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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알파폴드 이후, '과학을 위한 AI' 어디까지 왔나 [이승현의 AI 네이티브...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승현 포티투마루 부사장은 스타트업 창업가 출신의 AI 전문가다.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인공지능플랫폼혁신국장으로서 재직하면서...

알파폴드 이후, '과학을 위한 AI' 어디까지 왔나 [이승현의 AI 네이티브...

지난 2024년 노벨 화학상은 단순히 화학자만의 상이 아니었다. 데미스 허사비스, 존 점퍼, 데이비드 베이커, 이 세 수상자가 공통적으로 한 일은 단백질이라는 생명의 알파벳을 인공지능(AI)으로 다시 쓴 것이었다. 인류가 반세기 동안 풀지 못한 단백질 폴딩 난제가 AI 모델의 추론으로 풀렸다. 엑스선(X-ray) 결정학, NMR, 크라이오전자현미경(Cryo-EM)이 수십 년간 한 땀 한 땀 풀어낸 단백질 구조가 수십만 개 수준이었는데, 알파폴드(AlphaFold)는 2억 개가 넘는 예측 구조를 데이터베이스에 한꺼번에 풀어놓았다. 인류가 반세기 동안 쌓아온 구조 자산이 단숨에 1000배로 불어난 셈이다.

노벨위원회가 이 상을 준 의미가 AI를 더 이상 과학의 도구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작동시키는 새로운 방법론으로 봤다는 측면에서 그 메시지가 주는 파장은 컸다.

분기점이 된 알파폴드, 그리고 그 이후의 가속

마이크로소프트의 짐 그레이는 2007년 과학의 패러다임을 네 단계로 정리했다. 이 네 단계는 관찰(Empirical), 이론(Theoretical), 시뮬레이션(Computational), 데이터 집약(Data-driven)으로, 그가 네 번째 패러다임이라 명명한 데이터 과학의 시대는 지난 15년간 생명과학, 천문학, 기후과학을 다시 써왔다.

이제 AI 시대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다섯 번째 패러다임이 등장한 것이다.

AI 증강 과학(AI-augmented science), 곧 AI가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설계하고, 결과를 해석하는 시대다. 이전 패러다임이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는 시대였다면, 다섯 번째는 AI가 과학자의 역할 일부를 대체·보완하는 시대다. 차이는 가르고 결정을 짓는다. 데이터는 여전히 사람이 해석했지만, AI는 이제 해석까지 한다.

알파폴드가 분기점이 된 이유는 단순히 정확도 때문이 아니다. 실험으로 풀던 문제를 AI가 더 잘 푼다는 사실이 한 분야 전체의 일하는 방식을 바꿨기 때문이다. 알파폴드 이전 단백질 구조생물학은 수개월의 결정화와 수억 원짜리 장비를 필요로 했지만, 지금은 시퀀스만 있으면 수 분 안에 구조가 나온다. 조금 오버하자면, 박사과정 5년이 클라우드 비용 몇 달러로 압축된 것이다. 여기서 멈췄다면 단순한 도구의 진보 정도로 끝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AI 시대로 접어들면서, 곧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즉, 자연이 만든 것을 읽는 단계에서 자연에 없던 것을 만드는 단계로의 이동이다.

알파폴드3가 단백질-DNA-RNA-리간드 복합체까지 단일 모델로 풀어내며, 자연이 빚은 분자 상호작용을 사실상 통째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토대를 깔았다면, 데이비드 베이커 랩의 알에프디퓨전(RFdiffusion)은 디퓨전(diffusion) 기반 생성 모델로, 원하는 기능과 구조를 조건으로 주면 처음 보는 단백질 백본을 새로 만들어냈다. 에볼루션스케일(EvolutionaryScale)의 ESM-3는 98B 파라미터 규모로, 수억 년의 진화 거리를 압축한 신규 형광단백질(esmGFP)을 실제로 합성해냈다.

단백질말고도 AI가 과학에 미치는 영향은 계속 커졌다. 구글 딥마인드의 GNoME은 새로운 결정 구조 220만 개를 예측해냈는데, 그중 약 38만 개가 안정적이라고 판정돼 재료과학 데이터베이스에 그대로 등록됐다. 인류가 수백 년간 쌓아온 결정 지식을 한 번에 갈아엎은 셈이다. 같은 딥마인드의 그래프캐스트(GraphCast)는 10일치 기상예보를 단 1분 만에 내놓는다. 그것도 1380개 검증 지표의 90%에서 기존 세계 최고 수치예보 모델(ECMWF HRES)보다 정확하다.

