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원점, 문화의 접점, 인류의 초점 I 특별판
인류의 요람, 역사의 어머니 인도③
역사 속 흔적을 자랑하는 대신 모든 영광을 신에게 돌리는 인도
돈만 있으면 죽은 조상도 구원… ‘내가 최고’를 앞세우는 중국
중앙아시아 소그드인은 6세기 육로 실크로드의 주역이다. 실크만이 아닌, 금·은 등 귀금속, 향신료, 향료, 말 등의 중간매매를 통해 부를 축적한다. [사진 유민호]
중국 로봇, 미국의 98% 수준 도달’. 최근 한국에 전해진 중국 첨단 산업 관련 기사다. 무슨 근거로 98%인지는 모르겠지만. ‘뻥’이 너무 심하다. 필자가 보면 미국 절반 정도 수준이 될지도 의문이다.
한국만큼 중국발 첨단 산업 관련 기사가 넘치는 나라도 드물다. 언제부턴가 미국·일본 관련 기사는 줄고, 중국발 보도가 끊이지 않는다. 중국산 로봇 묘기가 거의 매일 비디오 뉴스로 등장한다. 언뜻 보면 로봇은 물론 인공지능(AI)·반도체·전기자동차(EV)의 ‘차이나 넘버원’이 이미 구체화한 느낌이다. 중국이 한국을 추월했다는 경각심 정도가 아닌, ‘중국 대세, 중화 찬미’로 느껴질 정보다. 팬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10~20년 내 중국이 미국을 압도할 것이란 기사가 넘쳤다. 그러나 중국 패권과 미국 황혼 뉴스는 베이징발 부동산 추락 소식과 함께 소리 소문없이 사라진다. 대신 등장한 것이 로봇·EV·무인 자동차 관련 뉴스다. 2~3년 전부터 등장한 ‘한국 내’ 중국 패권 뉴메뉴들이다.
히틀러 나치 정권은 1930년대 시속 200㎞대 초고속 열차를 만들어냈다. 당시 세계 신기록으로 모두가 놀란다. 그러나 실제 운용에 들어간 시속 200㎞대 초고속 열차는 1960년대 일본 ‘신칸센’이다. 세계 신기록 히틀러 열차라지만, 비상시 대형 참사를 막을 안전장치가 없었다. 앞으로 무작정 달리기는 하지만, 돌 하나만 튀어도 전원 몰살이다. 신칸센에서 보듯, 200㎞ 속도에 맞는 안전 장비로 무장하기까지 무려 30년 이상이 걸렸다. 춤추고 달리는 로봇, 1회 충전 시 1000㎞를 주행하는 EV도 좋다. 그러나 이미 간간이 실리지만, 비상시 EV 문이 안 열린다. 로봇이 갑자기 깡패로 변해 집안 내 물건을 전부 파괴한다. 실용성·안전성·경제성 없는 눈요기 경쟁이 중국 첨단 산업의 실상일지 모르겠다. 아직 길고 긴 ‘검증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더불어 서방의 중국 디커플링이 고착화한 상태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 산업이 존립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퍼붓기 정부 자금으로 버티고 있지만, 수출이 안 될 경우 1회 충전 1만㎞ EV라도 견딜 수 없다.
한국 대입 시험에서 세계사를 선택한 학생이 8% 이하라고 한다. 그리스·로마사에서부터 십자군 전쟁이나 합스부르크 왕조, 2개 세계대전의 배경·과정·결과가 뭔지에 대해 고등학생 90% 정도가 안 배우고 거의 모른다는 의미다. 공부를 안 할 경우 객관적으로 비교 분석할 능력이나 의지도 생기기 어렵다. 한국 전체가 중국에 매달리는 ‘우물 안 국뽕’ 나라로 변해가는 이유 중 하나일 듯하다.
