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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관·특사경 거쳐 로펌으로…"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
약사 조민주 전문위원은 제약회사, 식약처, 검찰 파견, 로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약사의 가능성을 넓혀왔습니다.
그는 의약품 허가 심사, 특별사법경찰관 활동, 의료용 마약류 수사 등 복잡한 의약학 지식을 바탕으로 규제 전문가로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조 위원은 약대생들에게 경험의 한계를 두지 말고 적극적으로 도전하여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라고 조언합니다.
약사 직능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전통적인 약국과 병원, 제약회사를 넘어 국가 규제 기관과 수사 현장, 나아가 대형 로펌까지 진출해 '의약학 스페셜리스트'로 활약하는 선배 약사가 있다.
약사공론 청년기자단 13기 김윤서·오동호·이승현·한성민 기자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서 17년간 의약품 허가심사와 정책 수립, 특별사법경찰관(이하 특사경) 업무를 거쳐 현재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에서 헬스케어 규제 전문가로 활동 중인 조민주 전문위원을 만났다. 제약회사·공직·검찰 파견·로펌을 잇는 이색 커리어 속에서 그는 "약사의 가능성은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공 조민주 전문위원.
제약회사에서 식약처까지… "의약품의 전 과정을 거시적으로 보고 싶었다"
조 위원의 커리어는 '경계를 두지 않는' 선택에서 출발했다. 졸업 직후 지역 약국의 고용 약사가 되는 대신, 그는 약사로서 진출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히기 위해 대학원(서울대 약물학 석사)에 진학했고, 이후 제약회사 임상시험 설계·관리 업무로 첫발을 뗐다.
그러나 "의약품이 개발돼 시판에 이르는 전 과정 중 임상 단계에만 관여한다"는 아쉬움이 발목을 잡았다. 의약품의 인허가 결정과 정책 수립까지 거시적인 시야로 업무를 수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식약처 문을 두드렸다. 그곳에서 17년. 그는 "공무원으로 정년을 맞이하겠다"고 생각할 만큼 일에 큰 보람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조 위원은 "훌륭한 동료와 존경하는 상사들과 함께, 우리 아이들의 미래와 국민을 위한 일이라는 사명감으로 근무했다"며 "서울과 오송을 오가는 장거리 출퇴근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이직을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시기 식약처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제약회사의 규제 애로사항을 자문해달라는 제안이 이어졌고, 2023년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으로 자리를 옮겼다.
심사관의 밤샘 검토, 그리고 특사경의 현장… "쥐 보약 사건"
식약처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업무로 조 위원은 생물학적 제제 심사를 꼽았다. 해외에서 널리 사용되는 의약품일지라도 국내 환자에게 예기치 않은 이상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 탓에, 심사관의 어깨는 늘 무겁다. 그는 "검토 중인 신약이 혹시 '탈리도마이드 사건'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지는 않을지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며 "수십 권의 바인더로 제출된 자료를 밤낮으로 검토한 끝에 허가를 내렸고, 그 의약품이 지금까지 임상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쓰이고 있는 모습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가 허가한 품목은 혈우병 치료제였다.
눈길을 끄는 이력은 따로 있다. 식약처 위해사범중앙조사단 근무 당시 부여받은 '특별사법경찰관' 직무다. 수갑과 포승줄, 경찰봉까지 갖춘 약사 수사관은 압수수색과 포렌식을 직접 수행하며 식·의약·화장품·의료기기·마약 사건의 실체를 파헤쳤다.
대표 일화는 이른바 "쥐 보약 사건"이다. 한 업체가 단가를 낮추기 위해 독극물을 코팅하지 않은 쌀을 살서제로 제조·판매한 사건으로, 결과적으로 쥐를 죽이기는커녕 배만 불린 꼴이 됐다. 조 위원은 압수수색을 통해 관련 증거를 확보했고, 해당 업체 대표는 구속 송치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당시 수사팀 내부에서는 '쥐를 살찌운 보약 사건'이라고 부르곤 했다"며 웃었다.
조민주 전문위원 프로필
·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전문위원 (2023~현재)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마약범죄특별수사팀 파견 (2023)
· 식품의약품안전처 근무 (2006~2023) — 의약품정책과·위해사범중앙조사단·생물제제과·서울지방청 등
· CJ 제약사업부 (2005~2006)
· 서울대학교 대학원 약물학 석사 (2006) / 동덕여자대학교 약학과 (2004)
· 자격: 약사(2004), 행정사(2016)
의료용 마약류 수사 최전선… "영수증 한 장에서 스모킹 건을 찾다"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2023년 조 위원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마약범죄특별수사팀에 파견됐다. 과거에는 영화 <극한직업>에서 묘사되듯 비의료용 마약의 밀수·밀거래 수사가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롤스로이스 마약 사건과 연예인들의 프로포폴 오남용 사건 등 의료용 마약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그는 "검찰은 의료용 마약류 관련 데이터를 직접 활용할 권한이 제한돼 있고, 제보가 없으면 문제 병·의원을 특정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며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NIMS) 자료를 분석해 이상 징후가 있는 의료기관을 선별하는 데 약사의 전문성이 쓰였다"고 설명했다.
