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서빈 상희팜푸드 대표.
기후변화와 농촌 인력난, 생산비 상승 등으로 농업 현장은 갈수록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맞춰 재배를 넘어 가공과 온라인 유통, 소비자 소통까지 직접 책임지며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어가는 청년 농업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전북 고창에서 2대째 가업을 이어받아 복분자와 베리류를 재배·가공하는 '고창상희팜푸드 영농조합법인' 안서빈 대표를 만나 가업 승계 과정과 현장의 이야기, 농업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부모의 30년 가업 잇는 2세 농업인
전북 고창에서 부모가 30여 년간 일궈온 농업을 이어받은 안서빈 대표는 현재 고창상희팜푸드 영농조합법인을 이끌며 복분자를 비롯해 오디, 아로니아, 블루베리 등 다양한 베리류를 직접 재배하고 가공하고 있다.
가업 승계 역시 형식적인 과정이 아니었다. 안 대표는 부모님과 함께 15년간 현장을 누비며 재배와 가공 전반을 익혔고, 12년 동안 실무 경험을 쌓은 뒤 본격적으로 경영을 맡았다. 현재는 HACCP 인증을 기반으로 안전한 생산체계를 구축하고 부모 세대의 경험에 젊은 경영 감각을 더해 고부가가치 융복합 농업을 실천하고 있다.
△농장부터 온라인 판매까지 이어지는 하루
안 대표의 하루는 이른 아침 농장에서 시작된다. 작물의 생육 상태를 확인하고 자연순환농법에 맞춰 가지치기와 병해충 관리, 수확 작업을 진행한다.
수확한 원물은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저장시설에 보관한 뒤 가공공장에서 제품으로 생산한다. 이후에는 온라인 주문 확인과 택배 발송, 고객 상담까지 직접 맡으며 생산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을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후변화에 따른 생산량 변동과 원물 가격의 불안정성이 가장 큰 고민이다. 특히 오랫동안 거래한 단골 고객들에게 가격 변동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가장 조심스럽고 부담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고창상희팜푸드 제품들.
△품질과 고객 소통으로 쌓은 경쟁력
고창상희팜푸드의 가장 큰 강점은 타협없는 '품질'과 고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에 있다.
안 대표는 15년간 현장에서 익힌 가공 기술과 특허받은 자연발효 기술을 바탕으로 프리미엄 제품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 소비자와의 직접적인 소통도 중요한 경쟁력으로 꼽았다.
좋은 제품만 만들면 소비자가 알아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아무리 품질이 뛰어나도 알려지지 않으면 선택받기 어렵다는 현실을 경험했다. 이후 고객 문의와 상담을 직접 응대하며 소비자의 의견을 꾸준히 반영했고, 이러한 노력은 높은 고객 만족도로 이어졌다. 현재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평점 4.9점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고객과 쌓아온 신뢰의 결과라는 것이 안 대표의 설명이다.
△기후변화와 비용 상승… 농가의 현실
최근 농업 현장에서 가장 크게 체감하는 어려움은 기후변화에 따른 생산 불안정성과 원자재 가격, 각종 고정비 상승이다.
가족 경영을 중심으로 매년 예측하기 힘든 어려움을 버텨내고 있지만, 고창군의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는 인력난 해소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직접 재배와 가공을 병행하는 농가에는 시설 지원뿐 아니라 지속적인 마케팅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좋은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소비자에게 알려지지 않으면 판매로 연결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농가들이 온라인 시장에서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실질적인 홍보와 마케팅 지원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서빈 고창상희팜푸드 대표.
△고객의 신뢰가 가장 큰 보람
힘든 농업 현장에서도 안 대표가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고객들의 반응이다.
"믿고 먹는다", "건강을 챙길 수 있었다"는 후기와 꾸준한 재구매가 이어질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24시간 고객과 소통하며 몸은 지치지만, 부모가 오랜 시간 쌓아온 신뢰를 자신의 손으로 이어가고 있다는 자부심이 다시 현장으로 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농업도 이제는 가공과 마케팅이 경쟁력"
"소비자에게 인정받고 믿을수 있는 기업, 정직한 기업으로 남고 싶어요."
안 대표는 앞으로도 부모가 지켜온 브랜드의 신뢰를 이어가면서 온라인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프리미엄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청년 농업인들에게는 단순 생산 중심의 1차 산업만으로는 안정적인 소득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라고 조언했다.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소비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신뢰를 쌓는 것이 지속 가능한 농업의 핵심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큰 성공을 바라기보다 자신만의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고 고객 한 사람 한 사람과 신뢰를 쌓아간다면 농업에서도 충분히 안정적인 길을 만들 수 있다"며 "앞으로도 우리 농산물의 가치를 더 많은 소비자에게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성희 농촌지도관.
농산물의 가치는 밭에서 끝나지 않는다
△박성희 전북특별자치도농업기술원 농촌지도관
농업은 작물을 재배해 소득을 올리는 산업이다. 대량 생산 체계와 탄탄한 유통망을 갖춘 작목은 판로가 비교적 안정적이다. 반면 블루베리나 복분자처럼 생산 규모가 작은 작목은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고 자체 판매를 지속하는 것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제 우리 농업은 단순 생산의 시대를 넘어서야 한다. 수확한 농산물에 가공과 브랜드화, 체험·관광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더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이를 농가의 안정적인 소득으로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즉,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보다 '얼마나 높은 가치를 창출하느냐'가 더 필요한 시기이다.
전북은 고창 복분자, 부안 오디, 순창 블루베리 등 전국적인 경쟁력을 갖춘 우수한 농산물의 중심지다. 그러나 여전히 상당수 농산물이 수확기에 원물 상태로 출하되어 가격 변동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이제는 가공산업을 육성하고 체험·관광을 연계한 '6차 산업화'를 확대해, 농산물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지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농가의 소규모 가공과 지역 공동활용 가공시설이 상생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농가가 직접 생산한 원료로 만든 가공식품은 '높은 원물 함량'과 '생산자의 신뢰', '건강한 먹거리'라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는다. 여기에 시군 농산물가공센터의 위생적인 시설, 체계적인 품질 관리가 더해진다면 전북의 농산물은 단순한 원재료를 넘어 소비자가 먼저 찾는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을이다.
가공산업의 성패는 안정적인 판로 확보에 달렸다. 학교와 공공기관 급식에 지역 농산물 가공식품 공급을 확대하고, 온라인 판매가 낯선 고령 농가를 위해 라이브 커머스와 디지털 마케팅을 지원해야 한다. 아울러 우수한 가공식품을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으로 적극 발굴·연계하는 등 지역 농산물 소비를 촉진할 제도적 기반도 강화해야 한다.
나아가 농산물 가공산업은 도시민을 농촌으로 이끄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 가공식품 생산과 체험 프로그램을 연계하면, 농촌은 단순한 생산지를 넘어 '먹고, 보고, 즐기며 머무는' 문화·관광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다. 이는 농가 소득 증대는 물론, 인구 감소로 침체된 지역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이다.
농산물의 가치는 밭에서 끝나지 않는다. 농부의 정성과 창의적인 아이디어, 그리고 가공 기술이 결합할 때 비로소 하나의 브랜드가 되고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이다. 이제 전북 농업은 생산 중심에서 가치 창출 중심으로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 원물을 판매하는 농업에서 명품을 만드는 농업으로 나아갈 때, 풍년은 더 이상 가격 폭락을 걱정하는 우려가 아니라 농가의 환한 웃음으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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