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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사난장] ‘관계적 시민’과 독립 시민언론

AI와 가짜뉴스가 결합한 ‘포스트 트루스(post-truth)’ 환경이 더해진 것도 지역 공론장의 쇠락을 가져온 주요... AI는 뉴스를 1초 만에 요약하고 데이터를 쏟아내지만, 거기에는 지역의 맥락과 아픔을 담아내지 못한다. AI는...

[시사난장] ‘관계적 시민’과 독립 시민언론

수동적 뉴스 소비 넘어 관련 의제에 적극 참여

지역 삶 기록하는 주체, 로컬리즘 지켜낼 보루

조송현 웹진 인저리타임 대표

지난주, 부산 서면의 한 카페에서 김용진 전 뉴스타파 대표를 만났다. 10년 넘게 비영리 탐사보도의 길을 개척해온 그는 지난해 대표직을 내려놓고 일선 기자로 돌아와, 독립언론 네트워크 일을 맡고 있다. 우리는 2000년대 초 언론 산별노조 운동을 함께했던 동지다. 그는 대화 중 안타까움이 묻은 어투로 말했다. “시민에 의한 독립 시민언론이 없는 도시라는 건 부산의 자존심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신문밥을 30년 넘게 먹었고 지금도 1인 미디어를 꾸려가는 필자에게 그 말은 서늘한 일침으로 다가왔다.

며칠 뒤 취재차 들른 ‘2030 부산엑스포 백서 토론회’에서는 지역 언론에 대한 안타까움이 분출됐다. 한 패널은 “유치 과정의 장밋빛 환상만 받아 썼지 냉철하게 감시한 언론이 하나라도 있었더냐”고 언론 책임론을 제기했다. 퐁피두 미술관 분관 유치를 반대하는 이들 역시 “2022년부터 논의가 시작됐는데, 2024년 9월 시민사회 반대대책위가 나서기 전까지 비판 기사 한 줄 구경하기 힘들었다”고 지적했다.

부산 공론장이 왜 이토록 시민의 기대에 비켜나 있을까. 무엇보다 지역 언론의 구조적 취약성에 그 원인이 있다. 종이신문 열독률 하락과 광고 매출 급감은 지역 일간지를 재정적으로 지방정부와 대형 광고의 영향력에서 자유롭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2030 부산엑스포 백서 토론회’에서는 “1217억 원이 투입됐지만, 정작 유치·홍보비에서는 해외 설득보다 국내 언론 홍보에 더 많은 돈을 썼다”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 검증에서도 부산시가 2023년 엑스포 홍보 예산 330억 원 가운데, 국내 언론·광고에 약 70억 원을 쓰고 해외 홍보에는 그보다 적은 40억 원대 예산을 배정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 자리에서 “실패 원인을 파고든 기사보다 장밋빛 홍보 기사와 광고성 보도가 넘쳐났다”는 탄식이 나왔다. 엑스포 유치 실패의 책임을 추궁하고 퐁피두 유치의 타당성을 냉정하게 따졌어야 할 시기에, 지역 언론의 칼날이 무뎌졌던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AI와 가짜뉴스가 결합한 ‘포스트 트루스(post-truth)’ 환경이 더해진 것도 지역 공론장의 쇠락을 가져온 주요 원인이 되었다. 근래 시민은 신문보다 포털·유튜브가 먼저고, 알고리즘이 골라주는 뉴스와 영상에 둘러싸여 있다. 뉴스 수용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누구의 목소리가 반복해서 들리느냐’에 따라 정치적 현실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과거 군사정권이 국가기구로 지배 이념을 주입했다면, 지금은 알고리즘이 지역의 삶과 로컬리티를 전할 지역 언론의 자리를 잠식하고 있다.

AI는 뉴스를 1초 만에 요약하고 데이터를 쏟아내지만, 거기에는 지역의 맥락과 아픔을 담아내지 못한다. AI는 낙동강 하구의 철새 개체 수는 셀 수 있어도, 그 서식지가 파괴될 때 부산 시민이 느끼는 상실감의 깊이는 헤아리지 못한다. 그 사이 알고리즘은 가짜뉴스와 선정적 콘텐츠를 밀어 올리며 시민을 확증편향의 동굴 속에 가둔다. AI가 이런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은, 정작 지역 언론이 ‘부산의 관점’과 부산의 로컬리티를 충분히 다뤄내지 못한 탓이라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뉴스타파가 사주나 주주가 아닌 ‘시민의 후원’으로 일어섰듯, 부산에서도 관계적 시민에 의한 독립 시민언론을 향한 새로운 움직임이 일고 있다. 백화점식 보도 대신 관계적 시민들이 직접 의제를 발굴하고 공론화하는 ‘시민생활정치플랫폼’ 기능을 수행하며, 시민의 후원으로 권력과 광고로부터 독립을 유지하는 강소 독립 시민언론 모델이다.

필자는 ‘관계적 시민(Relational Citizen)’이라는 개념에 주목한다. 단순히 뉴스를 소비하는 수동적 존재를 넘어, 자신의 삶과 직결된 의제에 직접 참여하고 연대하며 후원하는 능동적 주체들이다. 이들은 파편화된 개인(Individual)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와 ‘관계’를 맺으며 공공의 선을 추구한다. 낙동강 하구 공청회장에 찾아가 목소리를 내고, 아이들 교육 토론회에 참여하고, 대안언론의 후원 버튼을 눌러 재정적 책임까지 나누는 이들이다. 엑스포 백서 토론회에서 시민·학자들이 “실패를 은폐한 백서를 시민은 인정할 수 없다”며 감사원 감사·국정조사와 함께 예산 사용·유치 과정·백서 한계를 시민 시각에서 다시 쓰는 ‘시민백서’ 발간을 선언한 것도, 관계적 시민이 공론장에 직접 개입하는 한 장면이었다.

지역 언론은 로컬리즘을 키우고 지켜내는 보루여야 한다. 지역의 삶을 기록하고 지방 권력을 견제하며, 공동체의 품격을 지키는 일이 소명이다. 퐁피두라는 화려한 외산 브랜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부산의 이야기를 스스로 써 내려가는 주체성이다. 남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출발하는 이 태도가 바로 로컬리즘이다. 그 이야기는 언론만이 아니라 관계적 시민이 함께 써 내려갈 때 힘을 갖는다. 관계적 시민에 의한 독립 시민언론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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