역사가 증명한 전체주의의 한계
AI를 사용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질문자 수준에 맞는 답이 나온다. 엉터리 답도 넘친다. 기초가 없으면 뭐가 뭔지 구별할 수도 없다. 한국 내 흘러다니는 중국발 정보를 보면 미국·일본은 이미 이류, 삼류 국가로 추락한 상태다. 과장된 피해의식과 시대착오적 열등감 때문이겠지만, 반미·반일 세계관에 맞춰진 ‘중화 만세’가 곳곳에 난무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친미를 앞세우자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투명성으로 인해 트럼프 2.0의 결점이 증폭될 뿐, 현실로 가면 일당 독재 중국의 모순과 비극이 한층 더 하다. 미국이 최선·최고는 아니다. 그러나 전제국가 중국이나 러시아보다는 차선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우리 모두 함께’는 트럼프 등장 이전 글로벌 시대 논리에 불과하다. 1992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장 이후 약 30년간 지속됐다. 아직도 ‘우리 모두 함께’를 외치는 사람도 있지만, 현실은 이미 ‘나만의 시대, 자국 퍼스트’로 변한 지 오래다. 이란 공격과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사건, 나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라. ‘우리 모두 함께’를 아무리 떠들어봤자 ‘이불 속 독립만세’에 불과하다. 같은 이슬람 국가들조차 이란에 등을 돌린다. 정의론·평등론·다양성이 아닌 강자론이 인류 역사의 일상이다. 글로벌 시대는 그 같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이념·이상으로서의 비일상이었을지 모른다. 이념 도그마 슬로건은 잠시 반짝할 뿐이다. 트럼프 등장과 함께 일상, 즉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수많은 결점을 가진 불완전 체제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일당독재 전체주의 1인 체제보다는 안전하고 신뢰할 만하다. 전체주의 특징이지만, 세울 때는 초스피드, 무너질 때는 ‘전부 왕창’ 사라진다. 독재의 후유증은 길고도 길다. 반트럼프 욕설이 아무리 난무해도 중국을 대안이라고 믿는 미국인은 없다. 한국 좌파 리버럴 가운데 지상천국 북한행을 고집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다. 벼락치기 중국·러시아가 아니라, 차선의 자유 미국이 그래도 오래간다.
실크로드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대외 경제정책을 한마디로 압축한 키워드다. 시진핑 권력 장악 10개월 뒤인 2013년 9월 육상 실크로드 계획, 이어 10월에는 해상 실크로드 계획이 공표된다. ‘차이나 경제 넘버원’을 염두에 둔 전대미문 글로벌 프로젝트다. 14년 권력자 시진핑은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자신의 평생 독재 발판으로 활용한다. 한국인은 입으로, 일본인은 칼로 싸운다는 말이 있다. 중국인은 사람 수와 규모로 싸운다. 바로 인해(人海)다. 인민재판은 중국 공산당이 만든 ‘인해 죽이기’의 대표적 본보기다. 법이고 상식이고 필요 없다. 떼로 이뤄진 부화뇌동 인해가 정답이자 진리다. 김일성은 말로 죽이는 한국 문화에다가 인민재판 인해를 통해 3대 평생 권력을 구축했다. 시진핑은 14억 중국 인력과 돈을 총동원해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구체화한다. 좋게 말해 국가 비전, 즉 ‘중국몽(中国夢)’이다. 중국 국내 정치로 보면 ‘실크로드가 완성되기까지 결코 시진핑은 물러나지 않는다’는 1인 영구 독재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새삼스럽게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엉망진창 현실을 거론할 생각은 없다. 한국 정부가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정식 가입하지 않은 점이 축복이자 다행일 뿐, 비극과 참상은 애초부터 예견됐다.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시진핑 브랜드로서의 프로젝트가 아닌, ‘실크로드’라는 단어 그 자체에 있다. 한국인이 보면 실크로드는 낭만과 친근의 이미지로 와 닿는다. 중국과 처음 접할 당시 필자도 경험했지만, 실크로드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어딘가가 뜨거워졌다. ‘중국=판다’로 대하는 심정이랄까? ‘중국=실크로드’로 보면서 고대 중국의 찬란한 문명·문화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나 그 같은 생각은 세상을 넓게 보고 느끼면서 점점 ‘정반대’로 변해갔다.
