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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스포츠단상] 느린학습자에게 '공부'보다 먼저 필요한 것

우리는 느린학습자를 만나면 가장 먼저 “어떻게 하면 공부를 더 잘하게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학습 속도에 맞춘 보충교육을 하고, 인지능력을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고민한다. 모두 필요한 일이다.

[스포츠단상] 느린학습자에게 '공부'보다 먼저 필요한 것

우리는 느린학습자를 만나면 가장 먼저 “어떻게 하면 공부를 더 잘하게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학습 속도에 맞춘 보충교육을 하고, 인지능력을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고민한다. 모두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느린학습자에게 정말 공부가 가장 먼저일까?

느린학습자는 또래보다 학습 속도가 느리고 새로운 내용을 이해하거나 일상생활에 적응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반복이 필요한 사람들을 말한다. 일부 국내 조례에서는 IQ 71~84정도를 기준으로 정의하고 있어 경계선지능 아동과 청소년도 상당 부분 여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들은 지적장애로 분류되지 않고 있고, 일반인으로 분류하기에는 실제로 학교와 사회에서 학습뿐 아니라 또래관계, 의사소통, 진로와 취업, 독립생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장애인 복지체계의 지원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일상생활에서는 분명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느린학습자는 교육과 복지의 경계에서 지원받기 어려운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동안 느린학습자에 대한 지원은 주로 학습과 인지 영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물론 이러한 지원은 중요하다. 하지만 운동재활을 연구하고 가르쳐 온 필자는 이들에게 공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운동은 단순히 체력을 기르는 활동만은 아니다. 자신의 몸을 움직이고 조절하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경험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면서 규칙과 협력, 의사소통을 배운다. 공을 주고받는 간단한 활동에서도 상대방을 바라보고, 순서를 기다리고,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즉 신체활동에는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인지와 정서, 사회성이 함께 포함돼 있다.

특히 아동·청소년기의 운동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능력에 맞는 운동 과제를 수행하고 작은 성공을 반복하면 자신감이 생긴다. 오늘 다섯 번밖에 하지 못했던 동작을 내일 여섯 번 해내는 경험, 혼자 하지 못했던 활동을 친구와 함께 성공하는 경험이 쌓이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이 형성된다. 이러한 긍정적 경험은 운동에만 머무르지 않고 학습과 대인관계, 사회생활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느린학습자를 위한 신체활동은 일반 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그대로 적용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설명은 짧고 명확하게 하고, 한 번에 한 가지 과제를 제시하며 충분히 반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복잡한 규칙은 단순화하고, 경쟁이나 수행 결과보다는 참여와 성공 경험을 중요하게 평가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다려 주고, 반복해서 설명하고, 작은 변화와 성취를 인정해 주는 지도 방식이 필요하다.

학교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학교체육과 방과후 프로그램, 공공체육시설, 복지관, 보건소, 국민체력100, 대학의 운동재활 전문인력 등을 연계한다면 느린학습자가 거주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신체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 느린학습자의 특성을 이해하고 적절한 운동을 지도할 수 있는 체육지도자와 운동전문가를 양성하는 일도 필요하다.

느린학습자에게 필요한 것은 공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부를 지속하고, 공부 이후의 삶까지 건강하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건강한 몸과 자신감,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능력은 학교 성적만큼이나 중요한 삶의 기초다.

우리 사회가 느린학습자에게 “조금 더 빨리 배우라”고 요구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한다. 우리는 이들에게 건강하게 움직이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며, 작은 성공을 경험할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가.

느린학습자에게 ‘공부’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어쩌면 바로 이런 기회일지 모른다. 책상 앞에서만 시작되는 배움은 아니다. 몸을 움직이며 자신을 알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 역시 중요한 교육이다. 이제 느린학습자 지원정책도 학습지원에 머물지 않고 건강과 신체활동, 사회참여를 아우르는 생애주기적 지원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때다.

정복자 가천대학교 운동재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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