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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시민칼럼] 선택 과잉 시대

선택 장애, 어쩌면 책임지기 싫은 병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소하게는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한참을 고민한다. 메뉴판의 목록을 넘기며 어렵게 주문을 마친다. 그런데 음식이 나오고 나면 이상하게도 옆 사람이 시킨 메뉴가 더 맛있어 보인다.

[시민칼럼] 선택 과잉 시대

선택 장애, 어쩌면 책임지기 싫은 병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소하게는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한참을 고민한다. 메뉴판의 목록을 넘기며 어렵게 주문을 마친다. 그런데 음식이 나오고 나면 이상하게도 옆 사람이 시킨 메뉴가 더 맛있어 보인다. 예전 같으면 이런 모습은 우유부단한 성격 탓으로 돌렸을 것이다. 결단력이 부족하거나 소심한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사정은 다르다. 시대가 만들어낸 사회적 증상에 가깝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선택지를 가진 시대를 살고 있다.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어떤 학교를 갈지, 어떤 직업을 가질지, 결혼할지 말지, 아이를 낳을지 말지, 집을 살지 전세로 살지까지 끝없이 결정해야 한다. 심지어 어떤 취미를 가질지, 어떤 가치관을 따를지, 어떤 삶을 성공이라고 부를지조차 각자의 몫이 되었다.

선택의 자유가 늘어났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과거에는 태어난 집안과 지역, 성별이 인생의 방향을 상당 부분 결정했다. 농촌에서 태어나면 농사를 짓고 부모의 직업을 이어받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누구나 다양한 길을 꿈꿀 수 있다.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가능성이 열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유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있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그만큼 책임도 따른다. 과거에는 실패의 원인을 사회나 환경에서 찾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지금도 사회 구조의 영향은 크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는 실패의 원인을 개인의 선택에서 찾는 경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취업에 실패하면 전공 선택이 문제라고 한다. 건강을 잃으면 자기 관리가 부족한 것이고, 노후가 불안하면 준비를 소홀히 했다고 말한다. 사회는 끊임없이 선택하라고 요구하면서도 결과에 대한 책임은 철저히 개인으로 돌린다. 그 결과 사람들은 선택 자체를 두려워하게 된다. 현대인의 선택 장애는 단순한 우유부단함이 아니다. 잘못 선택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크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후회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는 한 번의 선택이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대학 입시, 취업, 결혼, 부동산, 투자 같은 문제는 물론이고 사소한 소비 결정 조차 실패가 허용되지 않는 시험처럼 여겨진다.

미국의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는 선택지가 지나치게 많으면 오히려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되는 현상을 ‘선택의 역설’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선택지가 많아지면 만족도도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선택지가 늘어나면 결정은 어려워지고 만족감은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 선택하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벽한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선택에는 얻는 것과 잃는 것이 공존한다. 안정적인 직장을 선택하면 자유를 일부 포기해야 하고,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면 안정성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결혼을 하면 혼자만의 시간이 줄고, 결혼하지 않으면 또 다른 형태의 외로움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단순한 사실을 잊고 산다는 점이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는 경우가 훨씬 많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선택은 자유가 아니라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선택의 기쁨보다 그에 따른 부담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제는 사람들은 결혼도, 출산도, 투자도 선택하기보다 미루기를 선택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선택을 미루는 것 역시 하나의 선택이 된다. 이처럼 결정하지 않음으로써 잃어버리는 기회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완벽한 결정을 강요받는 시선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 필요하다. 잘못된 길이라면 돌아설 수 있고, 실패했다면 다시 시작할 수도 있는 것이다. 끝내 돌아보게 되는 지점은 실수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실수 이후에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심리적 여유다. 선택 과잉 시대의 미덕은 최고의 선택이 아니다. 잘못 선택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다. 실패를 낙오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다. 책임지기 싫은 병의 처방전은 의외로 단순하지 않을까. 완벽한 선택을 하려 애쓰기보다 선택 이후를 씩씩하게 살아내는 용기,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인지도 모른다. 선택의 자유가 늘어난 시대일수록 실패를 받아들이는 용기가 더 필요하다. 우리는 선택할 자유를 얻었지만 실패할 자유는 아직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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