중국 경제정책 키워드 ‘실크로드’
1978년 스웨덴 지식인들이 캄보디아를 방문해 킬링필드 존재 여부를 확인했다. ‘폴 포트’는 이들을 접견해 식사를 나누며 ‘프놈펜=지상낙원’이라고 선전한다. 스웨덴 지식인은 유럽으로 돌아가 ‘킬링필드=자본주의 체제권의 왜곡과 프로파간다’라면서 폴 포트 홍위병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캄보디아의 실상은 1년 뒤 베트남이 폴 포트를 물리친 뒤 전부 드러난다. 불과 4년 만에 200만 명이 수용캠프에서 죽었다. 중립국 스웨덴 지식인은 캄보디아를 이념과 이상으로 대했다. 그 결과 킬링필드의 현실과 진실, 그리고 실상을 방관했다. 폴 포트 범죄의 공범자인 셈이다.
스웨덴 지식인의 오만과 상상력은 실크로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말이 글로벌 개발일 뿐, 중국발 자원 착취의 현장이 실크로드의 현황이다. 중국이 메뚜기 떼처럼 몰려갈 경우 초토화한다. 현지 독재자나 지도자급에게는 엄청난 뇌물이 떨어지지만, 나라 전체가 곧바로 중국발 장기 채무에 빠져든다. 그러나 아무리 현실이 척박하다고 해도 실크로드라는 고상하고 신비로운 단어로 인한 착각과 허상을 지우기가 어렵다. 왜일까?
1877년 독일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Ferdinand von Richthofen)’이라는 인물의 상상력이 출발점이다. 중국 관련 저서에서 ‘실크로드(Seidenstraße)’란 단어를 역사상 처음 선보인 인물이다. 기원전 114년부터 서기 120년 사이 중국~중앙아시아~인도~중국으로 연결했던 도로망을 ‘실크로드’라고 부르면서 당대 역사를 재평가했다. 원래 이름 자체가 없던 길이었지만, 리히트호펜이 지어낸 단어가 실크로드다.
19세기 말 등장한 신조어 실크로드는 20세기 초 서방의 신장·서역지역 문화재 약탈과 함께 고대사 일부로 정착된다. 용산 국립박물관은 중국 서역지역 유물·유적 전시관을 갖고 있다. 실크로드 주변 흔적이 왜 서울 한복판에 남아 있을까? 1920년대 서역을 탐험한 일본 오타니(大谷)탐험대 덕이다. 현지 유물·유적을 약탈한 뒤 조선에 잠시 보관하던 중 해방과 함께 국립박물관에 남게 된 것이다.
인도 여행 중 접할 신선한 체험 하나로 중국 역사의 허상을 빼놓을 수 없다. 인도 곳곳에서 중국의 ‘뻥’을 실감할 수 있다. 리히트호펜은 중국산 고급실크가 로마 권력자들의 최고 기호품이었다는 얘기를 한다. 실크가 중앙아시아 낙타를 통해 로마로 전해졌다는 낭만적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절반은 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중국 실크가 로마로 전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로마 전체가 중국 실크를 우러러보면서 최고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로마에서 실크의 대명사는 중국과 무관한 인도산이다. 간단히 말해 중국산은 인도산 대용품으로 사용된 짝퉁 정도라고 보면 된다. 중국인의 짝퉁 유전자는 지금 당장의 현상이 아니다.
인도산 실크는 거칠고 튼튼하다. 중국산 실크는 가볍지만, 손상이 쉽다. 로마는 중국산을, 중국은 인도산 실크를 선호했다. [사진 유민호]
실크로드 배격하는 21세기 문명학자들
리히트호펜이 말한 로마 당시 실크의 주된 공급처는 인도다. 중국이 양잠기술을 인공으로 개발해 실크를 판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주력은 아샘지방의 무가(Muga) 실크를 비롯한 인도와 인도차이나 주변 실크였다. 중국산은 수출량 자체가 적기 때문에 희소성이란 차원에서 비싸게 거래됐다. 더불어 당시 실크 판매는 현재의 인도~페르시아~중동을 잇는 중개상들의 일이었다. 14세기 중국 경덕진 도자기가 그렇듯, 중국인은 생산만 할 뿐이다. 로마나 유럽 현지로 들고 가 고가로 팔아 돈을 번 주역은 인도·페르시아·중동 장사꾼이었다.
