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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시론] 기본질서 바뀌는 자유시장경제

한때 세계는 각국의 경제체제가 자유시장경제로 수렴하고, 자유무역을 통해 공동 번영하는 미래를 꿈꿨다. 기업은 국경과 관계없이 가장 효율적인 곳에서 생산하고, 국가는 비교우위가 있는 상품을 교환하면 모두가 더 부유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시론] 기본질서 바뀌는 자유시장경제

한때 세계는 각국의 경제체제가 자유시장경제로 수렴하고, 자유무역을 통해 공동 번영하는 미래를 꿈꿨다. 기업은 국경과 관계없이 가장 효율적인 곳에서 생산하고, 국가는 비교우위가 있는 상품을 교환하면 모두가 더 부유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자유시장경제의 국제적 확산을 뒷받침해 온 ‘자유무역’과 ‘경제와 안보의 분리’라는 기본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각국은 자유무역 이행보다 자국의 전략산업 육성과 국가안보 강화에 더 높은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와 미국의 첨단 반도체·장비 수출 규제는 국가 간 비교우위가 더 이상 교역을 확대시키는 요인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는 전략자산이 됐음을 보여준다. 자유시장경제의 기본 질서가 흔들리는 것은 각종 전쟁, 팬데믹, 인공지능(AI) 기술 발전 등의 요인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미·중 대결의 영향이 크다. 이 같은 역사적 맥락을 고려할 때 이 대결은 짧은 기간 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며, 이에 따라 자유시장경제의 흔들림도 상당 기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자유시장경제는 이런 환경에 걸맞은 새로운 경제 운영 체제로 변환할 필요가 있다. 무역 의존도가 높고, 반도체·2차전지·조선·원자력발전·방위산업처럼 안보와 직결된 산업 구조를 갖춘 한국에 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각국별 전략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감안해 새로운 경제체제를 ‘전략시장경제’라고 부를 수 있겠다. 전략시장경제란 기본적으로 시장의 가격·경쟁·혁신 기능을 유지하되, 국가안보와 장기적 산업 역량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분야에 한해 정부가 선택적·조건부·한시적으로 개입하는 개방형 시장경제다.

전략시장경제의 첫 번째 원칙은 여전히 시장 경쟁이다. 사유재산권, 가격기구, 자유로운 진입과 퇴출, 공정한 경쟁은 혁신과 생산성을 만들어 온 인류의 제도적 자산이다. 전략산업으로 지정되지 않은 나머지 대다수 산업에서는 이 원칙이 조금도 약화돼서는 안 된다.

두 번째 원칙은 전략산업의 범위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공급이 중단되면 국가 경제에 중대한 충격이 발생하거나 한국이 지속 가능하고 차별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할 가능성이 있는 분야를 골라 전략산업으로 지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산업을 전략산업이라고 부르는 순간 국가전략은 사라지고 정치적 나눠 주기만 남는다.

세 번째 원칙은 전략산업 내에서도 정부와 기업의 역할을 구분하는 것이다. 정부는 장기적 방향을 제시하고 연구개발, 인력 등 산업 기반을 조성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실제 투자와 기술 개발, 경영 판단은 가능한 한 기업에 맡겨야 한다. 이게 무너지면 전략시장경제는 관치경제 및 강압경제로 쉽게 변질된다.

네 번째 원칙은 정부 실패를 통제하는 것이다. 모든 지원에는 명확한 성과 조건과 일몰조항이 있어야 하며, 실패한 사업은 중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익은 기업이 독점하고 손실은 국민이 부담하는 구조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실패한 사업을 국가전략이라는 미명 아래 무기한 연장하는 순간 산업정책은 특혜 시비에 휘말린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AI 관련 3대 메가 프로젝트와 미래성장동력 7대 시드 프로젝트도 큰 틀에서 전략시장경제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대부분 초기 단계인 만큼 향후 각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에서 전략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을 준수하는지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마침 새로운 경제팀도 꾸려졌다. 역량 있고 유능한 정부가 전략시장경제로의 진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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