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부터 이건희까지 60년 파트너십 DNA
HBM, AMD·엔비디아 동시에 품어 'AI 동맹'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삼성전자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가 18일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캠퍼스를 직접 찾았다.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부회장)과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우선 공급을 골자로 한 업무협약(MOU)에 서명하는 장면은 단순한 부품 거래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다. 삼성 특유의 '실리 동맹' 문법이 AI 시대에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삼성의 파트너십 역사는 생존의 역사였다. 이병철 창업회장은 1969년 삼성전자 설립과 함께 일본 산요전기와 합작해 삼성산요전기를, 이듬해에는 일본전기와 합작해 삼성NEC를 잇달아 세웠다. 독자 기술도, 자본도 부족했던 후발주자가 선택한 생존법이었다.
이건희 회장 시대에 이 문법은 한 단계 진화했다. 경쟁사도 동맹의 대상이 됐다. 2004년 삼성전자는 당시 디스플레이 세계 1위였던 소니와 손잡고 합작법인 S-LCD를 세워 LCD 패널을 공동 생산했다. 또 인텔과 HP 등과의 반도체 협력을 통해 글로벌 IT 기업들의 시스템에 삼성 D램(RAM(을 깊숙이 심었다. 이해관계가 맞는다면 누구와도 손잡는다는 것, 이것이 이른바 삼성의 '실리동맹'의 핵심이다.
그리고 2026년 3월, 그 실리동맹의 최신판이 평택에서 다시 펼쳐졌다. 이번 AMD와의 협력은 삼성전자의 위치에서 바라봐야 한다. 현재 HBM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에 밀린 '도전자'이기 때문이다. 외신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점유율은 약 55~57% 안팎으로, 삼성전자의 약 25~27% 수준의 두 배에 이른다. SK하이닉스의 HBM 생산량 대부분이 엔비디아로 흡수된다. 즉 삼성의 돌파구는 엔비디아 밖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결론은 AMD가 그 해답이 됐다. AMD는 엔비디아의 AI 가속기 시장 독주에 맞서 자체 생태계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초 엔비디아와 AMD 양사에 HBM4 첫 상업 출하를 시작했고, 주요 고객사 적격성 평가(퀄리피케이션)를 통과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 MOU를 통해 삼성은 AMD 차세대 AI 가속기 '인스팅트(Instinct) MI455X' GPU에 들어갈 HBM4의 우선(primary) 공급사로 공식 지정됐다.
협력의 범위도 이례적으로 넓다. HBM4 공급에 그치지 않고 6세대 AMD 에픽(EPYC) 서버용 CPU와 AI 데이터센터 랙 플랫폼용 고성능 DDR5 메모리 솔루션까지 아우른다. 나아가 AMD 차세대 제품의 파운드리 위탁 생산 방안도 논의 테이블에 올렸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GTC 2026에서 삼성전자와의 파운드리 파트너십을 전격 발표하고 삼성 HBM4를 공개 호평한 때에 리사 수는 한국에 있었다. 같은 주에 엔비디아와 AMD가 나란히 삼성을 선택한 것은, 삼성의 실리 동맹이 AI 반도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방증이다.
호암이 산요전기 이우에 도시오 회장과 합작 계약서에 서명하던 1969년, 누구도 삼성전자가 반세기 뒤 세계 메모리 시장의 최강자가 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2026년 평택에서 가진 리사 수와의 서명은 60년을 이어온 삼성의 '실리 동맹' 연장이자 퀀텀 점프를 위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양성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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