오해하기 쉬운데, 당시 유럽행 길은 단 하나의 길이 아닌, 육지와 바다 통틀어 수백 개에 달했다. 중국산 실크와 함께 낙타로 여행하는 풍경은 극히 일부분에 그친 예외적 상황일 뿐이다. 일단 실크가 아닌, 금·은 등 귀금속, 향신료, 향료, 말 등이 주된 교역상품이다. 특히 가벼운 고가의 후추가 인기상품이었다.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실크는 극히 일부분에 그쳤다.
21세기 문명학자들은 시진핑이 말하는 실크로드라는 말을 배격한다. 단수가 아닌 복수로서 ‘Silkroads’를 쓰거나, 유라시아 통상 네트워크(Eurasian trade networks), 인도양 통상 네트워크(Indian Ocean trade network)로 바꿔 부른다. 리히트호펜이 말한 중국~중앙아시아~유럽으로 이어진 단수로서의 실크로드는 학계에서 이미 추방된 상태다. 길이 곳곳에 들어서 있었고, 실크만이 아닌 수많은 아시아 특산물 통상로라는 것이 실크로드의 새로운 정의다.
시진핑은 ‘실크로드=중국’이란 이미지로 굳히려고 한다. 반면 학계는 ‘실크=중국, 실크로드=중국 통상로’라는 개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과 달리 인도에 대한 학계의 배려는 21세기 그대로 남는다. ‘인도양 통상 네트워크’에서 보듯, 인도를 주인공으로 한 글로벌 통상로에 대한 인증이 확실하다. 역사학자들은 인도와 달리 실크로드를 ‘차이나 실크로드’로 표현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실크는 인도산이 주종일 뿐 중국산은 인도 실크에 끼워 파는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실크로드를 단수가 아닌 ‘복수(Silkroads)’로 표현한다는 것은 중국만이 아닌 수많은 지역과 나라 실크산업이 관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도산 무가(Muga) 실크 순례라고 할까? 인도 아샘지방에 들러 실크의 역사를 더듬어 봤다. ‘수알쿠치(Sualkuchi)’라는 작은 동네로, 부탄과 국경을 접한 ‘브라흐마푸트라(Brahmaputra)’강 주변에 있다. 해외 토픽에 항상 등장하는 고정 침수지역이다. 누에는 고온 다습한 환경을 좋아한다. 아샘지방은 전 세계 최고 강우량을 자랑하는 땅으로, 동쪽으로 미얀마와 인도차이나로 연결된다. 브라흐마푸트라 강을 통해 상류 쪽 실크 재료가 오가면서 수알쿠치가 지역 내 공장으로 활용됐다고 보면 된다.
수알쿠치는 인구 2만5000명 정도의 작은 부락이다. 실크는 전부 가내수공업 차원에서 이뤄진다. 대형 공장은 없다. 인도에는 무가 외에도 타사(Tussar), 에리(Eri)를 비롯해 수십 종의 자연산 실크가 존재한다. 인도 양잠은 자연산이 기본이다. 자연에서 자라는 누에를 잡아 실크 원료를 뽑아낸다. 실이 거칠고 짧다. 중국산 인공 양식 누에는 자연산보다 길고 부드럽다. 중국산이 무가 실크보다 비싸게 팔린 이유다. 무가 실크는 자연산이기 때문에 실크 표면도 거칠고 뭔가 둔탁하다. 반면 중국산 실크에 비해 자연산 색을 그대로 만들어내고 견고하다는 장점이 있다. 무가 실크로 만든 옷은 100년간 입어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 사치품이 아닌, 일상용 옷으로 무가 실크에 준할 튼튼하고도 가벼운 옷은 20세기 이전까지 없었다.
