결위 심사, 4월 10일 본회의 처리를 합의했다.

하지만 재원 마련의 근거가 된 ‘초과 세수’의 실체와 6·3 지방선거를 앞둔 타이밍을 두고 여야 간의 가파른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최수진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은 지난달 16일 논평을 내고 “올해 본예산은 무려 728조 원으로 지난해보다 54조 원이나 폭증한 역대 최대 규모"라며 "거대한 예산의 잉크조차 채 마르지 않은 1분기에 곧바로 추경 카드를 꺼내 드는 것은 정상적인 국가 운영이라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번 추경의 핵심은 ‘고유가 피해 지원금’이다. 정부는 4조 8,000억 원을 투입해 소득 하위 70%인 국민 약 3,580만 명에게 1인당 10만 원에서 최대 60만 원을 차등 지급한다.

가장 논란이 된 소득 하위 70% 기준은 건강보험료를 토대로 한 중위소득 150% 수준이다. 구체적으로 4인 가구 기준 월 소득 974만 원 이하면 지급 대상에 포함된다(3인 가구 804만 원, 2인 가구 630만 원, 1인 가구 385만 원). 사실상 억대 연봉을 넘는 가구까지 지원 대상에 포함되면서, 이를 ‘선별적 지원’이 아닌 ‘보편적 현금 살포’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반도체 호황에 따른 법인세 등 25조 2,000억 원의 초과 세수를 재원으로 삼고 있다. 이번 추경이 국채 발행이 없다는 점에서, 재정에는 부담을 주지 않고 고유가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실제 재정경제부가 최근 발표한 ‘2026년 2월 국세수입 현황’을 보면 1∼2월 국세수입은 71조원으로 전년 대비 10조원 늘었다. 올해 예산 진도율은 18.2%로 최근 5년 대비 1.4%포인트 높다.

추경안을 편성한 기획예산처는 이번 추경으로 0.2%포인트 성장률 제고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면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2.1%→1.7%)했다. 주요 기관들도 전망치를 내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정부는 이번 추경으로 선제 대응하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하지만 고유가로 인한 기업 비용 상승과 경기 둔화 가능성을 간과한 ‘장밋빛 추계’라는 비판이 거세다. 국회 예결위 소속 야당 의원들은 “아직 걷히지도 않은 세금을 미리 가불해 쓰는 행태”라며 현미경 심사를 예고했다.

1일 CBS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한 경향신문의 박순봉 기자도 “세금이 많이 걷힐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 빚 없는 추경을 하게 된 건데, 국민의힘 모 관계자는 ‘전쟁 추경이라면 고유가 고환율 이런 문제들 때문에 부정적인 상황이 펼쳐질 걸 대비해야 하는데, 앞으로 세수 결손 안 나는 거 장담할 수 있느냐? 예측한 대로 돈이 실제로 잘 걷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국민의힘 쪽에서는 “성장률을 낮춰 잡고 보수적으로 접근을 하고 곳간을 좀 안정되게 모아두고, 좀 이래야 되는 시점이 아니냐? 그런데 오히려 더 이렇게 돈을 뿌리는 그런 쪽으로 가는 방향은, 앞으로의 위기 상황을 전제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전제가 모순돼 있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정부가 내세운 ‘빚 없는 추경’의 허구성을 집중 타격하고 있다. 정점식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1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무리한 재정 확대는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자칫하면 스태그플레이션 위험까지 높일 수 있다”며 이번 추경을 “불확실한 초과 세수에 기댄 재정 도박”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정 위원장은 ‘선거용 매표 행위’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그는 “정부가 대응책을 고민하는 것은 필요하나, 돈만 푼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반면 정부‧여당에서는 ‘적기 대응’론을 펴고 있다. 강유정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달 31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중동 사태로 인한 민생 위기에 적기 대응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며 “야당의 ‘매표 공세’는 고통받는 서민과 중산층의 삶을 외면하는 정략적 발목잡기일 뿐”이라고 맞받았다.

추경의 재원은 초과 세수를 통해 마련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지만, 중동사태의 장기화 국면에서 쓸 수 있는 카드를 서둘러 소진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사태로 타격을 입은 걸프국의 에너지 생산시설은 전쟁을 당장 멈춰도 복구에만 수개월이 걸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경영학)는 “아직 중동사태에 따른 실물경제의 충격을 크게 체감하기 어려운데, 추경이 이른 감이 있다”며 “전쟁이 길어지거나 종전이 되면 추가적인 추경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추경이 국채 발행 없는 재정 운용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4월 말부터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에게 우선 지급을 시작해 최대한 집행을 서두른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지급 기준인 ‘4인 가구 월 974만 원’은 중산층을 넘어 고소득층까지 아우르는 범위에 해당한다. 위기 시 재정은 정말 어려운 곳에 집중되어야 하는데, 전 국민의 70%에게 돈을 뿌리는 방식은 정책적 효능감보다 선거를 앞둔 ‘밴드왜건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26조원의 추경은 ‘고유가 피해지원금’ 등 직접적인 지원 성격이 강한 만큼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OECD 전망대로 올해 물가상승률이 치솟을 경우 금리상승 압력도 높아질 전망이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시장에 26조원이 들어간다면 물가상승의 압력은 상당할 것”이라며 “통화정책에도 상당한 제약이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역시 “쪽집게식 지원이 아니고 많은 국민에게 나눠주는 건 물가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며 “이런 물가상승은 결국 저소득층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전망했다.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정부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고금리를 유지하며 물가 잡기에 안간힘을 쓰는 상황에서, 26조 원의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은 정책 엇박자라는 지적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빚 없는 추경’이 자칫 국민들에게 ‘물가 상승’이라는 청구서로 돌아올 가능성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양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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