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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만나는 많은 남편들 중 질문하면 즉답을 하지 않고 뜸을 드리는 남편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 잠시 멈추고,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그리고 종종 이렇게 말한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남편들이 한번 이야기를 하면 상당히 조리있고 나름 논리적인 경우가 많다
이 말은 무책임한 태도가 아니라, 그가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일 가능성이 크다. 이른바 ‘침묵형 남편’은 갈등 상황에서 말을 줄이는 선택을 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말을 꺼내면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에게 대화는 감정을 풀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문제를 더 크게 만들 수 있는 위험한 순간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그는 생각한다. ‘지금은 말하지 않는 게 낫다’, ‘괜히 건드렸다가 더 커질 수 있다.’ 이 판단은 틀린 것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갈등은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더 커지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침묵이 상대에게는 전혀 다르게 전달된다는 점이다.
법정에서 한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저를 없는 사람 투명 인간처럼 대했어요.” 같은 장면을 두고도 두 사람의 해석은 완전히 달랐다.
남편은 ‘관계를 지키기 위해’ 침묵했고, 아내는 ‘관계에서 배제되었다’라고 느낀 것이다. 이 유형의 남편들은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관리’하려고 한다.
자신의 말이 상대에게 상처가 될까 봐, 혹은 상황이 더 나빠질까 봐 말을 멈춘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차분해 보이지만, 속에서는 이미 많은 생각이 지나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생각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이런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이때 아내가 느끼는 감정은 단순하다. ‘나랑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거구나!’ 그리고 그 해석은 점점 확신으로 바뀐다.
이 지점에서 갈등은 커진다. 아내는 더 많은 설명을 요구하고, 남편은 더 말을 줄인다. 아내는 ‘왜 아무 말도 안 해?’라고 묻고, 남편은 ‘지금 말하면 더 싸울 것 같아서’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방향이 완전히 반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 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했을 까? 먼저 아내에게 필요한 이해가 있다. 침묵형 남편에게 ‘말하지 않음’은 무관심이 아니라,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으려는 선택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방식으로 버티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반대로 남편에게도 필요한 변화가 있다. 완벽한 설명이 아니어도 괜찮다. 정리되지 않은 말이어도 괜찮다. 단 한 문장이라도 꺼내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정리가 안 돼서 말을 못하겠어’,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줘’라고 솔직하게 자기 심정은 열어놓는 게 필요하다.
이 한 문장은 침묵과는 전혀 다른 메시지가 된다. 법정에서 한 남편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말을 안 한 게 아니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 말은 늦었지만, 그의 관계 방식이 무엇이었는지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말이었다. 침묵은 때로 관계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지만, 설명되지 않은 침묵은 관계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 말하느냐가 아니라, 침묵 속에서도 ‘나는 여기 있다’라는 신호를 보낼 수 있느냐일지도 모른다.
[안귀옥 변호사의 남자의 감정 리포트] 9화는 ‘회피를 선택하는 남편과 대화하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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