실크로드는 단수가 아닌 복수 무역로다. 중국만이 아닌 인도, 인도차이나, 중동에 수백 개의 크고 작은 무역로로 이뤄진 길이다. [사진 유민호]
‘세계의 공장’답게 개조에는 능하지만…
수알쿠치에서 파는 최고급 무가 실크는 대략 1m당 100달러 정도다. 무가 특유의 황금색 실크로, 도심부로 가면 두 배, 유럽으로 가면 10배 가격에 거래된다고 한다. 무가 실크는 인도 결혼식의 필수 의상이다. 신랑·신부 모두 무가 금빛 실크 옷을 입고 하객을 맞이한다. 21세기에도 초고가로 팔리는 상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2000여 년 전 로마 당시 무가 실크에 대한 수요와 인기가 어느 정도였을지 상상이 된다.
인도 동북부 아샘지방은 미얀마를 중간점으로 하면서 중국 운남지방으로 연결된다. 인류 최고(最古) 무역로로 통하는 이른바 남방 실크로드다. 인도인들은 ‘레도 트레일(Ledo Trail)’이라 부르는 무역로로, 수알쿠치에서 550㎞ 동쪽 레도지방이 최종 도착지다. 미얀마 국경 도시로,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이전에 이미 탄생한 루트다. 인도 아샘은 평지다. 미얀마를 통해 중국 운남성으로 들어가는 순간 해발 2000m 이상의 고원지대로 돌변한다. 고온 다습한 정글에다가 바위와 진흙이 뒤섞인 최악의 무역 통로다. 그러나 이미 로마로 실크가 수출되기 전부터 활발히 교류한, 인류 무역사의 시발점에 해당되는 곳이다. 워낙 험준한 지형과 기후로 인해 말·낙타와 같은 동물을 활용한 무역은 불가능했다. 전부 사람이 직접 들고 다니는 무역이다. 결국 소량 고가 품목만 엄선해 거래된다. 중간상이 미얀마이고 중국과 인도 물건이 교차 거래된다. 실크와 차, 그리고 상아는 당시 최고의 교역 상품이었다. 흥미롭게도 중국인은 자국산보다 견고하고 금빛으로 장식된 무가 실크를 좋아했다. 인도는 중국산 양잠 실크를 값싸게 들여와 로마에 팔고, 대신 무가 실크를 중국에 비싸게 팔았다.
앞서 밝혔듯 인도는 중국 역사의 민낯과 ‘뻥’을 이해할 최고의 현장이다. 실크, 나아가 실크로드의 내막도 그렇지만, 차(茶)의 역사를 봐도 똑같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아샘지방은 차의 산지다. 인도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차 생산 대국이다. 향기가 으뜸인 다아질링 차와 카페인 성분이 강한 아샘 차다. 다아질링은 영국행 수출을 위한 인공 차 농장이다. 반면 아샘은 수천년 전부터 인도가 즐긴 자연산 차다.
한국인에게는 낯선 얘기지만, 원래 차는 10~20m까지 자라는 차나무를 통한 수확물이다. 오늘날 보는 잘 정리된 차 농장은 영국이 개발한 다아질링 스타일 재배 방식이다. 고온 다습은 실크만이 아닌 차나무에도 적용된다. 인도 차나무는 고온 다습 환경에서 자라는 다년생 식물로, 생산량이 제한돼 있다. 실크가 그러했듯, 레도 트레일을 통해 차나무가 미얀마를 거쳐 중국으로 넘어간다. 중국에서는 나무가 아닌, 키 작은 농장의 인공 농작물로 바뀐다.
현재 중국은 실크의 출발점이 자국이라고 강조한다. 중국 황하 중류의 양사오 문화(Yangshao Culture) 유적지에서 발견된 기원전 3600년 흔적이 증거라고 한다. 그러나 생태학적 관점에서 볼 때 고온 다습을 필요로 하는 차나무, 나아가 실크가 인도에서 미얀마를 거쳐 중국으로 넘어간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중국은 그 같은 환경·생태적 요소를 배제한 채 ‘차이나 넘버원’을 외친다.
