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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실거주 규제에 전월세 16% 증발…‘시장 방파제’ 임대사업도 막혀

정부가 주택 매매 시장 안정과 투기 억제를 명분으로 실거주 중심 정책을 고수하면서 서울 임대차 시장이 유례없는 공급 절벽, 임대료 폭등과 마주했다.

정부가 주택 매매 시장 안정과 투기 억제를 명분으로 실거주 중심 정책을 고수하면서 서울 임대차 시장이 유례없는 공급 절벽, 임대료 폭등과 마주했다. 서울 신축 아파트 입주 물량이 지난해를 기점으로 빠르게 줄어드는 가운데 집주인의 실거주 의무화와 다주택자·임대사업자 규제까지 겹치면서 시장에 흘러나와야 할 전월세 매물이 잠기고 있는 것이다. 세입자들 역시 자칫 전셋집을 구할 수 없겠다는 불안에 기존 집에 주저앉는 ‘계약 갱신’을 선택하고 있어 임대차 물량 위축이 가속화되는 모습이다. 특히 전세대출을 집값 상승의 주요 요인으로 간주하고 규제를 강화하면서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하고 있지만 임대차 시장의 불안이 심화하는 상황에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9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8월 체결된 서울 아파트 전세계약 중 갱신 계약의 비중은 50.8%까지 높아져 불과 3년 전인 2023년(27.2%) 대비 23.6%포인트 급증했다. 올해 전세계약을 체결한 세입자 둘 중 한 명이 새로 전셋집을 구하거나 다른 집으로 옮겨가는 대신 기존 집에 눌러앉기로 선택한 셈이다. 8월까지 누적된 서울 아파트 전세계약의 총량은 전년 동기 대비 25.7% 감소했는데 신규 계약 건수가 38% 급감해 감소세를 이끌었다.

월세 시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올해 1~8월 서울 아파트 월세계약 가운데 갱신 비중은 39.7%로 지난해 31.8%보다 7.9%포인트 상승했다. 전체 월세 거래는 1년 전보다 소폭 줄었지만 갱신 계약은 오히려 22.5% 늘어 전세보다 월세에서 재계약 증가세가 더 뚜렷했다.

갱신 비중이 크게 높아졌지만 전월세가 상승을 5%로 제한하는 계약갱신요구권 사용 비중은 오히려 낮아졌다는 점이 특히 눈길을 끈다. 전세 갱신계약 중 갱신요구권 사용 비중은 지난해 56.7%에서 올해 53.3%로, 월세는 37.2%에서 30.3%로 떨어졌다. 현장에서는 당장 계약갱신요구권을 쓰기보다 임대인과 합의해 재계약하고 갱신권은 추후에 행사할 수 있도록 남겨두려는 임차인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세입자들이 기존 집에 눌러앉으면서 가뜩이나 부족했던 임대차 매물은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2만 3832건에서 1만 9853건으로 16.7% 줄었고 월세 매물 역시 1만 9480건에서 1만 6406건으로 15.3% 급감했다. 전세 기피가 월세 증가로 이어지는 ‘풍선효과’도 없이 전월세 매물이 함께 증발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저렴한 전월세 매물이 밀집한 서울 동북권과 서남권의 감소세가 가팔랐다. 노원·도봉·동대문구 등이 위치한 동북권의 전세 매물은 1년 새 4328건에서 2459건으로 1869건(43.2%), 구로·금천·관악구 등이 자리한 서남권에서 991건(33.3%) 증발했다. 서초구 디에이치방배(3064가구), 은평구 힐스테이트 메디알레(2451가구) 등 대단지가 올해 입주한 서울 동남권과 서북권 정도가 매물을 유지하거나 소폭 늘어났다.

매물 감소세가 연중 내내 이어지자 전세가 역시 2022년 고점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향해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위 전세 가격은 올해 8월 5억 6000만 원을 기록해 1년 만에 12.4% 뛴 것은 물론 통계 집계 이래 최고가였던 2022년 1월의 중위가와 같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전문가들은 내년은 물론 내후년 입주 물량이 올해보다 약 3400가구, 1만 가구씩 줄어드는 만큼 정책 초점을 ‘임대차 물량 확대’에 맞춰야 할 때라고 조언하고 있다. 신규 아파트와 연립·다세대 주택 등 공급 확대와 함께 단기적으로 전월세 시장 안정 효과를 낼 수 있는 규제 완화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집주인에게 실입주를 강제하는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만 완화해도 매매용으로 묶여 있던 매물이 전월세 시장으로 흘러나와 당장 숨통이 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정부가 공공임대 확대를 약속하고 있지만 도심 청년과 1인 가구의 임대 수요를 모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며 “다주택자에 혜택을 줄 수 없다는 프레임에 갇혀 민간을 배제하기보다는 건전한 민간임대사업자를 체계적으로 육성해 양질의 장기 월세를 공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전월세 시장의 방파제 역할을 해왔던 기존 등록임대사업자 재고가 유지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3만 7000가구에 이르는 서울의 등록임대아파트가 2028년까지 순차적으로 사라지면 시장 불안이 극대화될 수 있으니 혜택을 일시적으로라도 되살려 기존 재고가 시장에 머물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보연 세종대 부동산AI융합학과 교수는 “서울 민간 재개발·재건축은 착공까지 평균 14년 6개월이 걸리고 공공택지도 최소 5~6년이 소요돼 장기 공급 대책은 당장의 전월세난에 즉효가 없다”며 “등록임대아파트의 매각을 유도해 매매 물량을 확대하겠다는 정책 취지도 이해하지만 지금은 임대주택 재고 유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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