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 붕괴 시대, 책 읽기 중요성 커져
독서 교육 굳건히 세울 교육 수장 기대
교실 앞 복도에서 멍하니 서 있는 A와 눈이 마주쳤다. 방과 후에 영어, 수학, 피아노 학원과 방문 학습지 4과목의 숙제에 짓눌려 정작 수업 시간에는 졸기 일쑤인 초등학생이다. 안타까운 점은 그렇게 공부로 바쁜 A가 학습부진 학생이라는 점이다. 좋은 성적을 위해 아이들은 빽빽한 스케줄에 밀려다니며 아침부터 밤까지 지식을 머릿속에 욱여넣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학교 현장에서는 A처럼 ‘학습 부진’을 겪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최근 발표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보면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은 코로나19 이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하며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심각한 것은 글자는 읽지만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는 ‘실질적 문해력’의 붕괴다. 스스로 읽고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주입식 교육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다.
인공지능(AI) 세상 속에서 교육의 패러다임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AI가 1초 만에 완벽한 정답을 내놓는 시대다. 맹목적인 입시 교육이 더 이상 아이들의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모두가 체감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주입식 교육의 대안으로 디지털 기기 보급과 AI 조작 기술을 익히는 교육을 강조한다. 하지만, 화려한 AI 기술도, 과거의 암기식 훈련도 지금의 위기를 타개할 근본적 해법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금 교육이 집중해야 할 것은 예측하기 어려운 기술적 ‘변수’가 아니라,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본질적 ‘상수’이다.
공부의 본질은 오랜 세월 인류의 지혜가 응축된 ‘기초 학문’에 있다. AI조차 이 기초 학문에서 시작되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이 학문들의 정수는 다름 아닌 책을 통해 전수됐다. 독서 교육은 모든 배움의 시작이다. 따라서 AI 시대일수록 독서는 모든 교육의 토양이 되어야 한다. 인간 고유의 능력을 지키고 키우려면 느리고 깊게 읽으며 스스로 사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독서교육이 절실하다.
이 독서 교육의 중심에는 학교도서관이 있다. 학교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려주는 공간을 넘어, 정답 없는 질문을 던지고 서사를 읽어내는 법을 배우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곳에는 아이들의 지적 방황을 의미 있는 성장으로 이끄는 학교도서관 전문가, ‘사서’가 있다. 사서는 학생의 시선에 맞는 책을 연결하고 비판적 사고를 깨우는 핵심 나침반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 많아도 훌륭한 안내자가 없는 도서관은 책 창고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경남의 아이들은 사서를 얼마나 만날 수 있을까? 2025년 현재 경남지역 978개교 중 단 33%(329개교)에만 학교도서관 전문 인력이 있다. 사서가 없는 67% 학교의 학생들은 체계적인 독서 교육에서 소외된 채 또 다른 격차로 내몰린다. 실제 경남의 사서교사 배치율은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중 최하위 수준(2023년 기준)이다. 기초를 다져야 할 토양이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교육감 후보들의 다양한 공약이 들려온다. 이제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질문해야 한다. 배움의 가장 오랜 뿌리인 독서 교육을 굳건히 세울 철학을 가진 후보는 누구인가? 새 교육감은 사서 인력 중장기 충원 계획과 지원 체계를 제시해야 한다. 질적 독서 교육이 가능한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인공지능 세상에서, 우리를 끝내 인간답게 지켜주는 것은 효율성이 아니라 ‘비효율적인 사유의 시간’이다. 투표용지에 찍힐 어른들의 선택이 아이들의 무거운 학원 가방을 덜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가장 느린 책 읽기가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예리한 무기임을 아는 리더를 기대한다.
/김규미 학교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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