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에도 골목마다 원단을 실은 오토바이가 쉴 새 없이 드나들고, ‘타다닥’ ‘드르륵’ 수백 대의 미싱이 밤새 돌아갔지.”
50년째 서울 종로구 창신동 언덕을 지켜온 차경남 서울봉제산업협회장은 1980~90년대 창신동의 모습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기억했다.
하지만 지난 7일 오전 찾은 창신동 봉제거리는 차 회장의 기억과 사뭇 달랐다. 골목에서 눈에 띈 것은 봉제공장 ‘우빈사’ 앞에 세워진 오토바이 한 대와 공장 안 미싱기 네 대뿐이었다. 이웃 가게들은 셔터 문을 굳게 내리고 있었다. 23년째 ‘우빈사’를 운영하는 한영구(55)씨는 “오늘 오전 들어온 일감이 35장밖에 안 된다”며 기자에게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휴대전화 화면엔 ‘블라우스 아이보리 25장, 블랙 10장 부탁드립니다’라는 짧은 메시지 한 줄만 덩그러니 떠 있었다. 한씨는 “이 정도로 일감이 없으니 요즘엔 하루에 오토바이 20대나 다닐까 싶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창신동 봉제거리.
창신동은 한국의 주력산업이 섬유였던 1970년대부터 수출 의류 생산의 전초기지 역할을 해왔던 동네다. 좁은 골목의 공장들에서 밤새 만들어진 옷들은 동대문시장 곳곳으로 팔려나갔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중국과 동남아산 저가 의류가 밀려들면서 가격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2020년대 들어선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 등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까지 가세하며 국내 봉제산업은 급속도로 쇠락했다. 한씨는 “대구 등 국내 방직공장의 생산기지마저 중국 등 해외로 옮겨가면서 코로나19 이후로는 창신동 봉제공장이 맡을 수 있는 물량 자체가 40%가량 줄었다”고 전했다.
섬유산업 쇠퇴 양상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1988년 국내 섬유산업 수출액은 141억7100만 달러로 전체 수출의 23%를 차지했고, 무역수지 흑자만 124억1500만 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2024년 섬유산업 수출액은 104억6300만 달러로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3%로 쪼그라들었다.
봉제거리에 남은 미싱사들도 일감 감소를 체감 중이다. 40년째 미싱기를 돌리고 있는 김미정(59)씨는 요즘 일주일에 2~3일만 창신동 봉제거리로 출근한다. 김씨는 “예전엔 새벽 3시까지 일한 뒤 3시간 자고 다시 오전 6시부터 일했다”며 “몸은 힘들었지만 다 같이 으쌰으쌰하면서 돈을 벌던 그때가 그립다”고 회상했다.
미싱기를 수리해 중고로 팔던 상인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이날 박동하(66) 동향미싱 사장의 가게 앞에는 콘센트와 전선이 뒤엉킨 채 미싱기 3대가 방치돼 있었다. 박씨는 “봉제하는 사람이 없으니 중고 미싱기도 안 팔린다”며 “가게 안에 있는 미싱기 절반 이상은 결국 고물상에 넘겨야 할 판”이라고 전했다.
창신골목시장.
봉제산업의 침체는 인근 골목상권으로도 번졌다. 봉제거리 인근 창신골목시장에서 18년째 김치와 젓갈을 팔아온 김모씨는 “예전에는 김치 만들기가 무섭게 봉제사들이 다 사갔다”며 “지금은 당시의 30%도 못 판다”고 한숨을 쉬었다.
봉제거리와 골목시장이 비어 가면서 이 일대에는 ‘지역 공동화’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저렴한 월세를 찾아온 이주노동자들이 빈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생활방식의 차이를 둘러싸고 기존 주민·상인과의 갈등도 나타나고 있다.
문구완구거리.
다만 봉제거리 인근 풍경과 달리 6차선 도로 건너편의 창신동 완구거리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여름 휴가가 끝나고 개학이 시작된 9월인데도 창신동 완구거리는 영어·일본어·태국어·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가 오가며 시민들로 북적였다.
이곳에서 45년째 완구 장사를 해온 이월용씨는 “봄부터 시작된 ‘왁뿌볼’(왁스로 코팅한 점토 완구) ‘말랑이’ 열풍으로 올여름 2030세대 손님이 몰렸었다”며 “한국 손님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영상이 외국에도 퍼지면서 요즘은 해외 관광객도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이씨에 따르면 최근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선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나온 흥인지문을 방문한 뒤 창신동 완구거리에서 말랑이를 사고, 동묘시장에서 구제의류를 구경한 후 광장시장에서 길거리 음식을 맛보는 코스가 인기다. 이씨 설명대로 완구거리에서 도보 5분 거리인 동묘시장 빈티지 상점 거리는 젊은 세대와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동묘의 한 빈티지 상점에서 일하는 20대 장연우씨는 “빈티지가 하나의 패션 장르로 자리잡으면서 국내외 마니아층이 동묘를 찾는다”며 “외국인 단골 중에는 방문할 때마다 10벌 이상씩 사가는 손님도 있다”고 전했다.
네팔음식거리.
완구거리와 동묘시장의 활기는 인근 네팔음식거리로도 번졌다. 네팔음식점 매니저인 60대 로선 버떠라이씨는 “동대문이나 동묘에 놀러왔다가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를 보고 우리 가게까지 와서 밥을 먹고 가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한때 창신동을 먹여 살리던 봉제산업이 쇠퇴한 자리가 완구·빈티지·외국음식 등 새로운 콘텐츠로 조금씩 채워지고 있는 셈이다.
이같이 새로운 문화가 창신동을 채우듯 쇠락의 길을 걷는 듯한 봉제거리도 다시 소생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11일 완구거리와 동묘 빈티지 상권에 젊은층이 몰리는 ‘레트로 열풍’을 언급하며 “창신동도 봉제라는 고유한 옛 정체성을 살리면서 젊은 예술가들과 결합한다면 재생의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창신동의 봉제 기술과 동대문 인프라를 활용해 소규모 브랜드와 디자인, K패션 콘텐츠를 결합한 특화지역으로 되살리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다연 손경화 기자 yan@kmib.co.kr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