수학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알파프루프(AlphaProof)는 알파지오메트리(AlphaGeometry) 2와 결합해 2024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 문제 6개 중 4개를 풀어 은메달 수준에 올랐다. 화학은 한 발 더 나아갔다. 카네기멜런대의 코사이언티스트(Coscientist)는 GPT-4를 두뇌로 삼아 실험을 직접 설계하고 계획하고 실행하는데, 비유기 지능이 화학 실험을 스스로 수행한 첫 사례로 네이처(Nature)에 보고되기도 했다. 정리해보면, 과학을 위한 AI(AI for Science)는 단백질에서 시작됐지만, 지금은 결정구조, 기상, 수학, 화학 등 과학의 전 분야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이다.

도메인 시퀀스 + 자기지도학습 = 새로운 추론 능력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도메인 시퀀스를 토큰으로 학습한 사이언스 파운데이션 모델이 있다. DNA, RNA를 토큰으로 학습한 Evo 2(40B 파라미터, 1M 염기쌍 컨텍스트)는 지구상 모든 생명 도메인을 한 모델에서 다룬다. 단일세포 유전자 발현을 ‘토큰’으로 보고 세포를 문장으로 다루는 scGPT, 지니포머(Geneformer), 에스씨파운데이션(scFoundation)은 5천만 개 이상의 단일세포 데이터로 사전학습돼, 약물 반응과 질병 메커니즘을 제로 샷(zero-shot)으로 추론한다. 화학에는 몰포머(MolFormer)와 유니몰(Uni-Mol)이 있고, 수학에는 딥시크매스(DeepSeekMath)와 누미나매스(NuminaMath)가 있다.

즉, 범용 LLM이 잘 못하던 분야가, 도메인 시퀀스를 학습한 모델로 풀리고 있다는 말이다. GPT나 클로드가 아니라, 그 위에 쌓이는 도메인 파운데이션 모델이 과학의 새로운 인프라가 되고 있는 것이다. 범용 모델 경쟁만 보던 시야를 도메인 파운데이션 모델 레이어까지 넓혀야 한다.

AI Scientist 와 새로운 병목

2024년 일본 사카나(Sakana) AI가 공개한 The AI Scientist는 가설 생성에서 코드 작성, 실험 수행, 논문 작성까지 연구의 전 과정을 LLM 기반 에이전트 시스템 하나로 처리했다. 한 편의 머신러닝(ML) 연구 논문 생성에 약 15달러가 들었고, 자체 자동 평가에서는 머신러닝 학회 수용이 가능한 점수가 나왔다. 이듬해인 2025년 3월 후속 버전이 ICLR 2025 워크숍에 제출한 3편 중 1편은 평균 6.33점으로 실제 동료 검토를 통과한 첫 완전 AI 생성 논문이 됐다(이후 투명성을 위해 자진 철회). 결국, 논문의 한계비용이 0에 수렴한다면, 이제 도대체 무엇이 발견인가라는 질문이 생겨버렸다.

구글 딥마인드는 한 발 더 나아갔다. 2025년 셀(Cell)에 발표된 AI co-scientist는 6개의 전문 에이전트(Generation, Reflection, Ranking, Evolution, Proximity,Meta-review)가 생성하고, 토론하고, 진화시키는 루프로 협업하는 멀티 에이전트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연구진이 10년간 매달려온 슈퍼버그 진화 메커니즘(cf-PICI)에 대해, 48시간 만에 미공개 상태로 보유하던 실험 결과와 일치하는 가설을 제시했다. 10년의 통찰이 이틀로 압축되버렸다.

AI for Science의 속도가 빨라진 만큼, 새로운 병목이 생겼다.