인도 아샘은 고온 다습한 지역으로 인류 차의 출발지다. 차는 차나무에서 딴 힌두교 시바의 선물로 통한다. [사진 유민호]
‘차이나 넘버원’은 역사 속에서도 과장돼
필자의 판단이지만, 중국인이 제시하는 유물·유적은 기본적으로 믿기 어렵다. 기록이라고 하지만, 후대에 왜곡하고 끼워 넣은 것이 다반사다. 황제의 무소불위 권력은 과거는 물론 21세기 시진핑 체제에서도 똑같다. 정부의 으름장 한 번으로 일본행 여행객 70%가 줄어드는 나라가 중국이다. 잘못 기록할 경우 전부 몰살이다. 거의 신화에 가까운, 권력자에 맞춰진 기록을 대량 생산한다. 인도의 자연산 차나무가 중국산 농장형 차 재배로 진화된 것은 사실이다. 실크에서 보듯, 원형을 개조·개선한 곳은 ‘세계의 공장’ 중국이다. 그러나 무에서 유를 창조한 ‘차이나 넘버원’은 결코 아니다.
아샘 지방에는 차를 파는 상점이 많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인도 특산 차도 있다. 아샘에서 1kg에 최하 700달러에 거래되는 ‘화이트 티(White Tea)’가 대표적 본보기다. 수백년 된 차나무에서 자란 새싹만 모은 차다. 필자도 묻고 물어 진품 화이트 티 100g을 구입했다. 솔직히 말해 100분의 1 가격에 팔리는 보통 아샘 차와 구별하기 어렵다. “최하 500년 고목 차로, 나무에 올라가 하나씩 손으로 따고 건조 방식도 아주 특별하다.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인도정부가 특별 관리하는 차나무에서만 생산된다. 차 맛도 다르겠지만, 차나무와 거기에 얽힌 사람들과 차나무를 보내준 시바(Shiva) 신에 대한 찬미로서의 화이트 티다.”
인도인은 아샘의 차를 힌두교 신 시바와 연결해 즐긴다. 시바 수행자들은 정신을 맑게 하고 고행을 견디기 위해 아샘 야생 찻잎과 허브를 달여 마신다. 찻잎이 시바의 눈물이나 몸에서 떨어져 자라났다는 민간 설화도 있다. ‘아샘 차=시바=고목의 정령(精霊)’이라는 의미다. 중국인이라면 ‘몸에 좋은 장수 기호품으로서의 차’라고 말할 듯하다. 2026년 풍경이지만, 사물을 대하는 인도와 중국의 자세는 180도 다르다. 인도는 실크·차를 비롯한 역사 속 흔적을 자랑하거나 떠들지 않는다. 모두에게 도움이 되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자세다. 모든 영광은 신에게 돌아갈 뿐, 인간은 신이 내린 운명 속에서 살아갈 뿐이란 세계관을 갖고 있다.
중국에는 신이 없다. 돈에 기초한 현세가 전부다. 죽음 뒤 삶조차 후손의 돈과 권력으로 치유될 수 있다고 믿는다. 중국 도교는 가짜 돈을 태워 조상에게 바친다. 돈만 있으면 죽은 조상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랑이 많고, 뭘 해도 ‘내가 최고·최대’를 앞세운다. 한국은 그 같은 중국 세계관을 믿고 따르는 수제자다. 결과적으로 중국이나 한국이나 과장과 허세의 나라로 진화한다. 중국의 민낯과 뻥은 21세기 한국에서 펼쳐지는 황당한 경쟁과 ‘국뽕’의 거울 속 초상화일 뿐이다. 인도는 방법이나 수단과 무관한 공간이다. 근본 원리와 궁극적 삶의 목표 의미와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신의 영토가 인도다. 필자가 주변에 인도 여행을 ‘적극’ 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민호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유민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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