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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실패한 혁명은 어디로 가는가…찬와이가 '향'으로 쓴 홍콩

궁금했다. 홍콩을 떠난 작가는 왜 홍콩을 가장 오래 쓰고 있을까.

'기억을 지키다'·'기억을 태우다' 한국어판 출간 간담회

우산혁명 이후 대만 이주한 홍콩 작가

"실패했지만 사라지지 않는 감정 남아"

궁금했다. 홍콩을 떠난 작가는 왜 홍콩을 가장 오래 쓰고 있을까.

홍콩 작가 찬와이가 23일 서울 중구 남대문 일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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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와이는 홍콩을 떠난 뒤 홍콩을 더 오래 쓰게 된 작가다. 2018년 대만으로 거주지를 옮겼고, 2020년 1월 이후에는 홍콩에 돌아가지 못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코로나, 이후에는 홍콩 국가보안법 때문이었다. 그러나 23일 서울 중구 기자간담회에서 그가 다시 꺼낸 이름도 홍콩이었다. 한국어판으로 나온 두 장편 '기억을 지키다'와 '기억을 태우다'가 향하는 곳도 그 도시다.

민음사가 펴낸 '기억을 지키다'와 '기억을 태우다'는 한 가족의 연대기다. 하지만 가족소설이라고만 부르면 헐겁다. 1974년부터 1997년 반환 이후까지, 홍콩이라는 도시가 한 집안의 이름과 사업과 상처 속으로 밀려드는 이야기다. 찬와이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기보다 '향'이라고 썼다. 두 책의 원제는 각각 '습향기(拾香紀)'와 '분향기(焚香紀)'. 향을 줍고, 향을 태운다는 뜻이다.

한국어판은 '향'을 '기억'으로 옮겼다. 무리한 번역은 아니다. 다만 찬와이가 말하는 기억은 기록이나 저장에 가깝지 않았다. 그는 "기억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내가 경험한 것, 그 안에 담긴 감정을 함께 떠올리는 일"이라고 했다. 이어 "기억 안에는 늘 다른 사람이 있다"고 했다. 이 말이 그의 홍콩을 설명한다. 도시는 제도와 연표로 남지 않는다. 누군가와 같이 먹고살았던 시간, 그때 불렀던 이름, 다시 맡을 수 없는 냄새로 남는다.

'기억을 지키다'는 1998년 홍콩에서 발표된 찬와이의 첫 장편이다. 광저우에서 홍콩으로 건너온 아버지 롄청과 어머니 쑹윈, 열 명의 자식이 중심이다. 자식들의 이름에는 아버지가 일군 가게와 사업의 흔적이 들어 있다. 쓰하이 스토어, 우메이 패션, 류허 잡화점, 치시 슈퍼, 바바오 의류 공장, 주제 운송, 스샹 레스토랑. 이름이 곧 족보이고 장부다. 가족의 이름을 읽다 보면 홍콩이 무엇으로 팽창했고, 무엇을 팔고, 무엇을 믿고 살았는지가 보인다.

2015년 2월 1일, 수천 명의 시위대가 홍콩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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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태우다'는 그 장부가 멈춘 뒤의 이야기다. 1997년 반환 이후, 홍콩은 더 이상 같은 도시가 아니다. 일자리를 잃고 방황하는 사람, 재개발로 집을 잃는 사람, 가족 안에서도 서로 다른 홍콩을 살게 된 사람들이 나온다. 전작이 사라지는 향을 줍는 소설이었다면, 후속작은 향을 태운 뒤 남은 재를 보는 소설이다. 남은 것이 고작 잿더미라 해도, 그것 역시 지나온 길이라는 태도다.

찬와이는 홍콩 영화의 황금기를 통과한 작가다. 1960년 홍콩에서 태어나 '프로젝트 A'와 '첨밀밀' 각본 기획에 참여했고, '퍼플 스톰', '8인: 최후의 결사단' 등의 각본을 썼다. 이 이력은 단순 약력이 아니다. 그의 소설이 장면으로 움직이는 이유다. 뱅크런, 스타페리 요금 인상 반대 시위, 1967년 홍콩 폭동, 1997년 반환은 해설로 들어오지 않는다. 식탁, 가게, 가족사진, 몸의 흉터를 통해 들어온다. 시대가 인물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 시대의 압력을 견딘다.

간담회에서 그의 말이 가장 차가워진 순간은 우산혁명 이야기였다. 2014년 홍콩 시민들은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왔다. 찬와이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이날 "우산혁명은 실패한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무언가를 얻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많은 사람이 일상으로 돌아갔고, 좌절도 컸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실패를 패배로만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감정 속에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가 남았다." 이 한 문장 때문에 두 권의 소설은 단순한 과거사가 되지 않는다. 정치적 성과로 남지 못한 사건도 사람 안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계속된다. 실패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말하기 어려운 감정으로 남는다. 찬와이는 그 감정을 가족사 안으로 밀어 넣었다.

홍콩 작가 찬와이가 23일 서울 중구 남대문 일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기자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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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속작을 쓰게 만든 것도 거창한 정치 장면이 아니었다. 우산혁명 현장에서 그는 한 노인을 봤다. 우산을 지팡이처럼 짚고 걷는 노인이었다. 찬와이는 그 노인을 보며 '기억을 지키다'의 아버지 롄청을 떠올렸다고 했다. "롄청이 오늘의 홍콩에 있었다면 틀림없이 거리로 나갔을 것"이라고 했다. 이미 써낸 인물이 현재의 거리로 걸어 들어온 순간이었다. '기억을 태우다'는 그래서 속편이라기보다 소환에 가깝다. 반환 전 홍콩을 살았던 아버지를 다시 불러 우산혁명 이후 홍콩 앞에 세운다.

이날 한 기자는 AI 시대에도 기억의 힘이 유효한지 물었다. 찬와이는 AI를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인간의 기억과 같을 수는 없다고 했다. "AI는 유용한 것을 기억한다. 인간의 기억은 다르다. 인간의 기억에는 감정이 있다." 정확한 저장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이 있다. 왜 잊지 못하는가. 누구와 함께 있었는가. 무엇을 잃었다고 느끼는가. 찬와이가 말한 기억은 거기서 시작한다.

그러니 그의 홍콩은 관광 엽서의 스카이라인이 아니다. 국제뉴스의 표제어도 아니다. 가게를 닫은 사람, 집을 빼앗긴 사람, 시위에 나갔다 돌아온 사람,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의 홍콩이다. 홍콩을 떠난 작가가 홍콩을 계속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떠났기 때문에 홍콩이 멀어진 것이 아니라, 떠난 뒤에야 무엇이 사라졌는지 더 선명해졌다.

찬와이는 독자에게 바라는 것을 묻자 "이 소설을 읽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홍콩을 몰랐던 독자가 홍콩을 알게 되길 바란다는 뜻만은 아니었다. 한 도시가 어떻게 가족의 이름이 되고, 실패한 혁명이 어떻게 사람의 감정으로 남는지 보게 되기를 바란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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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지키다'는 배문주 번역, 이윤희 삽화로 244쪽, '기억을 태우다'는 384쪽이다. 두 책 모두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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