첫째, 데이터의 질과 폭이다. 이제 많이보다 제대로 큐레이션된 도메인 데이터가 중요해지고 있다. 알파폴드가 가능했던 이유는 50년간 축적된 PDB(단백질 데이터뱅크) 때문이고, scGPT가 가능했던 이유는 인간 세포 지도(Human Cell Atlas) 같은 공공 데이터 인프라 때문이었다. 공공,연구 데이터의 표준화와 접근성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된다.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건강보험 당연제 기반의 일관된 청구,영상 데이터, 코호트 자산은 세계 최고급이지만, 그 데이터가 AI가 학습 가능한 형태로 정리됐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둘째, 생성과 검증의 비대칭이다. AI는 가설을 사실상 무한히 찍어내지만, 검증은 여전히 사람,로봇,시간이라는 문제가 존재한다. 생성 > 검증의 격차가 벌어질수록, 많이 만들고 적게 믿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비대칭은 이미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 존재하지 않는 논문을 그럴듯하게 인용하는 환각이 동료 검토를 통과한 학회 논문에까지 침투하고 있고, AI가 가설부터 본문까지 써낸 논문에서 누가 책임을 지는가라는 저자성 문제는 아직 정답이 없다. 모두 검증 체계의 숙제다. 그래서 과학에서도 월드모델(world model)의 중요성이 새삼 부상한다. 인과 구조와 물리적 제약을 제대로 반영하는 모델만이, 무한 생성된 가설들 사이에서 무엇이 그럴듯한가가 아니라 무엇이 가능한가를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컴퓨팅과 모델 거버넌스다. 도메인 모델 학습은 수백 그래픽처리장치(GPU) 단위로 이뤄진다. 누가 모델을 가질 것인가, 누가 가중치를 신뢰할 것인가가 곧 거버넌스 문제로 직결된다. 소버린 AI 논의가 의료와 생명과학에서 더 무겁게 다뤄지는 이유다.

다음 10년의 과제는?

알파폴드가 노벨상을 받은 그날, 글로벌 신약 개발사들은 이미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실리코 메디슨(Insilico Medicine)은 AI로 발굴한 후보물질 ISM001-055(특발성 폐섬유증)의 임상 2a상 양성 결과를 2025년 네이처 메디슨(Nature Medicine)에 보고했다. 후보 발굴 18개월, 임상 진입까지 비용 1억 달러 미만, 전통적 신약 개발의 10년, 25억 달러 공식을 흔드는 수치다. 결국, AI for Science는 시간과 돈을 해결해나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나라에게도 몇가지 시사점을 남긴다.

첫째, 데이터의 정비 수준이 곧 모델의 상한선이다. 한국이 보유한 청구, 영상, 코호트 자산은 세계급이지만, 자산은 정돈 만큼만 자산이다. 머신리더블을 넘어서서 머신언더스탠더벌로 가야하고, 데이터 큐레이션과 표준화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둘째, 도메인 파운데이션 모델이 새로운 경쟁축이다. 범용 LLM 경쟁만 들여다보던 시야로는 다음 10년을 준비할 수 없다. Evo2, scGPT, MolFormer가 보여주듯, 진짜 해자는 ‘범용 모델 위에 어떤 도메인 모델을 얹을 것인가’에서 갈린다. 헬스케어, 소재, 금융, 공공 - 독파모 프로젝트 다음은 한국이 강점을 가진 버티컬에서 도메인 파운데이션 모델 전략을 시급히 세팅할 차례다.

셋째, 검증과 거버넌스가 곧 신뢰 자본이다. AI가 만들어내는 가설은 무한히 늘어나지만, 검증 인프라가 따라잡지 못하면 많이 만들고 적게 믿는 영역으로 떨어진다. 환각, 출처 추적, 재현가능성, 저자성, 책임 소재, 이 모든 항목에 운영 표준을 갖춘 조직만이 AI 생성 결과를 산업 의사결정에 투입할 수 있다. AX는 도구의 도입이 아니라 업무 정의의 재작성이라는 가장 중요한 명제를 과학과 의료에서 되짚어 봐야한다.

다섯 번째 패러다임은 이미 시작됐다. 노벨상은 출발선의 총성이 울렸다는 신호였을 뿐이다. AI는 생명과학을, 나아가 과학 전반을 읽는 도구에서 쓰는 도구로 바꾸고 있다. 이 전환 위에서 어떤 깊이의 자산을 쌓느냐가, 다음 10년 우리나라 과학, 그리고 산업의 좌표를 가를 것이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승현 포티투마루 부사장은 스타트업 창업가 출신의 AI 전문가다.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인공지능플랫폼혁신국장으로서 재직하면서 대한민국 공공 AI의 초석을 닦았으며, 현재는 법무법인 린의 공공AX 고문을 겸하며 기술과 정책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론에 머물지 않는 현장형 전략가로서 국가 전반의 AI 네이티브 전환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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