가장 까다로운 지점은 '의학적 판단에 따른 처방이었다'는 의사의 주장이다. 조 위원은 "약사로서 통상적이지 않은 투약 빈도나 20~30대 젊은 층에 대한 마약성 진통제 편중 처방 등 이례적인 부분을 짚어내고, 비마약성 진통제부터 단계적으로 처방을 확대했는지, 통증 평가를 위한 문진은 이뤄졌는지를 진료기록과 대조해 허점을 찾아냈다"고 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사소한 메모와 영수증도 결정적 단서가 됐다. 그는 "영수증 한쪽에 적힌 이름에서 대리 처방의 '스모킹 건'을 찾아 범죄를 입증한 경험이 있다"며 "기준을 벗어난 투여 기간과 용량, 해당 환자에게 마약류가 실제로 필요한 질환인지, 어떤 검사와 문진으로 처방이 결정됐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게 된다. 판단 과정과 근거가 진료기록에 충분히 남아 있지 않다면, 결과적으로 마약류 오남용을 용이하게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법률 시장의 새 기둥… "의약학 문서 해석력, 약사가 최고 전문가"
현재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조 위원은 식품·의약품·화장품·의료기기 회사에 대한 정부 현장조사와 행정처분, 형사사건 대응, 컴플라이언스 진단, 인허가·자료보호·재평가 자문 등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글로벌 바이오·헬스케어 시장의 급격한 팽창에 따라 규제 리스크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조 위원은 "새롭게 등장하는 벤처기업이나 혁신적인 헬스케어 비즈니스 모델은 필연적으로 기존 규제와 마찰을 빚게 된다"며 "이 분야에서는 약사로서의 전문성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학부에서 다진 약물학·약제학·유기·무기화학·물리약학 지식은 인허가·임상시험 자료 검토뿐 아니라, 소송 과정에서 연구보고서와 시험방법을 정확히 해석하고 핵심 쟁점을 짚어내는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방대한 의약학 데이터와 문서를 정확히 해석하고 그 의미를 짚어내는 데에는 약사가 단연 최고의 전문가"라며 "환자의 기망으로 마약류 과다 처방 오명을 쓴 의사나, 취급 거부 문제로 조사를 받게 된 일선 약사들을 위해 의약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논리를 구성하고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헬스케어 규제 전문가의 핵심 역할"이라고 말했다. 약물 이상반응을 면밀히 분석하고 관련 논문과 데이터를 검토해 발현 가능성을 입증함으로써 소송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낸 사례도 있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꿈꾸는 예비 약사에게… "규제 허들부터 꼼꼼히 챙겨라"
최근 애플리케이션 개발이나 자체 웰니스 브랜드 기획 등 스타트업 창업을 꿈꾸는 약대생이 늘고 있다. 조 위원은 이들을 향해 "혁신적인 아이디어 이면에 숨겨진 규제의 벽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며 뼈 있는 조언을 건넸다.
그는 "학부 과정에서는 약사법 등 관련 법령을 심도 있게 다루기 어려워, 실무에 들어와서야 놓친 부분을 인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실제로 졸업을 앞둔 학생이 의약품 온라인 판매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플랫폼이나 앱을 런칭할 때 해당 서비스 구조가 자칫 '판매 알선' 등 현행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지 철저한 점검이 필요하다"며 "소규모 영세 기업이라도 새로운 성분을 배합해 자체 제품을 기획할 때는 제조시설 관리 규정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유행하는 SNS·유튜브 마케팅에 대해서도 경계의 목소리를 높였다. 조 위원은 "약사가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전문가의 위치를 남용해 일반 식품을 건강기능식품이나 의약품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광고 행위는 일정 기간 내 반복적으로 적발될 경우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을 만큼 처벌 수위가 높다"며 "식품·의약품·화장품·의료기기 관련 법령 위반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높은 수준의 책임이 따른다"고 경고했다.
그는 "새로운 제품 개발이나 제조, 애플리케이션 기획 등 사업을 구상하는 단계에서부터 법적 리스크를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며 "아이디어가 있다면 관련 관청에 사전 질의를 해보거나, 전문가의 법률 자문을 받는 것이 의도치 않은 범법자가 되는 것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당부했다.
약대생 후배들에게… "경험에 한계를 두지 말고, 먼저 문을 두드려라"
인터뷰 내내 조 위원이 가장 힘주어 말한 것은 '경험의 확장'이었다. 약국·병원·제약회사 등 정형화된 틀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라는 의미다.
그는 "모든 경험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으며, 실패조차 더 큰 배움이 된다"며 "가장 나쁜 것은 주저하거나 두려워서 시도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방학 기간을 잘 활용해 여행, 아르바이트, 기관 실습 등 다양한 활동을 경험해보길 바란다"며 "저 역시 학생 시절 식약처가 궁금해 직접 연락을 드렸고, 이를 계기로 실습의 기회를 얻은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조 위원은 "관심 있는 분야가 있다면 기관, 정부, 기업, 대학원 등 어디든 주저하지 말고 직접 문을 두드려보라"며 "많은 직업이 AI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도, 한 분야에서 꾸준히 성실하게 노력한다면 쉽게 대체되지 않는 전문성을 갖출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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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영향력을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조 위원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저의 미래를 특정한 직무나 분야로 한정하기보다는, 입법기관·정부·제약회사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며 우리 사회와 국민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며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작은 보탬이 되는 것, 그것이 저의 목표이자 직업관"이라고 말했다.
제약회사에서 식약처로, 그리고 수사 현장을 거쳐 대형 로펌으로. 한계를 두지 않고 약사 직능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온 그의 발자취가 진로를 고민하는 후배 약대생들에게 훌륭한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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