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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아버지와 아들

AI 시대를 맞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독립과 종속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19세기 러시아의 문호 투르게네프가 쓴 장편소설 은 신세대와 구세대 간의 갈들을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버지 세대와 아들...

아버지와 아들

이광수 소설가

세월 따라 세상인심이 변해 가듯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도 옛날 같지가 않다. 유교에서 인간관계를 규율하는 기본 도리인 삼강오륜(三綱五倫)은 구시대의 유물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오륜 중 부자유친(父子有親)-아버지와 아들(자식) 사이에는 친함(사랑)이 있어야 한다-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유의미한 관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현실은 인륜을 저버린 패륜으로 부자유친을 무색하게 한다. 자식이 늙고 병든 부모를 방기하고 해치기까지 한다. 또한 자식을 자기 소유물로 간주한 부모가 자녀를 죽이고 자살하고, 낳은 자식을 양육하지 않고 버리는 비정한 세상이 되었다. 이런 세태에 부자유친을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인 것 같다. AI 시대를 맞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독립과 종속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19세기 러시아의 문호 투르게네프가 쓴 장편소설 <아버지와 아들>은 신세대와 구세대 간의 갈들을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 보수주의자와 허무주의자, 이 두 세대 간의 충돌과 대립은 첨예하다. 그 당시 러시아는 농노해방 같은 사회개혁 물결이 일자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 간에 심각한 갈등을 겪게 된다. 구세대는 신세대를 애송이, 어린 막무가내들이라고 무시했으며, 신세대는 구세대를 늙은 낭만주의자, 추억을 먹고 사는 꼴통이라고 비아냥댔다. 두 세대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너무나 달라 신구 세대 간의 화해는 기대할 수 없었다. 3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들 바자로프는 지루하다고 투덜거리며 친구 아르카디와 함께 집을 떠나 버린다. 두 청년이 탄 마차가 멀어지자 아버지는 짐짓 손수건을 흔들지만 마차가 보이지 않자 금세 풀이 죽어버린다. 집게손가락을 세우면서 '지루해서 우릴 버리고 간 거야. 이제 이 집게손가락처럼 나 혼자 남았어'라며 탄식한다. 바자로프의 어머니는 남편의 회색 머리에 기대며 중얼거린다. '자식은 날아다니는 매이지요. 자기가 원하면 날아왔다가 또 원하면 날아가 버려요.' 아들은 왜 부모의 심경을 모를까. 투르게네프는 이 소설에서 '인류는 끝없이 화해하면서 영원한 생명을 이어가야 한다'고 설파한다.

우리의 지난 역사에서 조선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만큼 시끄럽고 불편한 부자관계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뒤주 속에 갇혀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둔 정조가 겪은 부자관계의 연민과 갈등은 어떠했을까. 정조는 평생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렸을 것이다. 이렇듯 부자라는 가장 가까운 피를 나눈 사이에서 겪는 갈등과 충돌, 그리고 파국에 이르는 과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인류의 절반인 남자는 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아들이다. 그리고 그 아들 역시 또 아버지가 된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은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 세 아들의 아버지로서 이제 그 아들이 아버지가 되었으니 나는 아버지의 자리를 잃은 거나 마찬가지다.

오늘날 아버지에 대한 자화상을 어떻게 정립해야 할까. 세상의 모든 가치가 어렵고 힘들지만 아버지의 자리만큼 무겁고 고달프며 외로운 자리는 없을 것이다. 가장으로서 권위를 세우고 싶어도 세상에서 아버지가 설 자리는 너무나 좁다. 두 어깨가 자꾸만 아래로 처져 내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도 차마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아버지에 대한 기대가 큰 아들은 친구의 아버지와 비교하며 나는 왜 금수저가 아닌 흙수저로 태어났는지 못난 아버지를 원망한다. 이런 아버지의 뒷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그림이다. 아버지에게는 가을 아니면 겨울이라는 두 계절만 존재할 뿐, 따뜻한 봄날과 낭만의 계절 여름은 언감생심이다. 아버지의 일생을 할부인생으로 묘사한 작가 아서 밀러의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은 오늘날 아버지의 허망함과 무기력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어쩌다 듣게 된 허스키 보이스의 <아버지의 뒷모습>은 이 세상 모든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회한을 통절한 심정으로 노래하고 있다. '저녁 햇살이 스며들던 골목길/묵묵히 걸어가던 그 뒷모습/말없이 세상을 견디던 그 어깨/그 안에 사랑이 숨어 있었지/낡은 구두 닳은 손끝 흙 묻은 웃음 속에 담긴 세월/그때는 몰랐던 그 마음이/이제 내 가슴에 새겨져 있다/한마디 없이도 다 전하던 사랑/말 보다 깊었던 침묵 속에서 나는 배웠다/어른이 된다는 건 견디는 일이라는 것/아버지의 뒷모습이 내 마음에 남아/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힘이 되어 준다./아버지의 뒷모습이 세월 속에 흐르고/이제 내가 그 자리에 서서 그분의 길을 걷는다….' 가슴 저미는 통한의 사부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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