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김부장>의 주인공은 유일한 가족인 딸을 구하기 위해 숨겨온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인물이다. 조선(북한)의 남파공작원이었지만 작전에 실패한 이후 북파공작원이 되어 남북을 오갔던 그는 어떤 상대도 제압하는 가공할 힘의 소유자이다. 남북의 비밀병기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 판타지임이 분명하지만, 한국 액션 드라마 주인공의 압도적인 역량을 정당화하기에 더없이 손쉬운 선택이기도 하다. 분단국 한국에서 ‘분단’과 ‘조선’은 모순과 역설을 잠재우는 만능키인 까닭이다.
또 다른 예시도 있다. 올여름 개봉한 <호프>는 서사적 인과성을 두고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는데, 마을 노인들이 스스로 무장하여 괴물과 싸우러 나서는 장면이 어색하다는 평이 있었다. 괴물이 나타나자, 허둥대는 주인공 범석과 달리 노인들은 M16으로 무장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어촌 노인들이 이토록 무기를 잘 다루는 것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영화가 내놓은 근거는 분단과 조선이었다. 노인들을 한국전쟁에 참전한 세대로 암시하는 묘사, 괴물이 출몰한 마을이 비무장지대(DMZ) 근처라는 설정 등이 그 예다. 평범한 주민들이 괴물과 싸운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조선이라는 위협에 상시 노출되어 무기에 익숙하다는 논리를 제시한 것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는 “기계장치로부터 나온 신”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기중기에 매달린 신이 무대로 내려와 갈등을 해결하고 서사를 끝맺던 연출 장치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이 말은 인물들이 풀지 못한 문제를 외부의 절대적 힘이 개입해 정리해버리는 서사, 즉 개연성과 필연성이 부족한 결말을 비판하는 개념으로 쓰였다.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 비극에서 ‘신’으로 대표되는 절대적 힘이 인간 세계의 갈등을 봉합하였다면, 한국에서는 분단과 조선이 바로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중년 남성이 수많은 악당을 물리치는 것도, 힘없는 노인들이 괴물에 맞서는 것도 분단이 개입하면 별다른 설명 없이도 그럴듯한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이러한 경향성은 비단 문화 재현이나 서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국가 안보의 영역에서도 조선이 등장하는 순간, 따져야 할 여러 논점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당신의 행동이 조선에 이롭지는 않은가?”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되었다가 우크라이나군에 포로로 잡힌 조선군 두 명이 ‘마침내’ 한국으로 송환되자, 논쟁은 이 결정이 혹여나 조선에 이로운 것은 아닌지를 심문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조선군 파병의 국제정치적 맥락, 포로를 둘러싼 인권 문제, 포로의 ‘자유의지’ 이면의 국가 개입, 남겨진 가족의 안전, 한국을 끌어들이려는 전쟁 당사국의 셈법, 거기에 마치 ‘구원자’인 양 그들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댄 권력과 언론의 폭력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복잡한 문제는 사라지고 정부가 이들의 입국을 비공개로 진행한 것이 조선의 눈치를 본 것이 아니냐는 추궁만 남는다.
최근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 사건도 마찬가지다. 그 이면에는 조선의 두 국가론과 국경 요새화 작업의 연관 여부, 군사적 충돌을 관리하는 채널의 부재, 지뢰라는 비인도적인 재래식 무기의 참혹함, 군 내부의 지뢰 대응 매뉴얼 준수 여부, 좀 더 근본적으로는 70년 넘게 지속된 정전체제의 폭력성, 유엔사 관할의 영토와 주권 제약 등 해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가 실타래처럼 엉켜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둘러싼 논의는 상대를 조선에 약한 존재로 몰아세우는 공격과, 자신이 얼마나 강경한지 증명하려는 방어로 변질되었다. 조선만 등장하면 온통 흑백이 되는 상황에서 안보에 대한 논의는 한 치의 진전도 이루지 못한다.
한국 사회가 조선을 그토록 적대해온 결과, 역설적으로 조선은 한국 정치의 모든 판단을 가늠하는 절대적 기준, 곧 ‘기계장치로부터 나온 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이라도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봉합된 현실의 모순을 마주해야 하며, 그 시작은 조선을 모든 담론과 입장을 무력화하는 존재가 아닌 한국 사회가 직면한 수많은 조건과 원인 중 하나로 위치시키는 일일 것이다. 그 ‘기계장치로부터 나온 신’이 사라질 때 비로소 우리의 이웃이 된 조선군 출신 두 청년과 비무장지대에서 다쳐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장병들의 고통에 대한 진지한 대화가 시작될 것이다.
김성경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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